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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야바야바 Sep 30. 2016

<우리도 사랑일까> 이 배우, 미셸 윌리엄스.

배우 톺아보기 - 미셸 윌리엄스 편.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는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요리하는 발끝에도, 창문 유리로 내미는 손끝에도, 디저트를 먹는 숟가락 끝에도 그녀의 감정은 묻어있다. 정갈하게 골라 말하는 단어들 속에 순진함이 묻어있고 아이처럼 순진한 웃음 끝에는 우울함이 묻어난다. 마고는 마치 칼레이도스코프처럼, 두시간 동안 감정 변화의 스펙트럼을 미묘하고 또 정교하게 보여준다.


 미셸 윌리엄스는 어른아이 같다. 앳된 얼굴, 작고 왜소한 몸의 미묘한 움직임에 수많은 감정이 숨어있다. 그 감정의 원천은 어디서 왔을까. <도슨의 청춘일기>의 청순했던 '젠 린들리'를 맡았던 그녀는, 시간이 흘러 이제 어엿한 23년차 대배우가 되었다. 서른 한 개의 영화를 찍는 동안 그녀는 조금씩 진화해왔다. 많은 돈을 버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는 차분히 경력을 쌓으며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왔다. 오랜 시간 열과 압력을 견디며 자라온 보석처럼, 그녀는 작지만 밝게 빛난다.




    “저도 제 감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몰라요. 그저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거죠. ‘잊어버리는 것’ 은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내 안의 감정의 원천은 나 또한 어디서 오는지 잘 몰라요. 나는 그것이 일종의 ‘마법’이라 생각해요. 나도 모르게 예측할 수도 없는 연기를 반복하게 만들죠.”

                                                                                                    _ 미셸 윌리엄스, <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도슨의 청춘일기>

미 NBC 방송국의 <SOS 해상 구조대>(1993)를 통해 13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연기를 시작한 미셸 윌리엄스는 1998년 <도슨의 청춘일기>를 통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도슨의 청춘일기>는 워너브라더스 채널의 드라마 대표작으로 하이틴 드라마의 전형으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 그녀는 도슨의 친구 역인 ‘젠 린들리’ 역으로 출연해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유명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메소드 연기 대가의 자서전을 읽으며 연기를 체득했다는 그녀는, 따로 연기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어린 나이에 혼자의 힘으로 데뷔를 했고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성실하게 커리어를 쌓아왔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데뷔 초반 5년 간의 드라마 경력이 커리어 전반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기도 했었다. <도슨의 청춘일기>를 통해 얻은 전국적 명성은 치열하게 연기를 한 그녀에게 온 ‘당연한 보상’인 셈.





<브로크백 마운틴>

이안 감독의 2005년 작 영화.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감독상, 스코어상, 각색상을 비롯해 2006년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다. 미셸 윌리엄스는 이 작품에서 게이 남편 '델마'(히스 레저 역)의 아내인 ‘알마’ 역으로 열연하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도슨의 청춘일기’ 이후 특별한 커리어를 쌓지 못하던 그녀는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하이틴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벗는데 성공. 원래 ‘알마’ 역은 이 영화에서 ‘루린’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에게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오디션 장에서 미셸 윌리엄스를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알마’역을 정했다고. "미셸이 걸어 들어올 때, 나는 ‘됐어.’ 했어요. 대본을 읽기도 전에.”





<히스 레져>

그녀의 아픈 구석. 2004년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만난 히스 레저와 연인이 됐다. 둘은 2005년 약혼을 했고, 딸 마틸다를 가졌다. 둘은 3년간 연인 관계를 유지하다 2007년 파혼했다. 미셸은 '히스가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히스는 '미셸이 연기와 생활을 혼동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고. 히스 레저는 파경 이후 우울증, 불면증을 겪다 <다크나이트>(2008) 이후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인한 약물 오용으로 사망에 이른다. 미셸은 그의 죽음 후 한동안 정신적 공황에 빠졌고, 그녀와 딸에게 집중되는 찌라시 언론에 시달려 외부의 노출을 차단하기도 했다. 2008년 한 해 미셸은 잠정적으로 연기를 중단했고, 이후 그 사건에 대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마릴린 먼로>

 한동안 잠잠했던 미셸 윌리엄스는 2010년 <블루 발렌타인>을 통해 이전보다 '매소딕'한 배우로 돌아온다. 수많은 작품을 찍었지만, 그 중에서도 2011년 작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 스칼렛 요한슨, 에이미 아담스 등의 쟁쟁한 배우를 제치고 마릴린 먼로로 분했다. 캐스팅 후 ‘먼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라는 세간의 우려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3개월 간의 철저한 준비를 통해 빙의에 가까운 연기로 평단의 대 찬사를 받았고 이를 통해 ‘히스 레저의 전 여친’이라는 굴레도 벗어냈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2011년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수상은‘철의 여인’ 메릴 스트립)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마릴린 먼로를 분기점으로 서른 살이 되었고, 나 스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 즈음부터 미셸 윌리엄스는 <셔터 아일랜드>(2010), <우리도 사랑일까>(2012) 등을 통해 연기력을 만개하며 세계적 배우로 거듭난다.





<숏 컷>

미셸 윌리엄스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헤어스타일. 할리우드에서도 스타일리시하기로 소문난 그녀는 파파라치의 단골손님이다.실제로 구글에서 그녀 이름을 검색하면 길거리에서 파파라치에게 찍힌 사진들이 수없이 나올 정도. 반면 그녀 스스로는 셀럽으로서 세간에 언급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가 2005년 임신했을 무렵엔 요가센터에 가다가 자신을 따라오는 파파라치 때문에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었다. 스스로 자신이 유명배우라 여기기를 꺼려하는 그녀이기에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세간에 훨씬 덜 알려졌을 것이다. 그녀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하진 않았지만 오랜 세월 커리어를 쌓은 명배우로 거듭났다. 이는 자기 유명세와는 무관하게 항상 겸손하며 연기에만 집중하는 태도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블록버스터에 출연한 자기 자신을 생각한 적 있냐는 질문에)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요. 나는 가족처럼 느껴지는 영화가 더 좋아요. 배우로서 내가 어렵다고 여기는 한 가지는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서 발생하는 순간성이예요.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인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강하게 단결된 사람들이 모여 지속성을 갖춘 세계를 만들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곳을 매우 편안한 가족처럼 느껴요.”

                                                                                                    _ 미셸 윌리엄스, <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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