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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매거진 Jun 12. 2017

의자는 작은 건축이다 II

베르너 팬톤의 «Penton Chair»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여느 카피 문구처럼 과장이 담겼지만 의자가 인체에 가장 오래 닿아있는 가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는 “의자는 건축이다”라고 까지 말했을 정도이니까요. 이케아의 국내 진출과 함께 가구 시장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고 그만큼 저렴하고 다양한 가구를 향유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짧은 연재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의자에 얽힌 스토리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구태여 말이 필요 없는 디자인이 있다.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 1926-1998)의 디자인이 그러하다.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쳤을 강렬한 레드 컬러와 독창적인 실루엣을 소유한 그의 의자는 애써 머리에 저장하려 하지 않아도 몸과 눈이 기억한다.


Verner Panton, «Cone Chair» (1958) (출처: hivemodern.com)


의자뿐 아니라 조명, 직물 그리고 전시 디스플레이까지 무한한 영역을 넘나드는 팬톤은 일찍이 «Cone Chair»로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는데 그의 본고장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명성이 도달했다. 뉴욕으로 진출한 그의 제품이 특정 지역에서 전시가 금지된 사연이 있는데 그 이유가 독특하다. 그의 제품이 뉴욕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가게의 쇼윈도에 설치되었을 때 많은 운전자들이 제품에 정신이 팔렸다고 한다. 이를 보고 교통사고를 걱정한 경찰이 전시를 금지했다는 것.


Verner Panton, «Penton Chair» (1965) (출처: pinterest.com)


팬톤을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아마도 이 «팬톤 체어»일거다. 그의 이름을 과감히 제품명으로 채택한 것처럼 이 제품은 그를 대표하는 시그너쳐다. 그는 이 제품을 통해 세계 최초로 접합 없는 플라스틱 의자를 개발한 디자이너가 되었다. 등받이, 좌석, 다리, 받침까지 단 하나의 몸체로 제작한 역사상 첫 번째 의자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유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제품은  단연코 20세기 디자인 아이콘으로 꼽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동시대 3D 프린팅 기술이 동원되었다 해도 믿을만할 정도로 미래지향적이다. 마치 인체의 실루엣을 본뜬 것 같기도 한데 이집트 벽화 속 여인들처럼 그 옆모습을 드러냈을 때 더 아름답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수직과 수평의 결합이라는 디자인의 고질적인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out of the box)에서 접근했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팬톤 체어의 판권을 보유한 스위스 비트라의 로고 이미지 (출처: Vitra)


한 번의 주입으로 완성되는 미끈하고 외관과 달리 개발 과정은 절대 순탄치 않았다. 팬톤은 이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에만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총 4년이라는 시간을 소요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모든 제품 디자인이 그러하듯 아이디어를 구현할 적합한 제조 업자를 찾아야 했다. 팬톤 체어도 혁명적인 디자인의 탄생 비화에 있음직한 우연의 조건을 따른다. 그는 팬톤 체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디자인 사무소를 설립하기 위해 프랑스 칸을 찾는다. 여기서 스위스 바젤로부터 온 빌리 펠바움(Willy Fehlbaum)을 만나고 개발에 착수하기 위한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진다. 빌리 펠바움은 바로 유수의 디자인의 판권을 보유한 비트라(Vitra)社의 설립자이다. 팬톤은 바젤로 이주해 펠바움과 함께 모델링에 착수한다. 여기에만도 5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마침내 1965년께 그의 혁명과도 같은 팬톤 체어가 탄생한다. 비트라와 함께 양대 유통기업으로 유명한 허먼-밀러(Herman Miller)社는 아이디어를 비관적으로 보고 생산을 포기했었다는 후문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비트라가 팬톤 체어의 판권을 보유한 사연이다.

Verner Panton, «Living Tower» (1969) (출처: snobessentials.com)

 

아름다운 건물의 외관에 이끌려 들어갔지만 그 내부의 다소 생뚱맞은 인테리어로 당황케 될 때가 있다. 지금은 건축, 인테리어, 제품 등 디자인의 영역이 세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탄생한 이 의자는 건축, 인테리어, 조명 등 통일된 콘셉트 아래 이루어졌다. 물론 팬톤이 모든 영역을 다룰 줄 알았기에 가능했다. 지금 보아도 과감한 이 디자인이 탄생하기까지는 길고 험난한 시간과 사투를 견뎌야 했다. 마지막으로 팬톤 체어의 탄생 과정은 디자이너 제조사간의 긴밀한 협력과 신뢰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에디터 정진욱 Chung Jinwook

커버 이미지 hivemodern.com


«의자는 작은 건축이다 III»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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