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관한 세 권의 책 리뷰
1. 『오늘도 손님이 없어 빵을 굽습니다』, 박무늬 글, 박오후 그림
카페를 운영한 적은 없지만 일은 해 본 적 있습니다. 공원 옆에 있던 곳이라 여름에는 제빙기가 텅 빌 정도로 바쁘고 겨울에는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죠. 손님이 없는 카페는 정말 조용합니다. 음악을 틀어도 조용합니다. 혼자서 가게를 지키고 있으면 그래서 소일거리를 찾게 됩니다. 선곡표를 다시 만들거나 샷 연습을 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보거나. 언니와 함께 카페를 운영했던 박무늬 작가는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구웠다고 합니다. 우선은 먹고요, 팔기도 하고요, 남으면 퇴근할 때 또 먹으려고요.
『오늘도 손님이 없어 빵을 굽습니다』는 베이킹 레시피와 스위츠 에세이가 담긴 독립출판물입니다. 저자의 문체엔 특별한 매력이 있는데요, 조곤조곤 높임말을 쓰면서 중간중간 자조적인 문장을 섞어냅니다. 설탕과 소금, 설탕과 고춧가루의 좋은 조합 같아서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집니다. 저는 자기를 까내리는 화법의 에세이를 좋아하거든요. 거기에 빛깔 밝은 감수성이 슈가파우더처럼 묻어있습니다.
직접 만들고 자기 식으로 풀어낸 레시피도 재밌습니다. “아기 엉덩이같이 된 상태”, “귀찮아서 생략”, “무심하게”, “자신이 없어서”라고 적힌 레시피를 본 적 있으신가요? 줄리언 반스가 읽었다면 일갈(?)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메뉴를 직접 만들고 레시피를 썼다는 점에서 결국 반스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그리고 박오후 작가의 귀여운 그림도 에세이, 레시피와 잘 어우러져 총천연색 음식 사진보다 더 입맛이 돌아요.
손님이 없는 카페는 결국 문을 닫았고, 해외에 일을 하러 나갔다가 돌아온 저자는 같은 동네에 서점을 열었습니다. 거리 두기 강화로 손님이 없을 땐 구독자들에게 보내는 주간 메일을 쓴다고 해요. 부디 다음엔 『오늘도 손님이 많지만 빵은 굽습니다』라는 책을 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쁘게 꾸민 얼그레이 쿠키들이 한참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게 미안합니다. 치장한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알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한참을 위로하듯 바라보고 있으니, 속 깊은 쿠키들이 속삭입니다.
‘그래도 밀크티는 잘 나가서 다행이에요.’ _61p.
어쩌면 주인이 좋아서 하는 카페에 손님이 없는 건 우주의 법칙 같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_108p.
베이킹만큼 손님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들은 저만을 위한 일이지만, 베이킹은 손님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책을 만드는 것도 비슷해요. 읽는 사람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것과 빵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_148p.
2. 『커리의 지구사』, 콜린 테일러 센 지음
커리는 어쩐지 인도, 한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에서만 먹을 것 같은 음식입니다. 하지만 커리는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전 지구적인 음식입니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서도 말이죠. 단지 ‘커리’라는 이름만 안 붙어 있을 뿐입니다. 저자가 내린 커리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향신료를 넣은 고기, 생선 또는 채소로 만든 스튜로, (…) 탄수화물 음식과 함께 먹는다.” 제가 만약 오늘 끓일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강황과 후추, 계피, 고수 씨를 넣는다면 이것도 일종의 ‘커리’가 되는 셈이죠. (진짜?)
저자는 커리의 종주국인 인도와 ‘커리’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쓴 영국의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인도는 오래전부터 온갖 향신료가 자생하는 곳이었고, 아랍, 몽골, 유럽 등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동시에 식문화가 다채로워지는 아이러니를 겪었습니다. 특히 ‘마살라’라고 칭하는 여러 향신료를 배합한 소스로 채소나 고기를 요리하고는 했죠. 그러다 동인도회사 설립 초기 영국이 인도의 향신료 요리에 푹 빠졌습니다. 한두 세기 만에 커리를 자신들의 ‘소울 푸드’로 만들어 버리고, 다른 식민지나 무역국에도 커리를 전파하지요. 해외로 대거 노동 이민을 떠났던 인도인들도 커리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드는 주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곳에선 인도 요리로서 ‘커리’라는 이름 그대로 불리고, 어떤 곳에선 로컬 음식과 결합해 새로운 이름을 달기도 합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카레’를 접하게 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의 문화사를 다루며 역사 공부도 시키고 배도 고프게 합니다. 어떤 사물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전파되어 쓰였는지 알려주는 이런 책들은 항상 흥미롭게 읽혀요. 같은 출판사의 밀크, 피자, 초콜릿, 빵을 다룬 시리즈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이 시리즈의 백미는 감수를 맡은 주영하 교수의 특집 원고입니다. 저자들이 외국인이고 음식을 개론적으로만 다루다 보니 한국 사례는 빠져 있기 마련인데요, 주영하 교수가 다양한 자료를 통해 한국은 어떻게 그 음식을 접하고 먹었는지 짚어줍니다. 음식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백년식사』 같은 주영하 교수가 직접 쓴 책들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이번 주말에 뭘 먹어야할지 고민이라면 카레라이스 한 번 만들어 드세요. 카레의 장점은 쉽다, 맛있다, 건강에 좋다 등등 카레에 쓰이는 재료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카레를 먹으며 읽으면 이 책도 더 맛있을 거예요.
향신료를 즐기는 관습이 진화하게 된 이유는 향신료에 강력한 항생제 구실을 하는 화학성분이 있어 음식을 상하게 하는 박테리아와 균을 죽이거나 억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항상제 성분은 마늘과 양파와 어우러졌을 때 훨씬 더 강해진다.
향신료의 요리학적 가치는 요리에 맛과 질감, 깊이를 더해주는 데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은 비용으로도 단순한 음식에 맛을 낼 수 있다. _44p.
인도 식당의 메뉴는 정말 ‘인도’에서 먹는 음식일까? 세계 곳곳으로 퍼진 전형적인 인도 식당의 메뉴는 대체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인도의 보통 가정에서는 코스 요리로 식사를 하지 않는다. 대개 음식을 한번에 모두 차려 먹는다. 칼로리는 대체로 탄수화물로 섭취한다. (…) 인도인에게는 육류를 중심으로 한 서양식 개념의 메인코스는 생소한 식사 방식이다. _78p.
(한국에서) 1930년대 후반이 되면 부자들은 ‘카레’를 간편하게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으로 여겼다. 주부의 입장에서 보면 ‘카레’는 감자나 당근만 있으면 미리 구입해둔 통조림과 커리 가루로 집에서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이러한 간편성과 서양의 이미지, 그리고 여러 가지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서 건강에도 좋은 음식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커리가 일반화되었다. _209p.
3. 『미식견문록』, 요네하라 마리 지음
어느 아담한 서점에서 이 책을 꺼내 들었을 때, 한국판 제목과 원제의 차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미식견문록』과 『여행자의 아침식사(원제)』라는 제목이 한 점에서 벌어진 두 변이고, 진짜 내용은 둘 사이에 부채꼴로 널찍하게 들어있겠다 싶었지요. 요즘 음식에 관한 책을 주로 읽고 있기 때문에 구미가 돋았습니다. 부채꼴, 하니까 맛있는 소 부챗살도 떠오르면서요.
그런데 웬걸, 음식 칼럼인 건 맞는데 1부의 배경은 주로 러시아입니다. 저자가 작가이자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로 평생 살아왔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이건 예상 밖의 횡재였습니다. 음식 에세이에서 러시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그리 흔치 않거든요. 심지어 원제인 ‘여행자의 아침식사’는 러시아에서 아주 맛없기로 소문난 통조림 이름이었습니다. 호텔, B&B 조식을 상상하던 독자에게는 샤슬릭 꼬챙이처럼 쿡 들어오는 반전이었죠.
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지만,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생전에 미식가 혹은 대식가로 널리 알려진 듯합니다. 어렸을 적 키우던 병아리 떼가 모두 죽어버린 후 한동안 달걀도 닭고기도 입에 대지 못했던 저자가 맛있는 카스텔라에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새로 태어나는 도입부만으로도 이입이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게다가 은근히 장난기가 있어요. 또, 음식 에세이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에 관한 정보, 역사, 루머와 그로 인한 해프닝 등도 상세하게 들려줍니다. 2부는 독특하게 세계 각지의 신화, 성경, 전래동화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로, 3부는 진짜 ‘미식견문록’다운 미식 여행기와 소박한 일본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꾸려졌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지막지하게 추운 러시아 사하에서의 강 낚시. 현지 낚시꾼이 조금 따뜻해진 영하 53도에 일행을 이끕니다. 바다처럼 넓은 레나강의 얼음을 깨고 낚싯줄을 드리우니 금세 입질이 오는데요, 물고기를 잡아 올리자마자 몇 번 펄떡이다가 순식간에 얼어버렸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먹느냐? 대패로 ‘언 회’를 떠서 먹는다고 하네요. 정말 놀라운 겨울 나라입니다.
어머니가 “어, 거기도 달걀이 잔뜩 들어 있는데” 하셨다. 그 순간, 팔딱거리다 죽어간 병아리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카스텔라를 먹었다. 기왕 독을 먹을 거면 접시까지 핥자는 심정이었다. 아니, 하필이면 그렇게 맛있는 카스텔라였을까. _24p.
그들은 맛이 없어 통 안 팔리는 통조림을 계속 생산하는 데 드는 막대한 낭비와 헛수고를 멈추고 맛을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 생산과 판매를 방치한 채 풍자하고 야유하는 우스개를 만드는 쪽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러시아인의 기막히게 비생산적인 열정, 그야말로 지극히 문학적인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_38p.
나라면 우선 인간을 ‘살기 위해 먹는’ 타입과 ‘먹기 위해 사는’ 타입으로 나누겠다. 이쪽이 성격을 훨씬 더 정확하게 맞힐 수 있으리라. 전자는 공상벽이 있는 염세주의적 경향의 철학자에 많다. 후자는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려는 현실주의자에 많다. (…)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양극단의 중간에 퍼져 있겠지. _201p.
* 이 리뷰는 여분의 책방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