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태웃개와 나트랑
물과 안 친하다.
마시는 건 좋아한다. 너무 많이 마셔서 문제지.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샤워도 좋아한다.
내가 친하지 않은 건 물속이다.
수영을 못 한다. 어찌어찌 떠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고, 그러다 보면 잠수함처럼 가라앉는다. 아니, 물에 들어갈 때부터 문제다. 젖는 순간 옷감이 살갗에 들러붙는 감촉이 찝찝하다. 떼어도 떼어도 도로 붙는 까끌까끌한 모래도 깔끄럽다. 그런 사람이 제주로 이사하면 서핑을 배우겠다고 큰소리를 쳤다니.
본심은 이렇다. 안 친하다고 안 좋아하는 건 아니다. 바다, 하물며 수영장에서라도 물과 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10년 전쯤 배를 타고 할롱 베이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섬 연안에 정박하자 외국 여행자들이 풍덩풍덩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갑판 위에 엉거주춤 앉아 구명조끼도 안 입고 다이빙을 하는 그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알았다. 수영을 못하면 여행의 절반은 날아가는 셈이라고.
두 번째 책에 이런 말도 썼다.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그 계절에 어울리는 놀이를 하고, 그 계절이 제철인 음식을 찾아 먹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게 아차 하는 사이에 흘려보내고 남은 인생의 잔고를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쓰는 일이 아닐까 한다고. 책을 탈고하며 적잖이 찔렸다. 쓴 대로 사는 흉내라도 내보시지?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예쁜 표지가 빈정거리는 것 같았다.
햇볕이 쥐약인 나에게 특히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계절은 여름이다. 그래서 여름을 허투루 보내는 삶은 수영을 못하는 자의 여행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마음에 새겼다. 핑거 스냅 알지? 절반은 날아가는 거라고.
그리고 제주에 왔다. ‘여름’과의 덧셈이 항상 ‘물놀이’라는 답으로 도출되는 곳으로. 맥주병에게는 아이러니한 항등식이었지만, 그래도 분연히, 올해는 꼭 물놀이를 즐기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섬이라고 해도 한여름 땡볕 아래 논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제주의 태양은 같은 기간 서울에서 머리 위에 이던 태양과는 다른 천체 같았다. 더 젊고, 그래서 더 뜨거웠다. 그렇게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만한 위도 차이는 아니라고 한다면야 뭐, 할 말 없지만, 아무튼 제주에서는 뜨거운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당하는 느낌이다. 6월에는 아침 햇살조차 너무 따가워서 마당에 빨래를 너는 그 짧은 시간에 화상을 입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뜨거우니까 바닷속에 들어가야지!” 할 때, 나는 “이렇게 뜨거운데 물에 들어가도 일사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직도 한낮에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수리가 얼얼해진다.
바다에 들어갈 때 준비운동도 하고 팔다리부터 물도 적셔야 하는 것처럼 첫 삽은 조심스레 뜨기로 했다. 표선해비치해변은 집에서 가까운 해변이다. 아쿠아마린으로 넘실거리는 바다는 멀리서 봐도 아름답지만, 이곳의 진가는 직접 들어갈 때 알 수 있다. 오후 6시가 넘어도 해는 떠 있고, 수온은 몸을 담그기에 딱 좋다. 게다가 여기서는 수영을 할 필요가 없다. 만조에도 해변부터 방파제까지 몇백 미터 거리가 전부 수심 1m니까. 물이 좀 빠졌거나 아직 덜 차올랐을 때는 고운 모래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수면에서 미끄러진 윤슬이 쉴새없이 모래알을 딛고 튀어오르고, 파도가 모래에 새긴 무늬 위로 물결의 그림자가 겹쳐 흐른다. 가까운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며칠을 얕은 바닷속에서 보내고 나자 슬슬 물놀이 느낌을 내고 싶었다. 주말마다 잘 알려진 해변을 다녔다. 함덕부터 세화까지,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동네에서 살다가 북쪽 유명 해변으로 올라오자 훌쩍 문명 세계(?)의 바다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세기알해변은 주변 술집과 카페에서 둠칫둠칫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멀리 여행 온 기분이 드는 곳이다. 세련과는 거리가 먼,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날 것 같은 풍경도 휴양지 분위기를 부양한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유유자적 패들 보트를 타는 사람들, 방파제에 간이 의자를 놓고 바다와 마주 앉은 사람들, 모래밭 바깥에서 방호벽에 기대 해넘이를 즐기는 사람들, 저마다 여름 바다를 즐기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코난해변에서는 세속을 뒤로하고 오로지 태양과 바다만 즐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보았다. 태국에서 직접 들여온 옷과 숄을 파는 잡화 트럭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가면 갑자기 작은 만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라솔과 비치 타월이 좁은 모래톱을 나눠 쓰고, 트렁크부터 원피스, 비키니, 래시가드까지 취향 따라 입은 수영복은 단 한 점의 과시욕도 없이, 서로 의식함도 없이 바닷물에 젖어 든다. 머리 위로는 거대한 풍차가 모두의 시선을 하늘로, 먼바다로 띄워 보낸다. 내게 남아 있던 망설임도 그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렸다.
여름의 시작을 연 곳은 다시 남쪽, 서귀포시 위미리에 있는 태웃개였다. 구글 지도에는 ‘스노클 숨은 명소’라고 쓰여 있지만 숨은 명소는 무슨, 안 그래도 좁은 도로에 차들이 꽉꽉 들어차는 곳이다. 겨우 주차를 하고 바닷가로 내려가자 평범한 규모의 방파제에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돗자리 깔고 반라로 일광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음 통에 샴페인을 꽂고 무드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비싼 대여료를 받고 파라솔이나 평상을 빌려주는 관리자나 간식이나 음료수를 파는 상인은 없었다. 순수하게 돌, 파도, 계절의 절반을 야무지게 챙기는 사람들뿐이었다.
태웃개는 용천수와 바다가 만나는 옛 포구다. 구글 지도도 ‘스노클 명소’라고 알려주듯 물이 굉장히 맑다. 용천수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데, 35도가 넘는 더위에도 오래 몸을 담그지 못할 정도다. 방파제 안쪽, 작은 바위 만 근처가 그나마 적정한 수온이지만 수영을 하다보면 화들짝 놀랄 만큼 차가운 담수가 흘러들기도 한다. 사방에서 “앗! 차가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재밌다. 유난히 혹독했던 올해 강더위에 보란 듯이 내던지는 기쁨의 탄성 같기도 하다. 다만 물 안팎의 바위가 워낙 뾰족하고 미끄러워 팔다리에 상처가 나기 쉽다. 한번은 다리를 제대로 긁혀 피가 질질 흘렀는데, 다른 편의시설은 없어도 오전부터 오후까지 자리를 지키는 안전요원은 있어 소독과 지혈을 할 수 있었다.
아, 처음엔 얼마나 준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는지! 물안경도 없이 서프보드 모양의 튜브에 의지해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그다음 주말이 오기 전, 쿠팡맨이 우리 집을 여러 번 찾았다. 스노클링 세트, 구명조끼, 팔에 끼우는 튜브……. 내 평생 물놀이용품을 이렇게 많이 사게 될 줄이야. 흔히 말하는 ‘청물’이 들어오기 전이라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물속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고무관으로 호흡하며 새로운 세상을 구경한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아이와 물속에서 교환할 수신호를 만들기도 했고(“여긴 너무 차가워!” “여긴 돌이 많아!” ‘물고기야!“), 물에 빠질 걱정은 나보다 훨씬 수영을 잘하는 미쁜 아내 덕에 덜어냈다. 아이가 더 신났는지 내가 더 신났는지 모르겠다. 용감한 토박이 중학생들이 연신 방파제에서 다이빙하는 소리를 들으며, 수영을 못해도 바다를 즐길 수는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졌다.
그때가 이미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태웃개를 몇 번 찾지도 않았는데, 며칠 육지를 다녀오자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제주에선 10월 초에도 해수욕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흐린 날에 다시 찾은 태웃개는 텅 비어 있었다. 발을 들이밀어 봤지만, 온전히 몸을 담글 수 있는 수온이 아니었다. 놀이터에서 만나 즐겁게 놀았던 친구와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는 기분이었다.
차가운 용천수에 허벅지까지 담그고 버티며 이번 여름이 남겨준 고지서를 펼쳤다. 이 더위 언제 끝나나 내뱉은 수십 번의 탄식, 마당조차 나갈 수 없어서 집 안에서 보낸 수백 시간, 에어컨으로 탕진한 수십만의 전기 요금, 순전히 더워서 마신 맥주 수십 캔, 발등에서 무심하게 털어낸 수백 개의 모래알, 십여 번의 물놀이, 허우적거리다가 들이마신 1리터 미만의 짠물, 그럼에도 그 짧은 시간 나를 품어준 ‘바다’라는 세상의 7할.
어쩌면 이건 성적표인지도 몰랐다. 다음 여름을 대비하는 모의고사를 얼마나 잘 치렀는지 알려주는.
어쩌면 이건 여름에만 쓰게 되는 일기장 같기도 했다. 이대로 방학 숙제로 내면 이빨 빠진 페이지가 너무 많다고 선생님께 혼쭐이 날 것 같은. 그래도 손때며 연필 자국이 남아 처음보다는 두툼해진.
나쁘지 않았다. 여름과 너무 데면데면하지는 않았다고 느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여름을 되찾겠다고 냐짱으로 늦은 휴가를 떠난 건 아니었다. 정말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매일같이 물놀이를 즐겼다. 하긴 수영장이 워낙 많은 도시다.
루프탑 수영장에서 야간 수영을 하기도 하고, 사람이 아무도 없어 테마파크만큼 거대한 수영장을 가족끼리 전세 내기도 했다. 애면글면 평영 연습을 하다가 힘이 쭉 빠져 둥둥 떠 있을 때는, 저 멀리 보이는 냐짱 바다가 제주의 바다만은 못하다고 으쓱하기도 했다. 올겨울에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수영을 배워야겠다 싶기도 했다. 서핑을 하겠다는 다짐도 실현하고 싶었고.
여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인생의 반이 날아가고, 수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여행의 반이 날아간다, 라.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름 햇내기로 기지개를 켜면서 앞으로 그런 후회가 줄어들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