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Apr 17. 2024

[공황장애,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약이 더 늘어났어요

[공황장애,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지난 2월20일자를 마지막으로 공황장애 일기 시즌 1을 마쳤다. 제목도 "공황장애 일기를 마치며"였다. 이런 일기를 시즌 1, 시즌 2로 이끄는 건 결코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질병인데 빨리 나아서, 다 나았습니다. 하고 보고를 해야 글을 읽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도 희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월20일은 공황장애 발작이 시작된 지 정확히 3개월이 된 시점이었다.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모든 활동은 정상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 달 가량 운신조차 못하고 교회도 가지 못했던 상황도 종료되었다. 나는 내가 많이 좋아진 것을 느꼈고, 심지어는 '약을 안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나는 이사 이틀 전인 2월 20일날, 마지막 일기처럼 공황장애 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2월23일 이사를 했다. 힘든 이사였다. 책이 워낙 많아서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사 정리도 다 끝나고 일상은 평온한 항상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크몽 부업을 통해 4월 정도까지의 생활비는 마련한 상태였다.


그렇게 2월과 3월을 보냈다. 4월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꽃들이 얼굴을 내밀며 진정한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한달 150만 원 정도면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돈이 빠져나갈 구멍은 많이 있었다. 나를 위한 소비로는 책을 사는 것 외에는 없었는데도 병원비며 보험비, 통신비, 부식비에  경조사비까지 추가되자 내가 계산을 잘못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몇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성인 글쓰기반을 열었는데 최종적으로 3명이 신청해주셔서 지난 주 토요일 첫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문제는 그 전에 일어났다. 나는 늘 돈 생각을 했다. 지금 보유한 돈은 5월에 사용하면 바닥을 드러낼 것이었다. 성인반 글쓰기 수업도 매달 새롭게 열고 사람이 모여야 지속 가능한 수입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홍보를 하고 사람을 모을 것인가. 아내는 독서논술 수업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독서논술은 내 전문분야다.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대입논술 수업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새로 이사온 아파트에 아이들이 많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일단 광고지를 만들어 붙여보기로 했다.


<초중등 독서논술 글쓰기 모집>이라고 제목을 쓰고 강사 이력과 모집 대상, 수업 방식을 적고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게시 등록을 했다. 게시 도장을 다 찍고 아파트마다 돌면서 광고판에 독서논술 글쓰기 광고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총 9개동 아파트가 있고 붙여야 할 광고지는 21장이었다.


4개 동을 돌았을 때 신호가 왔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배 아픈 신호가 아니라, 공황장애 신호였다.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끝내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밀려왔다. 뭐지? 내가 아직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논술 수업이 스트레스를 주는 일도 아닌데, 광고지 붙인다고 이렇게 나를 훅 치고 들어오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비상약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갑작스런 상황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집에 들어가 비상약을 먹고 나올지 남아 있는 작업을 마저 마치고 집에 가서 비상약을 먹을지 고민했다. 호흡이 조금 안정되었다. 가슴 압박과 흉통은 나를 거세게 몰아부쳤지만 참을만 했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한 동 한 동 작업을 했다. 마지막 동까지 작업을 마치고 관리사무소에 가서 투명테이프와 아파트 출입키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즉시 비상약을 먹고 쇼파에 누웠다. 4월 5일 식목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게시물은 광고판에서 사라졌고 관련 전화 문의는 한 통도 없다. 그것은 알고 있었다. 광고지를 붙인다고 금방 전화가 오지는 않는다. 최대한 아는 사람을 동원해서 한 그룹을 시작해야 불이 붙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뒤로 공황장애 증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의 어려움, 가슴 압박과 흉통이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나를 압박할 모든 것은 사라졌다. 다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내가 자유롭지 못할 뿐이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의 요인일 뿐이다.


엊그제 아내와 얘기를 했다. '여보, 좀더 기다려줄 수 있지? 내가 만약 5월달에 돈을 못 벌어도 당신 버는 것으로 생활할 수 있지?' 아내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럼, 걱정하지 마. 돈보다 아프지 않는 게 먼저야. 당신이 못 벌어도 내가 버는 수입으로도 생활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오늘 병원엘 다녀왔다. 내 얘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도 조금은 난감한 듯 했다. 이제 조금씩 복용약의 개수를 줄이자고 얘기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불안을 잠재워주는 약의 복용 주기를 더 늘여 약 개수가 더 늘어났다. 아직은 내가 일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겉은 다 나은 것 같지만 속은 아직 계속 아픈 상태인 것이다. 


조금은 실망스럽다. 빨리 나아서 약을 끊고 싶은데 어느새 5개월째 약을 복용하고 있다. 맨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6개월 정도는 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이제 1개월 남았다. 이 부분도 내가 너무 강박적으로 접근하지 말자.


마음을 내려놓고 우주의 운행이치, 자연의 지고 피는 순리, 그것처럼 내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자. 그것이 먼저다. 아직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황장애 일기를 마치며) 아직은 집에만 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