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감 한효민] 시즌 1 - 4월호 브랜드 '후라보노 레이디' 이야기.
"사람들이 과연 내 영상을 볼까?". 처음 만든 3월호 영상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직후에 든 생각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영상의 조회수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다", "힘내라", "다음 영상도 기대된다"와 같은 격려의 말 한마디가 더 중요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영상에 댓글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99%가 주변 지인의 댓글이었지만, 그 자체로도 감사했다. '월감 한효민'을 언제 그만둘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던 시절, 작고 소소한 격려들이야말로 다음호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격려들이 모여 만들어진 4월호 '후라보노 레이디'편의 일화이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이 글은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
가영이를 처음 만난 건 대외 연합 광고 동아리 'AD.FLASH(애드플래쉬)'였다. 애드플래쉬는 나의 대학 생활의 첫 대외활동이다. 더불어 광고에 더욱 큰 흥미를 가져다준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가영이는 매사에 밝고 유쾌하며 톡톡 튀는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였다. 그런 가영이가 '월감 한효민'의 4월호 기획자가 된 발단은 3월호가 끝날 무렵 우연히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한 통화였는지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묻기 바빴다. 그러던 중 대화 말미에 우연히 '월감 한효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부터 시작해 어떤 영상을 만드는지 가영이에게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다 들은 가영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 그럼 우리가 원하는 감성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거야? 그거 재밌겠다!". 그 순간 4월호 월감을 가영이 함께 한다면 왠지 재밌게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가영이에게 "재밌을 것 같으면 이번호 같이 안 해볼래?"라고 되물었다. 결코 예정된 섭외가 아닌 즉흥적 섭외였다. 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은 가영이 몫이었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월감 한효민'을 일단 하겠다고 내뱉으면, 나는 물론이고 함께하는 당사자는 주어진 한 달을 온전히 이 프로젝트에 집중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스케줄과 약속 등을 최소화하는 어려움과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런 애로사항까지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4월호에 참여하겠다고 말해주어 가영이에게 고마웠다.
4월호는 시작부터 달랐다. 3월호는 처음이었던 탓에 정신이 없어 기획자 소개 인사 영상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반면, 4월호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달 초에 소개 인사 영상을 제작하여 올리기로 결심했다. 4월호 소개 인사 촬영은 첫 미팅이 끝난 직후에 이루어졌다. 다소 급작스웠기에 조명도 마이크도 소개 내용도 준비된 것 없이 마구잡이 식이었지만, '일단은 찍고 보자'란 마음이 우선이었기에 환경에 개의치 않았다. 촬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테이크였다. 중간에 조금이라도 말이 꼬여 버벅거리게 되면 재촬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물론 원테이크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촬영했더라면, 비교적 편집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한 달에 소개 인사 영상 외에도 만들어야 할 게 산더미였기에 최대한 적은 공수만 들여 시간과 노동력을 최소화해야 했다. 이런 원테이크로 촬영한 소개 인사 영상은 시즌 1뿐 아니라 시즌 2 까지 계속 이어졌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가장 연애하고 싶은 달이 바로 4월이라 한다. 벚꽃이 만개하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순간을 좋아하는 사람과 맞이한다면, 그 보다 좋은 것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한 달에 한 편씩 광고를 만드는 프로젝트 성격을 적극 고려할 때,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의 달에 어울리는 시의성과 계절성을 스토리에 최대한 담고 싶었다. 3월호가 상반기 채용 시즌에 맞춰 취준생의 이야기를 했으니, 4월호는 두근두근 설렘이 느껴지는 달콤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이전 3월호는 공모전의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했기에 첫 회의부터 큰 무리 없이 아이데이션이 가능했다. 반면 4월호부터는 아무런 선택지 없이 광고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어떤 제품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브랜드 선정에서부터 난관이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부터 생각해놓고 있던 '물티슈' 제품의 짧은 스토리 하나가 떠올랐다. 만약 이 스토리를 가영이가 듣고 반응이 괜찮다면, 4월호 브랜드를 고민함에 있어 쉽게 해결될 것이란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일분일초 가영이의 생각이 궁금했던 나는 부푼 기대를 갖고 '물티슈' 이야기를 꺼내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앞서 생각한 나의 오판이자 착각이었다.
"가영아,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물티슈 스토리인데 어떤가 한번 들어봐 줘! 시작은 한 남자와 여자가 데이트를 하고 있는 설정이야, 데이트를 하던 중에 남녀가 벤치에 앉아 서로 아이스크림을 먹어! 이때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먹다 실수로 손에 흘리게 되는데, 너도 알겠지만, 아이스크림 손에 흘리면 되게 끈적끈적하고 찝찝하잖아? 무튼 그래서 그 모습을 본 남자가 자신의 가방에서 물티슈 한 장을 살며시 꺼내 여자에게 건네는 거지. 이게 끝이야! 스토리의 살은 더 붙어야겠지만 결론만 말하면 여자가 남자의 세심하고 깔끔한 모습에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야! 어때 좀만 더 살리면 괜찮을 것 같지 않아 가영아?"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가영이가 이렇게 답했다. "오빠 근데 남자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서 여자에게 주는 모습이 되게 결벽증 환자같이 보일 것 같아, 내가 저 여자라면 설레는 느낌보다 유난 떤다 느낄 것 같은데?".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입장에선 남자의 행동이 꼼꼼하고 배려심 깊은 행동이라 생각한 반면 가영이는 다르게 받아들인 것이다. 실제 이 스토리가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누군가 보았을 때, 가영이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그 스토리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성 광고가 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단순한 생각의 차이를 넘어 서로 합의된 이야기로 영상을 만들어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할 판국에, 내부에서 조차 합의되지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영상을 만든다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더는 가영이를 설득하지 않고, 내 머리 속에 '물티슈'를 미련 없이 지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영이의 피드백이 굉장히 유의미했다. 아마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저 말도 안 되는 스토리에 계속 집착해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 게 뻔하다.
P.S 이 글을 쓰며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가영이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가영이는 내게 "저 때는 물티슈 갖고 다니는 남자에 대해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꼈어! 완전 좋은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첫 회의가 주야장천 물티슈 이야기를 하다 끝났다면, 두 번째 회의부터는 뭔가 다른 이야깃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각자 광고로 만들어 보고 싶은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바람막이', '우유', '책', '왁스', '키높이 깔창', '히트텍'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들이 거론되었지만, 4월호 콘셉트인 러브스토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게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우리는 잠시 쉬는 틈을 타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껌'과 관련된 가영이의 실제 연애 경험담을 듣게 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가영이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생이었던 가영이는 사귀고 있던 남자 친구가 항상 자기와 헤어질 때면 편의점에 들어가 껌을 사서 씹는다 했다. 그것도 아무 껌이 아니고 꼭 후라보노 껌이었다고 한다. 나는 남자의 의아한 행동이 궁금해 가영이에게 물었다. "왜 그 남자는 평상시에 껌을 안 씹고 너랑 헤어질 때만 사서 씹는 거야?". 내 물음에 가영이는 "아마 남자 친구가 나와 키스를 하고 싶은데 차마 부끄러워 말은 못 하고 오물오물 껌을 씹은 것 같아"라고 답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언가의 촉이 왔다. 왠지 가영이의 이 경험담을 조금만 다듬으면 충분히 4월호 콘셉트에 맞는 월감 광고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말하길 모든 일은 불현듯 찾아온다 했던가. 단지 스트레스를 풀고자 나누었던 수다에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아이디어를 소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신에 찬 나는 곧바로 가영이에게 "네 경험담을 이번 4월호 광고로 만들면 좋겠다"라고 강한 의사를 밝혔다. 그런 내 모습에 가영이는 동의해 주었고, 그렇게 4월호 브랜드는 '껌'으로 최종 결정됐다. 동시에 '껌' 브랜드는 실제 경험담 속에 나온 '후라보노'를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아이데이션이 시작됐다. 가영이의 실제 경험담은 짧은 한 순간의 상황이라 살을 붙이는 각색 작업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각색이 필요했던 부분은 남자가 껌을 통해 여자에게 키스 신호를 보내는 부분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 부분을 영상의 하이라이트로 염두했기에 임팩트를 싣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바꿈과 동시에 키스 신호에 따른 반응까지 보여줘야 했다. 즉, 남자가 껌을 씹는 게 아닌 여자가 껌을 씹어 남자에게 키스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에 남자가 반응하는 스토리로 바꾸었다. 여기서 반응은 당연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측면에선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소 일차적인 전개로 누구나 뻔히 예측 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우려심이 들었다. 게다가 키스에 너무 치중되면 영상 마지막에 광고 제품 '껌'이 부각되기보단, 남녀의 키스만 사람들 뇌리에 남을 위험성 또한 컸다. 그렇다고 키스 장면을 빼자니 임팩트가 사라지고 후킹이 약해지기에 이도 저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민이 계속되던 찰나, 오래전 광고 수업시간에 김현숙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건 바로 '광고를 만들 때 그 안에다 모든 걸 넣으려고 하거나 너무 다 보여주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의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광고의 재미와 흥미가 떨어진다'였다.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키스 광고도 아닌데 끊임없이 키스 장면을 넣느냐 마느냐 이분법적 고민만을 '설렘'이란 명분으로 집착해왔다. 굳이 키스가 아니더라도 설렘의 포인트를 껌을 통해 표현할 수만 있다면 '설렘'과 '제품'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흔히들 '껌'을 '먹는다'라고 하지 않고 '씹는다'라고 표현할 것이다. 뜬금없이 이 부분에서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씹는다'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면, 대체할 수 있는 동사가 무엇이 있을까?. '머금다', '삼키다', '받다', '마시다', '넣다' 등 말도 안 되는 동사들이 언급됐지만, 그중 가장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표현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물다'였다. 사실 '껌'이란 단어 뒤에 '씹다'와 '물다'를 붙였을 때 의미는 엄밀히 말해 다르다. '씹다'는 이미 껌이 입 속에 들어갔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물다'는 입 속에 들어가기 직전에 표현이다. 이렇게 계속 '물다'란 동사에 집중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간의 흐름을 조금만 앞당겨 생각했을 때, 여자가 껌을 씹는 순간이 아닌 껌을 씹기 위해 포장지를 뜯는 행동이 남자에게 보내는 키스 신호가 되면 어떨까, 이후 신호를 받은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를 하기보다 여자가 입에 물고 있는 껌의 절반을 물어가는 게 키스 그 이상의 강렬한 설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드라마 '아이리스'의 사탕 키스 장면처럼. 물론 '드라마에서 나온 사탕 키스는 말 그대로 사탕을 통한 키스다.
만약 우리가 드라마와 유사하게 만들었다면 사탕 키스가 아닌 껌 키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퍼는 레퍼일 뿐, 비슷하게 따라 하기보단 좀 더 다른 결로 만들고 싶었다. 더불어 위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말아라'란 교수님의 말씀을 고려한다면,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하는 줄 알았는데, 키스를 안 하고 껌만 물어가네?"란 반응을 사람들에게 유도하는 게 영상의 여운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데이션을 하다 보니 어느덧 4월 중순이 되었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 달의 키워드'를 올릴 때가 되었다. 비록 아이디어가 완전히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러브스토리라는 건 변함없었기에 키워드를 선정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키워드는 우리가 보여주고자 한 러브스토리와 어울릴 달달한 키워드였으면 했고 '사랑', '연애', '데이트' 등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다 '썸'이란 키워드가 찾게 되었다. '썸'과 '껌',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발음 자체도 너무 비슷했기에 더는 고민할 것 없이 4월호 키워드로 결정했다.
키워드를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광고의 임시 카피는 '껌을 물다'였다. 바로 위에서 설명했듯 '껌'과 발음이 비슷한 '썸'을 키워드로 결정하고 보니 카피 또한 '껌을 물다'에서 '껌'을 '썸'으로 바꾸어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탄생한 최종 카피가 바로 '썸을 물다'이다. 문장 자체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아니 아예 없는 말이었으나 오히려 그런 점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포인트라 생각했다. 또한 우리의 스토리와 제품의 의미를 모두 내포시킬 수 있는 최고의 카피가 될 것 같았다.
4월호부터는 커버나 영상에 들어갈 카피를 캘리그래피로 만든다면, 보다 감성을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캘리를 할 수 있는 친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연아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연아는 시즌 2까지 진행된 '월감 한효민' 총 24편 영상 중에, 3월호 단 한 편을 제외한 23편의 영상에 캘리를 작업해주었다. 매편 영상의 엔딩에 감성을 극대화시켜준 연아에게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종 스토리는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의 썸 관계로 설정했다. 여기서 남자의 캐릭터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잘 표현하지 않고 숨기는 시크한 성격이다. 이와 달리 여자는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알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던 남자는 여자의 결정적인 행동, 즉, 여자가 입에 껌을 무는 순간 남자는 숨겨왔던 자신의 감정을 나타낸다는 열린 결말의 스토리다. 더 자세한 스토리는 아래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촬영은 이른 시간부터 홍대 부근에 위치한 와우산 공원에서 촬영했다. 촬영 며칠 전부터 로케이션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하고 가영이와 헌팅을 한 다음 결정한 장소였다.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홍대 주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어 촬영에 용이했고, 여기저기 벚꽃이 만개하여 계절감을 담기에 최적이었다.
촬영에 필요한 2명의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남주 역을 맡아준 희수는 3월호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유니브엑스포'란 대외활동에서 알게 된 친구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 기회가 된다면 희수를 월감에 꼭 한번 출연시키고 싶었다. 생각보다 그 바람은 일찍 이루어졌다. 4월호 영상 속 남주의 캐릭터가 시크하고 나쁜 남자이다 보니 내 주변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누가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희수가 떠올랐다. 실제로는 착하고 자상한 친구인데 왜 그 순간에 떠올랐는진 모르겠다. 나는 지체 없이 희수에게 연락해 간략히 스토리를 말해주고 출연을 부탁했다. 다행히 기분 좋게 도와주겠다고 말해준 희수 덕에 남주 캐스팅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희수를 섭외한 것과 달리 여주 역을 맡아준 아라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던 친구는 아니었다. 영상 속 여주 역할은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출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이 캐릭터를 찾기 위해 어김없이 수많은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생각만큼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결국 지인의 지인까지 동원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까지 오게 됐다. 아라는 그 과정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생전 모르는 사람의 연락임에도 불구하고 4월호 스토리를 친절하게 들어주고 출연을 승낙해준 아라에게 너무 고마웠다.
3월호 촬영 때 아쉬웠던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장비 구매를 결심했다. 가장 먼저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장비는 70-200mm 망원 렌즈였다. 감성을 지향하는 '월감 한효민'의 영상에 있어 심도가 얕은 렌즈가 필요했는데, 기존에 갖고 있던 28-70mm로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단지 심도만을 생각했다면 단렌즈를 사는 것이 맞지만, 고가의 렌즈를 여러 개 살 수는 없었기에 하나를 살 때 심도는 물론이고 여러 화각까지 가능한 망원 렌즈가 가장 효율적일 거라 생각하여 구매했다. 두 번째로 구매한 장비는 외장 마이크다. 카메라에 내장 마이크가 있었지만, 특정 부분의 소리만이 담기는 지향성 마이크가 아닌 사방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담기는 무지향성 마이크였다. 영상의 특성을 고려할 때 대사를 제대로 담기 위해선 외장 마이크의 구매는 불가피했다.
누군가 만약 4월호 촬영에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 두 가지를 이야기할 것 같다. 첫 번째는 벚꽃나무 밑에서 남, 녀가 서로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음악을 듣는 장면이다. 이 부분을 연출할 때 벚꽃이 무수히 바람에 날려주길 바랬다. 하지만 생각만큼 바람이 불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린 뒤에서야 비로소 벚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남자가 여자의 껌을 입으로 반만 무는 장면이다. 당시 희수와 아라는 처음 보는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초면에 껌을 입으로 무는 연기가 다소 어색하고 분명 부끄러웠을 것이다. 실제로 그 장면을 가장 많이 찍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두 배우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끝낼 수 있었고,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어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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