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을 달리며
물 흐르듯 살아간다는 말은 참으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 말이 새삼 실감된 건, 지난 주말 오후, 탄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날이었다. 햇살은 낮게 드리워져 잔잔한 물 위에 금빛 선을 그었고, 바람은 수양버들 가지를 스치며 천천히 흘렀다. 탄천은 도시 한복판을 지나면서도 그 존재만큼은 자연 그대로였다. 어느 방향으로든 시선을 두어도,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오히려 살아 있음의 리듬을 되찾았다.
자전거의 바퀴가 한 번 구르고 나면, 풍경이 조용히 변한다. 그 변화는 거창하지 않지만, 그 섬세한 이행 속에 감동이 있다. 물 위로 피어오른 연분홍빛 꽃잎은 흐르는 강물에 밀려 무언가를 흘려보내듯 사라지고, 하늘은 한없이 투명하다. 햇살은 유리처럼 반짝이며 물결 위에 흩어지고, 수면 아래서는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친다. 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평온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다. 그곳엔 도시의 분주함이나 거친 말투가 없고, 오직 삶의 가장 순한 얼굴만이 머물러 있다.
어느 구간에 이르면 작은 징검다리가 나타난다. 징검다리 위를 건너는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고요하다. 아버지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징검다리를 건넌다.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발밑 물속을 들여다보며 작은 손가락으로 잉어를 가리킨다. “아빠, 물고기야!” 밝은 목소리, 환한 웃음, 그 순간이 오래 머물길 바라는 듯한 아버지의 미소.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이 평범한 공간에 경이로움을 불어넣는다. 징검다리 아래의 물소리는 소곤거리듯 작고, 물 위에는 나뭇잎이 하나둘씩 떠다니고 있었다. 흘러가는 것은 단지 시간만이 아니라, 이토록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이었다.
한쪽에는 돗자리를 펴고 간식을 나누는 가족들도 있다. 엄마는 작은 밀짚모자를 아이 머리에 씌워주고, 아빠는 바람개비를 손에 쥐어준다. 어린 형제자매는 고양잇풀 사이를 뛰어다니며 서로를 부른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바람 속에 섞여 퍼진다. 아이의 발걸음은 가볍고, 엄마의 눈빛은 따뜻하다. 가끔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께 앉아 아이의 재롱을 바라본다. 어르신들의 얼굴엔 미소와 주름이 동시에 머물러 있다. 그들의 손에는 도시락이 담긴 보온 가방이 들려 있고, 옆에는 사과와 귤, 그리고 직접 싸 온 김밥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한 가족은 강가에 둥글게 모여 앉아 웃고 떠들고, 잠시나마 모든 걱정을 내려놓는다.
조금 더 가면, 농구장이 나온다. 한 무리의 중고등학생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농구공을 주고받는다. 누군가는 불가능한 슛을 시도하고, 누군가는 파이팅을 외친다. 운동화가 바닥을 박차고 튕겨 오르는 소리, 공이 림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웃음. 땀이 번지는 옷깃 너머로 그들의 젊음은 강물처럼 빛난다. 육체는 정직하고, 그 정직함이 만들어내는 생동감은 눈부시다. 그 옆 벤치에는 친구를 기다리는 청소년이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하늘을 본다. 해는 서서히 기울고, 그림자는 길어진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일상인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달리기 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각자의 리듬과 속도로 걷고, 뛰고, 멈추기도 한다. 어떤 이는 무거운 일상의 그림자를 털어내듯 숨을 몰아쉬며 걷고, 어떤 이는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달린다. 그들의 얼굴엔 고요한 집중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흐르고 있다. 어떤 노부부는 손을 꼭 잡고 느리게 걷는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아래, 그들의 발걸음에는 서로를 오랫동안 바라보아온 신뢰가 담겨 있다. 삶이란 결국 이런 조용한 동행이 아닐까 싶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탄 뒷좌석 자전거, 아이는 조심조심 앞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그 뒷모습이 마치 한 편의 따뜻한 동화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하고, 누군가는 반려견과 함께 걷는다. 반려견은 강가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풀숲을 들락날락한다. 삶의 다양한 방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부딪히지 않고, 각자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흰 구름 몇 점이 떠가고, 철새가 삼각형 모양으로 날아간다. 계절은 어느새 봄과 여름 사이에 머물러 있다. 강물 위에는 어린 새들이 머물고, 한쪽에선 커다란 물고기가 솟구쳐 오른다. 자전거를 타며 이 모든 풍경을 지켜본다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천천히 음미하는 일과 같다. 내 다리는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 위에 일상의 풍경이 올려진다. 사람들의 표정, 흘러가는 물, 그 위에 비치는 하늘, 철새의 그림자, 바람에 나부끼는 풀잎… 그 모든 것이 어울려 하나의 살아 있는 화폭을 이룬다.
지속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은 단지 건강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가 매일 조금씩 페달을 밟으며, 다리를 움직이며, 땀을 흘리며 얻는 것은 육체의 변화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일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잘 들리지 않던 내면의 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 내가 지금 얼마나 숨을 쉬고 있는지, 이 다리가 얼마나 단단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작은 강변에서 나도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삶이 가끔씩 혼란스럽고 무거울 때, 나는 자주 탄천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 강은 묵묵히 흐르고, 사람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며, 나는 그들 사이 어딘가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살아간다. 오늘도 페달을 밟으며 나는 안다. 이 강은 내 안의 어떤 흐름을 일깨우고, 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탄천은 흘러간다. 나는 그 흐름 속에 잠시 머물다, 다시 나아간다. 이곳은 운동의 공간이자, 회복의 공간이며,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장소다. 이 강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고요하면서도 견고하다. 물처럼. 바람처럼. 그리고,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