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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Feb 15. 2021

지금, 혹은 이곳에 관한 책 세 권

별빛이 떠난 거리, 서울은 말이죠,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리뷰

1. 『별빛이 떠난 거리』, 빌 헤이스 지음



작가이자 사진가인 빌 헤이스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3월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의도는 팬데믹으로 변해가는 도시와 사람을 재빠르게 스케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심장부, 뉴욕의 한복판에서 말이지요.


코로나19 확산 초기, 미국 전체 사망자의 1/3이 뉴욕 시민이었을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저자는 뉴욕의 시내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람을 만나지만, 정말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지킵니다. 두 달여 만에 한 도시에서 2만5천 명이 넘게 죽었다면, 그 공포감이 어떨까요? 그리고 외로움. 빌 헤이스는 몇 년 전 오랜 파트너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게 멀쩡하던 직전 크리스마스에 막 새로운 인연을 만난 참이었지만, 관계가 더 깊어지기도 전에 생이별하는 처지가 됩니다. 빌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나이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두려움이나 절망만 주지는 않습니다. 팬데믹 이전의 사진과 에피소드도 병치하며 우리가 서로 거리낌 없이 관계를 맺고 어울리던 시절을 계속 환기합니다. 그리고 다른 뉴욕 시민들과의 대화를 옮기며 그들이 자신과 타인을 위해 재난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조명합니다. 우리가 코로나19 속에서 잊고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 속에서, 그리고 언젠간 현실에서 되찾길 희망하면서요. 그 점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 슬픈 책이 동시에 ‘아름답게’ 읽히는 이유입니다.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는데, 좋은 느낌이 홍수처럼 날 덮쳤다. 그건 어떤 예감 같은 것이었다. 앞에 놓인 새해는 정말 즐거운 한 해가 될 것 같았다.
틀려도 이렇게 틀릴 수가. _36p.

우리는 부두의 끝까지 걸어가면서 만족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무언가를-누군가를-너무나 가까이에 두고 싶은데, 그리고 정말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기회가 다시 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 _119p.

텅 빈 거리와 인도, 셔터를 내린 상점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친구가 말한다. 이걸 연대의 표시로 보자고. 모두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_173p.



2. 『서울은 말이죠…』, 심상덕 지음



자정이 되면 울리던 통행금지 사이렌, 골목마다 하나씩은 자리잡고 있던 구멍가게, 양복이나 전축, 대학교재 따위를 맡겨 급전을 마련하던 전당포, 커피 하나 시켜놓고 답배 한 갑과 시간을 고스란히 태우던 다방, 철마다 불이 환하던 양장점, 마을에서 물 깃던 우물, 가위질하는 엿장수, 종로를 환히 밝히던 야시장…


『서울은 말이죠…』는 이제 기억에만 남은 서울의 사라진 풍경을 하나씩 되살려 냅니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한 심상덕 작가의 방송 원고를 엮은 책으로, 한 편 한 편이 짧지만 거기서 그려지는 그림은 꼭 심야에 듣는 라디오처럼 머릿속에 널찍하게 펼쳐져요. 가끔은 내 기억으로 가져오고 싶은 장면도 있답니다.


전당포에 가서 급한 돈을 빌리고 싶어도 마땅히 맡길 담보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밥 먹을 때 쓰던 놋그릇을 맡기거나 남편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한 번씩 꺼내 입던 양복 한 벌을 전당포에 맡기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때는 모두 단벌신사였습니다. _「전당포」 중에서

겨울철엔 빨갛게 달아오른 톱밥 난로가 다방 안에서 훈훈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종일토록 벽에 기대앉아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시절, 그런 손님들을 가리켜 벽화처럼 온종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벽화'라고도 불렀습니다. _「커피」 중에서

(종로 2, 3가 사이에 있던) 야시장은 1940년대까지 아주 활발하게 운영됐습니다. 물건을 사라고 "골라 골라" 외치는 영세 상인들과 싼값에 일용품을 사려는 서민들로 항상 북적거렸죠. 예전에는 시골에서 서울에 오면, 낮에는 창경원의 동물원에 가고 밤에는 종로 야시장을 구경해야 서울 구경을 제대로 했다고 할 만큼 야시장의 인기가 좋았습니다. _「종로 야시장」 중에서



3.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박정훈 지음



어제도 배달 음식 드셨나요? 주문을 넣고 바닥을 뒹굴거리다 보면 딩동, 벨이 울립니다. 문을 열면 꽤 따뜻한 음식 ‘봉다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먹고, 리뷰를 남기고, 분리수거도 하면 또 한 끼가 해결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음식을 누가 가져다주었을까요? 목이 빠져라 기다리지만 문을 여닫는 순간 잊히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의 저자 박정훈은 오랫동안 여러 회사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했고, 그 과정에서 ‘배달 노동자’를 누구도 나서서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라이더 노동조합 ‘라이더 유니온’을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플랫폼 산업, 그중에서도 배달 플랫폼 노동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러프하게 결론부터 내리자면 이렇습니다. 최소한 한국의 배달 플랫폼은 회사가 근로자에 대한 책임은 최소한으로 적게 지면서 의무는 최대한으로 많이 지우고 싶은 쪽으로 나아가려 한다구요. 그러기 위해 배달 대행사들이 얼마나 갖은 노력을 다해 실제론 ‘근로자’나 다름없는 라이더를 근로자가 아닌 존재로 만들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읽고 있으면 ‘이제 배달을 시키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배달 라이더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될 해결책이 아니겠지요.


세상은 ‘혁신’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새로운 전략이 실제로 혁신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이 책은 그 뒤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 일례를 보여줍니다. 누구에게나 친숙해진 ‘배달앱’을 소재로, 저자의 폭 넓은 경험, 인터뷰를 곁들여 말이죠. 그래서 인간의 노동이란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피부에 빠르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도 플랫폼에서 시작한 캠페인이지만 오늘같이 춥고 길이 미끄러운 날 배달 메시지에 이렇게 남겨봅시다. “늦어도 괜찮으니 안전하게 와 주세요.”


근로자에게 사고가 일어나면 아무리 수전노 같은 사장이라도 마음이 무겁기 마련이다. 책임도 져야 한다. (…) 이러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겠다며 배달 대행업체가 등장했다. (…) 초기에 배달 대행업체의 광고 문구는 “사고가 나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였다. 끔찍하지만, 진솔하고 매력적이다. _57p.

파트너든 퀘스트든 이 용어들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하나다. 라이더가 하는 배달 일을 ‘노동’으로, 라이더를 ‘노동자’로 여기는 것을 방해한다. (…) 자기가 하는 일을 진지한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걸 방해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에 근로기준법이나 사업자의 진지한 책임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재밌는 게임에 진지충이 끼어들면 ‘노잼’이다. _97~98p.

계약서를 쓸 때는 사장이라며 위탁 계약서를 썼지만,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었고 휴식도 조를 이루어 취하게 했다. 심지어 다른 지역에 사람이 부족하다며 성북에서 용산으로 파견을 보내기도 했다. (…) 기업은 플랫폼을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이라고 광고하고 다녔지만, 그가 겪은 플랫폼은 30년 전의 낡은 배달 산업과 똑같았다. _156~157p.




* 이 리뷰는 여분의 책방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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