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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Apr 06. 2024

바다에 뛰어들 용기만 있다면

통일을 염원하며

2004년 5월 14일 전역을 4개월 앞두고 이천 일대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기동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다. 2주가 넘는 큰 훈련이라 개인적으로 부담이 컸다. 아무튼 전방 경계 부대와 주둔지 경계 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력이 한강 이남으로 이동했다.


부대 이동 중 이천 휴게소에서 장시간 병력을 대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주요 지휘관들은 사령부 지휘소로 불려 갔다. 당시 초급 장교였던 나는 대기 명령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1~2 시간쯤 기다렸을까? 다시 부대 이동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리고 여주 이천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이 시작되었다.  


이천 휴게소에서 병력이 머물렀던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보통 지휘관들은 민간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병력들을 노출시키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보안 문제도 있고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극도로 주의하고 회피하는  보통이다.


그날 부대가 대기했던 시간은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선고(10시 28분)가 나던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국군통수권자의 탄핵 결정이 있던 날 전방에 있던 중무장한 2개 군단이 대규모 병력 이동 중이었다. 그중 우리 부대는 12. 12 쿠데타의 주력 부대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 군이 촉각을 세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날 탄핵이 기각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그날 고위 지휘관들은 왜 사령부에 집합했던 것일까? 나는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있지도 않은 일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봄이 되면 문득 그날의 의문스러운 일을 떠올려 본다.


여주 이천 일대는 남한강이 흐른다. 남한강은 강폭이나 규모가 임진강과 매우 유사하다. 이 때문에 당시 여주 이천 일대에서 야외 기동훈련을 했던 것이다.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아군의 기계화 부대가 대대적으로 남한강을 도하하는 순간이다. 남한강 도하작전은 방어에 성공한 우리 군이 북진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얼마 전 선생님의 책에서 70세에 남한강 수영에 도전하시겠다는 말씀이 기억나서 여쭤보았다.


“선생님, 남한강 수영하시겠다는 결심은
아직도 유효하신 건가요?”


이렇게 여쭤봤더니 선생님은 남한강에서 수영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하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장담을 했다며 이제는 포기했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그리고는 자신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중에 찾아보니 선생님의 에세이 집에 그때의 일을 기록해 자세히 기록해 놓으신 걸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울릉도에 간 일이 있었다. 그때는 울릉도까지 열댓 시간 배를 타고 가야 해서 배에서 내려도 한동안 온 땅이 계속 울렁울렁했다. 그렇게 아침에 도동항에 내려 조금 쉬고 늦은 오후에 그 반대편에 있는 조그만 어촌에 닿았다.


바닷가에 앉아 있는데 바닷물이 어찌나 맑았는지. 물속 하얀 모래며 해초며 조개가 환히 다 들여다보였다. 마침 타는 듯한 저녁 해가 수평선 가까이로 내려와 있었다.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 맑고 맑은 바다에는 띄엄띄엄 작은 바위섬들이 있었다. 띄엄띄엄, 아마도 한 이삼십 미터쯤의 간격으로 바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바위섬들에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바닷물을 건너가나.


나는 그냥, 앉아 있던 채로 (수영복이 있었을 리도 없다) 바다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 맑고 아름다운 바다에 잠겨 다시 못 나온다 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몸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허우적였더니 신기하게 몸이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게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개구리헤엄이었는지 개헤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나는 바위섬 하나에 닿았고, 그다음 섬에도 닿을 수 있었다.


<인생을 배우다 중>



맑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들에 대한 호기심에 옷을 입은 채로 자신의 몸을 던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정말 선생님 다우시다’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전후 사정 따지지 않고 앞만 보고 전진하는 전사와 같은 분이시니까.


그런데 선생님의 남한강 수영 계획은 사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파주-개성 마라톤 및 철인 3종 경기를 추진해 참가하겠다던 어느 제자의 희망사항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 제자는 선생님의 수업에서 독일 분단 문학을 읽고 놀라운 리포트를 제출한 적이 있다고 칭찬하셨던 분이었다.


선생님은 평생 독문학을 전공한 학자이시다. 독일 문학의 기저에 존재하는 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한 충격과 공포 그리고 반성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조국의 분단과 정치 사회적 갈등은 매우 중요한 화두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선생님은 우리의 분단 현실을 보며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과 아픔을 스스로 감내하셨을지 상상해 봤다. 맑은 바다에 몸을 던지던 20대 아가씨는 이제 70의 백발이 되어 지척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약하나마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70세가 넘은 나이에 남한강을 건너보겠다고 생각하신 것만으로도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선생님께 내 군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 남한강을 건넌다는 것의 군사적 의미는 임진강을 건너는 것이므로 남한강을 수영해 건너는 것은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적 행위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마라톤과 수영 연습을 하겠다고. 잘 준비해서 수영으로 남한강을 가로질러 봐야겠다고. 언젠가 정부와 지자체에 협조를 구한 후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조촐한 철인 3종 경기를 개최해 보고 싶다. 한강에서도 수영하는데 남한강이라고 안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전에 이 모든 것에 문외한인 나는 독일 분단 문학에 대해 우선 부지런히 공부해야 봐야 한다.


지금도 독재 정치에 희생당하고 있는 북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봄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애씀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오랜 호흡으로 노력하다 보면 봄날에 동토가 녹듯, 꽃과 나무가 자라듯 통일이 서서히 그러나 장대한 물결로 돌아 올 것이다.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을 내려놓고 힘든 사람들을 조금 더 배려하는 그런 봄볕 같은 시선 속에 차디찬 철책이 녹아내리는 기적 같은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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