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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Jun 21. 2021

이렇게 결혼식이 끝났습니다

셀프웨딩이 끝난 후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버진 로드는 예식이 끝나자마자 텅텅 비었다. 옷을 갈아 입고 나오니, 사진 전시실의 액자도, 테이블 위 화분도, 버진 로드의 꽃과 화분도 모두 사라져있었다. 예식 후에 갖고 가셔도 된다고 했더니 정말 다 사라졌다! 와우 (덕분에 정리는 빨리 끝났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사진전의 액자는 결혼식 도중에 이미 약간 사라졌었다고 한다. (결혼식에 늦은 지인이 사진전 구경하는데, 사진이 몇 개 없더라며...)


갈아입은 옷은 C는 양복, 나는 원피스에 재킷이었다. 따로 한복을 맞추지 않고, 예복으로 각자 좋은 옷을 샀다. 둘 다 인생에서 가장 비싼 옷을 맞춰 입고 인사에 나섰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한복은 평소에도 이후에도 딱히 입을 일이 없었지만, 당시에 산 예복은 그 뒤에 쏠쏠하게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버진 로드 근처부터 한 바퀴 돌며 인사를 하기로 했다. 시간이 많은 관계로 많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어차피 이 공간에서 신랑, 신부는 우리 밖에 없고 모두 우리 손님이기에 여유롭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보통 결혼식에서는 양가 어른들과 함께 테이블을 스쳐 지나가며 축하 인사와 함께 사진을 찍는 정도가 전부다. 이 하객들은 누구인지 부모님께 설명을 하고, 서로 인사를 하는 그 정도. 하객 입장에서는 밥 먹다가 신랑-신부가 스쳐가는 그 정도. 


하지만 우리는 하객들도 그 시간이 여유로웠는지 인사를 드리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멀리서 올라오신 C의 고모님 인사부터 나의 친척들, 친구들, 회사 사람들 모두 길게 길게 대화를 나누고 축하 인사를 받았다. 이결혼식에서 제일 인사를 많이 못한 집단이 있다면, 바로 버스를 타고 출발해도 저녁에 도착할 울산에서 온 손님들이었다. 아마 그들은 빠르게 인사하고 부랴부랴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한 바퀴를 다 도는데 1시간 반~2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2시쯤 식이 끝났고, 인사를 다 끝내고 손님 배웅을 어느 정도 하고 우리가 밥을 먹기 시작한게 4시쯤이었으니. 사실 입맛이 없어서 안 먹으려고 했었는데, 신랑/신부와 가족용 스테이크를 따로 내어주어서 구석에서 그걸로 식사를 했다. 그 날의 첫끼였다. 분명히 입맛이 없다고 했었는데 나는 스테이크 한 덩이를 다 먹었다... 



5시에는 세븐 스프링스가 저녁 영업을 시작해야 하기에 그 전에 모든 것이 정리가 되어야 했다. 셀프웨딩을 한다는 것은 꾸미는 것도 직접, 뒷정리도 직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결혼식은 끝났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늘을 위해 우리가 준비했던 것들을 마무리해야 진정 결혼식이 끝나는 것이었다.



일단 예식을 위해 치워뒀던 테이블이 원 위치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고(이건 처음부터 직원들이 해줬던 것 같다), 우리는 남은 짐을 챙기고, 정산을 해야 했다. 일단 빌려온 짐들부터 다시 챙겼다. 마이크와 스피커, 스크린,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는 반납을 해야 하니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은 우리가 갖고 온 짐들-우리가 갈아입은 옷들과 신발 등-을 챙기고, 레스토랑을 꾸미기 위해 동원했던 수단들을 모두 다시 정리하였다. 포토월과 예식 배경은 아버님께서 순식간에 해체해서 다시 갖고 가셨다. (포토월 천은 잘라서 우리집 중문 커튼으로, 예식 배경의 흰 천은 침대 커버로 잘 쓰이고 있다.)


그렇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공영 주차장 주차 티켓이 C의 점퍼 안쪽 주머니에서 나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니 이걸 못찾아서 결국 결혼식 시작할 때쯤, 후배에게 ATM에서 현금 찾고 그걸 천 원짜리로 바꿔와서 세븐 스프링스 카운터에 주차 티켓 대신 주차비로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는 요란한 일을 벌였는데, 이게 여기에 있었다니!! 결혼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C를 구박하다가 나는 아버지께 혼났다. 아버지는 결혼식 때 그렇게 애틋한 마음으로 잘 지내라고 편지를 읽어줬는데,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남편한테 뭐라고 하냐면서,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 줄줄 알아야지! 하면서 나를 혼냈다. 하하.  


버진 로드에 있던 율마 화분을 가져갈 비닐 봉지도 화분 박스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아니 화분이 그래도 꽤 커서 갖고 가기 힘들었을텐데.. 텅 빈 버진로드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이렇게 자잘한 사고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결혼식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턱시도를 반납하며 항의할 일만 남았구나. 



마지막으로 세븐 스프링스에서 나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정산! 카운터에서 식권 티켓을 받아 정리하면서, 정산 규모를 확인하는데 응? 내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최소 인원 250명 기준으로 식대를 예약했고, 세븐 스프링스 측에서는 최대 +20% 까지 준비해놓는다고 했었다. 1인 1스테이크가 제공되기 때문에 해당 예측은 중요했다. 우리는 300명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의 정산 인원은 400명이 넘었다. 일단 250명 기준에 추가 20% 하면 50명, 300명까지는 커버가 됐는데 남은 100명은? 


세븐 스프링스 측에서는 일반 영업을 위해 준비한 물량을 제공했다고 했다. 가격은 동일하게 정산. 다행히 못 먹은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이렇게 손님이 많이 왔을줄은 몰랐다. 나중에 듣자하니 한창 사람이 몰렸을 때는 자리가 없어서 한쪽 구석 창가에서 음식을 드시고 가신 분들도 있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자리가 없었다 혹은 주차가 불편했다 등을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신 분들은 없었지만, 목격담을 들으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편함을 겪었을 하객분들께 죄송했다. 누가 불편을 겪었는지를 몰라 따로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각각 현금으로 결제를 하였다. 신랑측, 신부측 따로 계산을 하고 현금 영수증을 등록했다. 카드 결제가 되는 것이 최대 장점이었지만, 어차피 목돈이 있는 것, 현금영수증 등록을 위해 그렇게 결제했다. 그리고 나는 그 해 연말 정산에서 처음으로 돈을 돌려 받았다! (직장 생활 8년 동안 이 때를 제외하면 나는 항상 돈을 더 냈다....) 세븐 스프링스 멤버십 할인도 받고, 적립도 받아서 이때 적립한 포인트로 몇 년의 결혼 기념일은 여기에서 공짜로 식사를 하는 호사도 누렸다. 



그렇게 세븐 스프링스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C의 가족들은 인천으로, 나의 부모님은 우리집으로, 나와 C는 빌린 물건들을 반납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아직 전부 끝난 것이 아니다!


홍대에 웨딩드레스, 신촌에 마이크와 스피커를 차례로 빠르게 반납하고, 명동으로 턱시도를 반납하러 갔다. 우리는 어딘가에 항의도 잘 못하고 협상도 못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큰 마음먹고 항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단순히 죄송하다고 하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 입을 신랑 턱시도가 바뀌었다니.. 양복점에서는 처음에 그럴리가 없다며 부정하다가, 돌려주는 옷의 사이즈와 아직 그 가게에 남아 있던 C의 피팅된 턱시도를 보고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를 했다. 사과의 의미로 셔츠를 한 벌 주겠다고 했는데, 이미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우리는 업체에서 가장 원하지 않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바로 '일부 환불'. 이걸 빌미로 백만원에 달하는 전체 양복 값을 환불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맞춤 양복은 우리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 패키지와 다르게 '웨딩 패키지'를 골랐기 때문에 내게 된 추가 값을 환불 요청하였다. 


참 신기한 건 업체들은 추가 서비스는 얼마든지 더 해주지만, 일단 받은 돈은 절대 일부라도 돌려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셔츠 한 장에서 셔츠 두 장 정도로 사과의 값이 올라갔지만, 우리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혼식날 신랑이 입은 턱시도가 문제라는 건, 결혼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인데, 이 손해는 누가 배상해 줄 것인가. 사실 전체 환불을 요구하지 않은 것만해도 우리는 충분히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1시간을 넘게 그렇게 얘기한듯 하다. 


결국 5만원을 돌려 받았다. 웨딩패키지로 진행하면서 추가된 돈이 10만원여 남짓, 턱시도는 패키지 중 일부이기에 일부만 돌려 받은 것이다. 값으로만 따지면 셔츠 두 장 가격이 더 비쌌을테지만, 우리는 절대 이러한 과실에 대한 책임을 추가 서비스로 때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극히 일부이지만 결국 현금으로 돌려 받았다. 그 돈이 얼마인지 보다 어쨌든 돌려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밤, 첫 끼니로 먹은 스테이크는 소화가 다 된지 오래. 또 다음 일정을 위해 우리는 그곳을 나왔다. 



9시가 넘었을까, 아직도 우리는 집에 가지 못했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 자르기. 다음 날 우리는 36시간 걸려 칠레로 갈 것이다. 그리고서는 매일 매일 숙소를 옮기는 극한의 신혼여행을 다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분명 긴 머리는 관리하기 힘들 것이기에 나는 결혼식이 끝나면 머리를 단발로 자르기로 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이대에 있는 미용실로 갔다. 미용사가 린스로 머리를 감겨주면서 머리핀을 빼기 시작하는데, 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헤어스타일인데도 핀이 엄청나게 꽂혀 있었다. 한무더기의 핀을 빼고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그리고 싹-둑. 결혼식을 위해 인내를 가지며 길러온 머리카락을 한 순간에 보냈다. 후아. 이제 결혼식 전의 나와 결혼 후의 나는 달라졌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예식 후에 미용실에 가서 샴푸하는 것을 추천한다. 각종 스프레이와 왁스로 굳어진 머리를 잘 감겨주고, 어마어마한 핀들을 직접 뽑지 않아도 된다. 아마 내가 집에서 직접 했으면 우왕좌왕 몇 번을 머리감거나 했을 텐데 미용실에서는 전문가가 순식간에 잘 해주었다. 그리고 스타일까지 바꾸면 기분도 바뀌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매우 좋았다. 나는 신혼여행 내내 이 날 머리를 자른 것이 엄청 훌륭한 선택이었다며 나를 칭찬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오니, 밤 10시 반쯤되었을까. 하, 턱시도만 아니었으면 이 모든 것을 다하고 부모님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는데... 밥 한 끼도 같이 못하고 부모님을 울산으로 보내야 했다. 게다가 다음 날 아침 인천공항에 가야 하는데 우린 아직 짐을 하나도 싸놓은게 없었다. 오늘도 잠은 다 잔 것 같다. 하루가 참 길구나. 그래, 잠은 비행기에서 실컷 자자. 여행 일정은 미국에서 6시간 가량 경유하는 동안 짜자. 그렇게 눈 앞에 닥치는 대로 일정을 소화하자 하면서 우리는 그 밤에 캐리어를 쌌다. 



2016년 3월 12일, 그 날은 하루가 참 길었다. 

내 생애 가장 큰 이벤트를 치렀지만, 무언가 뿅하며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인생은 끊김이 없고, 지속되는 것이기에. 오랜 시간 준비한 이 결혼식이 끝나도 우리는 여전히 할 것이 많았고 정신 없었다. 다만, 결혼식이 지나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에 내 보이는 우리의 관계가 연인에서 부부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 순간을 우리의 마음 속에 깊게 새겼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그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결혼이라는 과정 속에서 겪은 경험들은 영원히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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