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계엄령의 격동을 지나, 무위의 정치를 생각하다

by 아레테 클래식

정치가 눈에 띄기 시작할 때, 그 사회는 이미 위기에 빠진다. 진정한 태평성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국민이 불안하지 않은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아닐까?


그러나 지난 몇년은 이 이상과는 정반대의 시간이었다. 정치는 폭력과 명령의 이름으로 국민 앞에 등장했고, 삶은 늘 정치적 경계선 위에 놓여 있었다. 모든 국민이 정치를 걱정했고, 정치에 휘말렸고 광장으로 밀려 나왔다. 정치 때문에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정치가 일상의 중심을 점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월 10일, 파주시 대성동 마을 주민들은 뜻밖의 평화를 체감했다.


“오늘 오전까지 들리던 대북방송은 물론, 오후 1시까지 들렸던 대남 방송이 갑자기 모두 끊겼다. 이후 정부에서 대북 방송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수십 년간 긴장이 일상이었던 접경지역에서, 이 조용함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었다. 김동구 이장은 말했다.


“계속해서 대남 방송이 중단돼 주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단지 확성기의 정지 소식이 아니다. 삶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다. 정치가 전면에서 물러나고, 사람들이 다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이 조용한 전환은 바로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했던 정치의 이상에 가깝다.


“太上不知有之(태상불지유지)”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이 그 존재조차 모른다.

– 『도덕경』 제17장


정치는 삶의 전면에 드러나선 안 된다. 통치란 조종이 아니라 흐름이어야 하며, 힘은 억압이 아니라 신뢰로 작동해야 한다. 정치가 조용해질 때, 사회는 비로소 건강해지고, 사람들은 정치인을 잊을 수 있게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너무 오래 정치에 몰두해 있었다. 정치는 매일의 뉴스가 되었고, 싸움과 혐오가 여론이 되었으며, 생존조차 정치에 기대야 했다. 국민 모두가 정치를 걱정하고 분석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 그것이 진정한 정치일 수 있을까?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정권이 바뀌었다. 이는 단순한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징후다. 군사적 긴장의 완화, 방송의 침묵, 광장의 정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의 회복. 정치는 점점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치는 삶의 무대가 아니라 배경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고, 정책이 눈에 띄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진정한 태평성대다.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정치의 모습이다.


대성동의 조용한 낮처럼, 정치가 조용할수록 삶은 더 분명해진다. 『도덕경』이 말한 태상(太上), 그 ‘없는 듯 존재하는 정치’가 지금, 아주 조용하게 돌아오고 있다. 아니 모든 비정상적인 것들이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정치를 걱정하지 않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 그래도 전방 마을에 확성기가 정지된 것이 어디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