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잊혀진, 누군가에겐 뜨거운 이름
내가 일하고 있는 구라파의 먼 대학에서는 자이니치에 대한 책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학과 한국학의 접점으로, 국내보다 가끔은 국외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주제가 아닌가 한다. 외국에서 북한에서 관심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최근에 파칭코 소설/ 영화에서 잘 그려졌듯이 자이니치는 우리 식민지 시기의 역사 만큼이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역사다. 그 역사적 정황과 자이니치가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기란 쉽지는 않았지만, 여러 문헌을 토대로 이해한 바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자이니치란 누구인가. 그저 한자 그대로,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1965년 대한민국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건너간 한국 교민들, 소위 뉴커머들과, 식민지 시기 때부터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일본에 가고 '조선적'이라는 당혹스러운 신분을 감당해야 했던 올드커머들은 상당히 이질적인 집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본 국적도 상실하고 '조선적'으로 존재해야 했던 것은 그들이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건너왔던 사실에 따라, 어쩌면 타당한 명명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당시, 조선은 이미 예전에 대한제국으로 바뀌었고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강제 통합되었다가, 전쟁에 패망하면서 남북한이 각기 다른 나라의 점유 가운데 존재하던 임시적 상황에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전쟁 후 일본이 그들이 일으켰던 제국의 결과에 대해 일관한 무책임하며 이에 따라 무능하기도 했던 태도를 방증한다. 일본은 종전까지 제국으로서 동아시아 나라들을 모두 흡수하고 포용할 것 같이 이용하다가, 항복이라는 이름의 패배와 함께 갑자기 제국임을 포기하고 국가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내팽개쳐진 일본에 남은 구 제국민들은, 일본 국가에게도 일본을 임시 관리하던 미군에게도 배려받지 못했고 오히려 일본에게는 패배한 제국의 잔여물로, 새로 태어난 일본에게 묻은 오점 같은 것으로 여겨진 듯하다. 동아시아의 제국을 추구했던 경험이 있지만 그들의 제국은 철저한 일본 중심의 구조로, 내지인과 식민지민들을 구별하고 차별했기에, 일본은 그 안에서 어떤 다양성에 대한 존중 또는 외국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다.
이 가운데서 자이니치 집단은 연합하고, 싸웠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곧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주 적은 액수의 현금 반출만을 허용한 당시 미군정 정책에 따라 한풀 꺾이고, 또 남북으로 분리되어 냉전에 휩쓸린 연약한 조국의 상황에 두번 꺾였다. 그들은 임시적 상황에서 일단 항구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고, 학교를 세워 견뎌 나갔다. 임시적 상황은 장기적 상황이 되어 갔고, 일본에서 그들이 투쟁없이는 그저 존재하기도 어려웠다. 살던 곳에 계속 살기 위해, 취직을 취소 당하지 않기 위해, 정당한 연금을 받기 위해, 변호사 시험을 합격하고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위해 그들은 싸워야만 했다. 식민지 시절부터 겪던 차별을 기억하면서 그들은 타협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본 안의 조선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일본과 타협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역사를 송두리째 용납하고 항복하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던 조국은, 남한과 북한 어느쪽도 아니었다. 그들이 떠났던 조국은 이렇게 이념에 따라 척지고 분리된 나라가 아니었기에.. 그들에게는 남한도 북한도 애틋한 모국 중 하나일 뿐이다.
자이니치는 역사를 잊고 싶어하는 일본에 외면 당했지만, 한국 사람들의 무관심들은 과연 이들에 대해 떳떳한가. 자이니치는 우리가 꼭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역사다. 식민의 경험과만 엮인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분단 상황과 맞물린, 멍든 한국 현대사를 고독하게 오롯이 겪어내고 살아낸 자랑스러운 동포의 역사다.
예전에 한국에서 가끔 자이니치로 보이는 사람들을, 또는 사진을 봤을 때 느꼈던 이질감과 그에 따른 두려움을 기억한다. 그것은 조금의 다름에 대한 몰인정, 아주 약간이라도 북한과 관련되어 있으면 주춤하게 되는 본능적인 반공의 사회 분위기에 기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들을 존경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들이 겪어낸, 지금까지도 겪어 내고 있는 투쟁의 삶이 더 많이 기억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