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공항에서

몬트리올 다이어리

by 베르고트

오전 10시,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다. 좌우로 무지막지하게 긴 이곳 공항은 목을 잘못 잡은 식당처럼 한가했다. 이 정도의 이용객이라면 이렇게 크게 만들 이유는 없었을 텐데. 하늘은 뿌옇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내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마땅히 미국적인 정취를 발견할 도리는 없었다. 에이프런에 쌓인 수하물이나 기내식이 실린 컨테이너는 삭막한 시대의 레고 블록이었다. 다음 비행기가 뜨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래도 이곳 어딘가에서 디트로이트 다운 무언가를 발견하겠노라며 터미널을 걸어 다녔다. 67번 게이트가 있는 터미널 동쪽 날개 앞엔 델타 항공의 비행기가 잔뜩 서식하고 있었다. 나도 저걸 타고 왔는데, 다음 비행기도 저건데, 사람이 소속감을 느끼는 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서 익숙한 이름의 카페와 기름 냄새나는 햄버거 가게, 미국 동부와 서부 양쪽의 장점만을 취한 고급스러운 스테이크 하우스가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테이블 위에 비치된 아이패드로 음식을 주문하면 자리로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눈길을 끌었다. 뭘 시키지도 않을 주제에 괜히 빈자리에 앉아 화면을 눌러보기도 했다. 이 정도가 공항에서 찾은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에서 연상되는 막연한 미래상의 증거 목록이었다. 아, 반대편 터미널까지 빠르게 이동하라고 설치해 둔,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익스프레스 트램도 빼놓을 순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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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이곳 터미널이 이 정도로 거대한 이유를 알았다. 이미 바쁜 승객으로 차고 찬 터미널인데 게이트에선 사람들이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치킨이 들어간 햄버거나 딱딱한 타코 피에 버무린 과카몰레를 점심으로 먹고, 나라면 아침, 점심, 저녁에 걸쳐 마셔야 할 커다란 컵에 청량음료를 담아 다녔다. 다들 얼마나 몸집이 큰지 한국에선 그리 작은 키가 아닌데도 소인이 된 기분이었다. 남들 먹는 모습에 허기가 진 나도 값비싼 연어 샌드위치 반쪽을 샀다. 매대에서 아무도 내가 고른 샌드위치를 집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물리적인 충격을 받을 정도로 짜서 병에 담아 파는 더치커피에 추가 지출을 하면서까지 입가심을 해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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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점심 메뉴 선택의 실패를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두 시간쯤일까 불만에 차 있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이 공항에? 아니다. 더는 공항의 시를 읽을 수 없는 삭막한 영혼이 되었다며 나 자신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뭘 써볼까 하고 만년필을 들었다가 매번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터지는 잉크를 닦은 게 전부였다. 손에 진 얼룩은 혹여 지금 기분이 이래, 라는 걸 내가 모를까 봐 주먹을 쥐어도 보일 만큼 또렷했다. 한국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열두 시간 반의 비행 중에도 그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영화 두 편을 보다 말았고, 글은 500자도 쓰지 못했으며, 졸지 않으면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몇 개월 전 방콕으로 날아가기 위해 여섯 시간의 비행을 했던 날보다는 훨씬 견딜 만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다지 편안한 환경이 아니라면 예전처럼 글을 쓰지도 못하고 책을 읽지도 못하며 심지어 영화조차 끝까지 보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해야 했다. 점점 더 자주, 나 자신이 더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매번 나 자신을 새로 발견하거나 새삼스레 실망하곤 한다.


이놈의 무기력은 네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도 두 시간을 더 날아가야 몬트리올에 도착할 수 있다는 피로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공항의 한가한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서인지도 모르고. 초대를 받아도 알아서 가지 않는 게 예의인 자리에 눈치 없이 껴든 형국이었다. 그래, 이곳은 내 최종 목적지가 아니야. 내가 가려는 도시는 이와는 다를 거야.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여행의 일부라는 자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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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시각이 되었다. 비행기는 에이프런을 떠나 고무줄처럼 그를 하늘로 튕겨낼 활주로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언젠가 차도에서 굴다리 위로 비행기가 유유히 굴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공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상으로 본 그 모습이 제법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여기 디트로이트 공항이 바로 그곳이었다. 이번엔 내가 비행기 안에서 발 밑의 차도를 굽어보는 셈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번쯤 직접 보고 싶다 바랐던 곳에 와 있던 것이다. 갑자기 봇물이 터지듯, 마음이라는 게 실상 내 안의 아주 작은 부위에 차 있는 수종과도 같아서 가끔 출렁이는 게 전부라고 믿었던 그 많은 시간을 우습게 만들 듯, 어딘가에서부터 어딘가로까지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도 위로 활주로가 가로지르는 공항을 보기 위해 이곳을 경유지로 선택한 게 아닐까 기꺼이 확신하면서. 이 상황이 픽션이었다면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원래 그런 일들의 연속이므로 개연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곧 아담한 비행기가 유쾌하게, 중력 정도야 사소한 장애에 불과하다는 양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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