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다시 도서관에 앉아서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의 오래된, 하지만 너무 오래돼서 희미해진 로망 같은 것이었다.
막연히 이야기와 새로운 지식에 빠져 지내던 어렸을 때 매주 토요일마다 구립 도서관 같은 곳에 갔던 기억이 난다. 늘 이국의 소녀 이야기들과 추리 소설들만 잔뜩 빌려 읽었지만 어쨌든 부모님들은 내가 책을 읽는다며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책을 마음에 새기면서 읽는 좀더 질적인 독서를 배우고 경험했어야 했던 아쉬운 시기이다. 그때는 이야기에 파묻혔다가 오가던 길이 좋아서, 막연히 사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진짜로 문헌정보학과가 어디에 있는지 진로 소개 책 따위에서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이 바람은 나중에 내 성적에서 가능한 최고치의 대학을 가늠하는 희망 학과 계산법에 익숙해진 뒤로부터는 잊혀졌지만, 그 모국어 독서 몰입의 경험은 견고하게 남아서 결국 학과로 '국어'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대학교 시절 시커멓고 거대한 도서관 건물 속으로 들어가면 철제 책장들 틈 속에서 머리가 시원하고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온도가 낮기도 했다) 내가 전공하는 분야의 서가에서의 설레던 기분. 책 제목을 훑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배움에 다가간듯한 기쁨이 있었다. 소설이나 한국학이나, 재미있는 분야의 서가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저 앉아 책을 읽기도 했었다. 다 읽지도 못할게 뻔한 책들을 꾸역꾸역 들고 대출해 가고. 차 뒷좌석에 잔뜩 쌓아 놓고 이리저리서 읽기도 하던 기억. 그 도서관은 끝없는 새로운 지식의 큐레이션으로 나를 들뜨게 했다.
여기 다시, 빳빳한 책을 대어 투박하게 제본을 한, 대학도서관다운 책들에 둘러싸인 내가 있다. 이제는 직장으로, 매일 아름답고 오래된 글자들로 가득찬 장소에 출근한다. 다소 투박하면서도 오래된 아름다움이 있는, 높은 건물 가운데 존재하는 자체가 감사함이라고 느낀다.
나에겐 다소 낯선, 직장 내 정해진 시간의 티타임을 갖는 스타프 티룸은, 사방이 아름다운 자연을 누릴 수 있는 높다란 창문으로 가득하다. 그 안에 앉아, 우유 넣은 티를 마시면서 봄을 알리는 벚꽃도 폭풍같은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여기 이곳 영국의 도서관에서 있는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여기 오랜만에 앉아 본, 서가 사이 띄엄띄엄 있는 책상들에서는 바삐 움직이는 키보드 소리가, 이 장소가 그저 아름답고 여유롭기만 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그들의 치열함. 외로움. 열정. 이 장소에서 다시 나에게 이식시키고 싶은 가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