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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Sep 18. 2021

임테기의 노예가 되다

임테기에 달린 나의 일상

유산 후, 다음 임신은 최소 두 번의 생리를 하고 난 다음에 하도록 권장된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다시 임신을 시도하고 싶지만, 몸이 충분히 쉬고 패턴을 다시 찾도록 휴식기를 주는 게, 건강한 임신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2018년 연말과 2019년 새해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시간을 보냈다. 국민행복카드에 남은 금액으로 몸보신 한약도 지어먹어 가면서. 


2019년 봄, 대지에 생기가 돌아오고 꽃이 피어날 때 우리는 다음 임신을 시도했다. 떨리는 2주가 지난 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이하 임테기)를 보는데.. 우왓! 두 줄이다! 와, 바로 이렇게 두 줄이 뜨다니?! 임신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이건 누가 봐도 두 줄



유산 후에 임신이 잘 된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두 줄이 곧 정상 임신을 뜻하는 건 아니었지만, 뭐가 됐든 안정이 필요할 것 같아서 당시에 준비하고 있던 하와이 여행도 취소했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에 다음 날 한 번 더 임테기를 했는데, 어라? 한 줄이다. 이렇게 짙은 두 줄을 봤는데, 한 줄이 뜬다고? 무엇이 진짜일까?


결국 며칠 후에 정확한 확인을 위해 병원에 갔고, 의사는 초음파에서 임신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임테기의 오류에 낚인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두 줄이 뜨는 오류가 있다니. 그래서 임신 테스트를 해볼 때는 다른 브랜드로 여러 번 해봐야 한다는 얘기가 있나 보다. 허망하고 허탈했다. 하필 그런 오류가 이 시점에 우리한테 나타나다니. 


의사는 낙담해하는 우리에게 난포 주사를 권유했다. 난포를 터뜨리는 주사. 난자가 배란되는 시점을 인위적으로 맞춰주는 주사다. 얼추 난포가 다 자랐다 싶으면 이 주사를 맞고, 배란이 예상되는 시점 전후로 관계를 가지면 임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배란 시점을 특정할 수 있는 건 임신 준비할 때 아주 중요한 정보다. 세상에 이런 것도 있었다니. 


생리 시작일 기준으로 대략 12일 후쯤, 난포가 어느 정도 자라고, 배란되기 전이 적기다. 난포 사이즈는 2cm가 넘어야 한다. 초음파를 보고 적당한 사이즈로 난포가 커진 것을 확인하면, 주사를 맞는다. 그리고 의사는 임신 확률이 높은 관계 시기를 알려준다. 우리는 이때 주사를 맞고 24~36시간 사이에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숙제를 받았다. 







C의 교대근무 스케줄 속에서도 우리는 숙제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임테기에 낚이지 않도록 준비했다. 실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최소 배란일 14일 이후, 생리 예정일이 지난 다음이다. 하지만 정말 빠르면 배란 10일 후부터도 임신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희미하고 흐릿한 두 줄이지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 테스트 선이 짙게 나타난다. 그래서 매일 테스트를 해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사치스러운 플라스틱 테스트기 대신, 몇 개씩 묶음으로 들어있는 스틱형으로 왕창.


숙제 후,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확률을 높이고, 타깃을 설정한 공격을 하였으니 적중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나는 일단 테스트부터 하기 시작했다. 숙제일 기준으로 10일이 되는 날부터 보이든 안보이든 매일 아침 테스트기를 적셨다. 



두 줄일까? 한 줄일까? 본격 임테기 노예의 길로 들어가다 보면, 일명 '매직아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냥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또 흐리멍덩하게 보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안 보이는데, 또 다른데 초점 맞추고 언 뜻 보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 내 눈에만 그런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나. 궁금증이 폭발한다.



그러다 14일쯤 되는 날, 아주아주 흐릿한 두 줄을 보았다. 드디어 사진에서도 언뜻 보일만한 두 줄이 보였다. 전날에는 긴가민가 하면서 C에게 보여주면 C는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건 아주 희미하지만 C도 보이는 것 같다고 한다. 와우! 성공인가?! 


처음에 두 줄을 본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바로 병원에 가 봤자, 이틀 정도의 간격을 둔 피검사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피검사 수치가 모든 것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자궁외 임신 같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초음파에 아기집이 보이거나, 난황이 보이거나, 아기가 보이거나 해야 한다. 그러므로 최소 5주 정도, 아기집이 보일 때까지는 매일 아침 첫 소변으로 임테기를 해보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추정할 뿐이다. (사실 권장사항은 이틀에 한 번이다. 하지만 이틀을 기다릴 수 없으므로 최소 매일 아침 정도로 확인하게 된다.) 테스트선이 대조선보다 진해지는 때, 그때 병원에 가면 임신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두 줄이 너무 흐릿했다. 수정이 늦게 됐나, 착상이 늦어진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이 두 줄이 진해지기만 한다면 조금 늦게 보인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희망을 품고 매일 아침에 테스트를 하였는데... 며칠이 지나도 딱히 진해지는 것 같지가 않다. 이틀 간격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아, 이건 뭐지... 불길하다. 심지어 더 옅어지기까지 한다. 이게 말로만 듣던 화학적 유산인가. 


처참했던 흔적. 배란일은 추정일이다.


피검사 수치 9.9, 화학적 유산 이른바 화유가 맞았다. 피검사를 두 번 해볼 것도 없었다. 비임신이면 피검 수치 1 미만, 임신이면 하루 이틀 사이에도 몇 백, 몇 천으로 금방 수치가 올라가는데, 이 시기에 그런 어정쩡한 수치라면 이건 임신이 되려다 만 것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당시 회사 업무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마음에 평온을 가지려고 해도,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은 일이 매일매일 쌓여왔고, 그게 터질 것 같던 날 나는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격하게 수영을 하였다. 그날을 기준으로 두 줄은 더 이상 짙어지지 않았다. 아, 회사를 다니면서 임신을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구나. 이래서 다들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적으로는 임신으로 인정되지도 않는 화유였지만, 정신적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유산 후에 임신 시도를 하면서 연이어 발생한 일들로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임테기 오류에 화유까지.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매 번 병원에 가서 주사 맞는 것도 일이고 하여, 배란 테스트기(이하 배테기)를 적극 활용해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름은 쉬고,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배테기를 활용하여 임신 확률을 높여 보고자 했다.  


아, 그런데 이것도 만만치 않다. 이론적으로야 배테기 수치에서 피크를 보고(짙은 두 줄) 관계를 가지면 된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배테기 피크를 보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은 수치가 8~9 이상은 되는 걸 보고, 24시간 내에 관계를 가지는 것이 권장된다. 하지만 수치가 쭈욱 오르다 피크를 봐야 판단이 될 텐데, 이 수치는 오르락내리락 들쑥날쑥한다. 그것도 5~6 수준에서. 지금 내가 보는 수치가 피크에 도달하기 전인지, 이미 지난 후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임신은 임신을 하기만 하면 그 상태가 지속되지만, 배란은 특정 시점이기에 그걸 맞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6개월여 동안 배테기를 쓰면서 피크를 제대로 본 적은 딱 한 번. 임신은 실패했다. 배란일 즈음인 것 같은데 수치가 너무 오랫동안 안 오른다 싶어서 병원에 가보면, 이미 배란이 끝난 뒤였다.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효율적으로 임신을 해보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실패의 지름길로 나를 안내했다. 매달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소변에, 테스트에, 두 줄에 집착하며 살았다. 언제나 스탠바이 상태. 부부 관계는 숙제와 같았으며, 술은 생리를 한 이후에 마실 수 있었다. 매 달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좌절과 절망, 그리고 해방을 맛보았다. 


나의 한 달은, 생리가 끝난 후 배란을 기다리고, 배란기가 지나면 임신을 기다리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한 달은 길고, 배란기는 짧았다. 짧은 기간 동안 모든 걸 쏟아 내고 나면, 나머지는 기다림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기다림 속에서 점점 피폐해져 갔다. 내 뱃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알 수 없기에, 유일하게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수단인 임테기에 집착하게 되었다. 내 몸의 모든 변화를 임신과 연관지어 생각했고, 언제나 난 '임신'을 했을 수도 있는 상태였다. 상상임신으로 가는 길목에서 임테기가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항상 날짜를 확인한다. 생리 시작일, 배란 추정일, 숙제일, 그리고 임테기를 확인하는 시기. 대충 10~12일이 지났다 싶으면 이때부터 매일매일 아침에 혼자 생쇼를 한다. 소변이 묻은 스틱을 들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3분 후 ~ 10분 이내 결과가 정확하다고 하는데, 정말 임신 극초기 때는 10분 이상 걸려야 선이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계속 바라보게 된다. 뚫어져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투시경이 된 것 같다. 지금 보이는 게 시약 선인지, 임신 호르몬에 반응한 선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니, 지금 내 눈에 선이 보이는 게 맞나? 나의 착각인가 싶다. 


정말이지 하루 24시간 중 나머지 시간은 다 쓸모없고, 오로지 이 시간만을 위해 매일을 보내는 기분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에 달려간다. 그리고 기다린다. 언제쯤 이 선이 나타날까, 과연 나타나긴 할까. 그게 진해지기는 할까. 매일 똑같은 하루에 갇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러다 생리가 시작되면 이제 매일 똑같은 한 달 속에 갇힌 주인공이 된다. 


그렇게 희망과 집착, 좌절을 반복하다 보니 해가 지났다. 어느덧 2020년. 자연임신을 했었기에,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임신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미 유산한지는 1년이 지났다. 매달 단호박 같은 좌절을 보는 게 나은지, 흐릿한 두 줄이라도 보고 접는 게 나은지 분간 조차 가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터널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볼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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