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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매거진 Jun 09. 2017

의자는 작은 건축이다 I

알바 알토의 «stool 60»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여느 카피 문구처럼 과장이 담겼지만 의자가 인체에 가장 오래 닿아있는 가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는 “의자는 건축이다”라고 까지 말했을 정도이니까요. 이케아의 국내 진출과 함께 가구 시장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고 그만큼 저렴하고 다양한 가구를 향유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짧은 연재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의자에 얽힌 스토리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특유의 밝은 톤을 가진 자작나무는 소박해 보이면서도 매우 견고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평소 이 자작나무로 만든 스툴을 보면서 참 단순하지만 은은한 매력을 느꼈다. 사실 너무 심플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의자가 바로 아르텍(Artek)社의 «Stool 60»이다. 하나 위대함은 언제나 그렇듯 평범함 뒤에 있다.


Artek社의 «Stool 60» (출처: artek.fi)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스툴을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어딘가 익숙한 이유는 아마도 이케아의 제품과도 닮아 있기 때문일 거다. 아니 이케아의 제품이 바로 이 아르텍의 제품과 닮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자세히 보면 사이즈, 다리의 개수, 상판의 컬러와 마감 등 다른 점이 많다. 탄생 배경은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이 디자인의 주인은 핀란드의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1976)이다. 우리에게 디자이너로 익숙한 그는 사실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할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모더니스트들은 강철, 유리, 합성물질 등 다양한 신소재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유독 나무라는 자연의 재료에 집착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유기적 모더니즘(Organic Modernism)의 확립자라고 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다.

«Stool 60»의 출시 80주년 기념 포스터 (출처: connox.com)


나무에 대한 관심은 결국 가구 디자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디자인의 중대한 문제인 수평과 수직의 결합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다수의 실험을 진행한다. 바로 여기서 탄생한 것이 그의 전매특허인 나무를 휘어뜨리는 기술이다. 그는 열을 이용해 자작나무를 구부려 상판과 다리를 접합시키는 독창적인 기술을 사용한다. 다리를 직선 상태로 상판과 연결할 경우 내구성이 취약하지만 (마치 'ㄱ'자를 연상시키는) 휘어진 다리를 상판과 연결함으로써 견고한 스툴을 탄생시켰다. 이 제품은 쌓아서 보관이 가능해 공간 활용의 효율성도 극대화한다.


«Stool 60»의 단면 (출처 pinterest.com)


그는 분명 유기적 디자인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가 디자인한 유리제품마저도 그것을 드러낸다. 1937년 유리 제조 회사 이딸라(Iittala)社를 위해 디자인한 «Savoy vase»를 보라. 지금 보아도 아름다운 이 화병은 놀랍게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본떠왔다. 전해지는 바에 의해면 이 전설적인 제품은 그의 고향의 호숫가의 물결을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Alvar Aalto, «Savoy vase» for Iittala (1937) (출처: finland.fi)


그는 딱딱한 기하학적 형태를 거부하고 무정형한 형태를 추구했는데 이는 알토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표현이자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규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간을 배려하는 디자인을 연구했던 알토는 유기적 모더니즘의 확립자로서 이후 찰스 & 레이 임스 부부와 같은 전-후 디자이너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아르텍이 2013년 비트라(Vitra)社에 인수된 이후로 왠지 모르게 가격이 더 비싸진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의 실험 정신과 유기적 모더니즘을 향유할 수 있다면 하나쯤 꼭 소장하고 싶어 진다. 얼마전 인터뷰에서 바우하우스 컬렉터 SABO는 건물을 모을 수는 없기에 가구를 수집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에디터 정진욱 Chung Jinwook

커버 이미지 finland.fi


«의자는 작은 건축이다 II»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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