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멈추지 않기 때문에
들어가기 전에
지난 주 제 브런치이 쓴 글이 200편을 넘어섰고 , 오늘 구독자가 300명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런 자축의 의미가 있습니다. 글 같지 않은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작가님들의 응원은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큰 이유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작가님들의 창작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불어나던 체중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던 시절이 있다. 무언가를 매일같이 꾸준히 하다 보면, 몸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균형점을 찾아낸다. 내게는 그게 한때의 걷기였고, 때로는 자전거였다. 처음엔 살을 빼기 위해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 되었다. 마치 내 안의 리듬이 몸을 움직이게 하듯,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괴로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괴롭지 않아서 계속할 수 있었다.
글쓰기도 그랬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부터 문장이 술술 풀린 적도 없고,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글을 썼던 기억도 드물다. 오히려 늘 머뭇거리고, 틈만 나면 멈췄고, 쓰다 지워버리는 날이 더 많았다. 긴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나는 매번 내 안의 암반을 파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표현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능숙하게 써 내려가는데, 나는 괭이를 손에 쥔 노동자처럼 한 자 한 자를 힘겹게 채워나갔다.
한때는 그게 무척이나 부러웠다. 내 주변에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글을 쓰면 상을 타고, 일기장조차 시처럼 써내던 아이들. 그중 한 명은 내게 늘 압도적인 존재였다. 나는 자주 그 친구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쓸 수 있니?” 그 친구는 별말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글이 그냥 써져.” 그런 말이 오히려 절망으로 다가왔다. ‘아, 나는 안 되겠구나.’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끝까지 해낼 수 없을 거라는 패배감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나는 포기하지 못했다. 잘 쓰지는 못해도,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됐다. 쓰는 동안만큼은 나를 돌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아주 더디게 글을 써왔다.
세월이 흐른 지금,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재능 넘치던 친구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전히,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엔 그 사실이 조금 의아했다. 그토록 잘 쓰던 사람이 왜 멈췄을까? 내심 상상했다. “내가 저 정도 실력이었으면, 지금쯤은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었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안다. 잘하는 것이 지속의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이 지속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속이란, 결국 재능보다 더 위대한 힘이라는 것을.
이따금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자주 글을 쓰세요? 대단하세요. 정말 의지가 강하신가 봐요.” 그럴 때면 나도 웃는다. 얼마 전까지 글 쓰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사실 그토록 강한 의지 같은 건 없다. 이제 그저 글을 쓰는 고통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조금은 즐겁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혼잣말이었고, 다음에는 기록이 되었으며, 이제는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리듬이 되었다.
세상은 잘하는 사람을 주목한다. 탁월한 솜씨와 빛나는 재능은 늘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알게 되었다.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 끝까지 멈추지 않은 사람이 결국 가장 먼 곳까지 간다는 것. 처음에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글을 잘 쓰지 못한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한 문단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수두룩하다. 좋은 문장을 흉내 내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방식을 흡수해 보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든 과정을 견뎌낸 ‘지속성’ 자체가 내 문장에 새겨지는 무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흉내로는 낼 수 없는 것이다. 나만이 걸어온 길, 나만이 감당해 낸 실패와 반복. 그러한 시간들이 쌓여서, 결국은 글이 된다.
그래서 나는 더는 글을 잘 쓰는 법을 묻지 않는다. 대신, 계속 쓸 수 있는 이유를 묻는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언젠가, 나만의 수맥이 될 거라고 믿는다. 누구나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멈추지 않을 수는 있다. 나는 오늘도 그 믿음으로 글을 쓴다. 작은 호흡처럼, 조용한 물결처럼. 남들이 보기엔 대단치 않은 일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 된다.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 그것이 결국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