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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Oct 07. 2021

Ultima spiaggia 마지막 휴식처

Isola di Ventotene, Italy

Isola di Ventotene, Italy

A 일 하러 갔다고 하지 않았어?

- 일 하러 왔어. 호텔 테라스에서 저런 풍경을 보면서 일 하고 있지. 그나저나 나와 연락이 된다는 사실에 좀 더 감사하도록 해.

A ???

- 내가 wifi를 잡아서 이런 사진을 보낼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이...

A 어제 심지어 바다 위에서도 로밍된다고 신났잖아?

- 배에서 내려서 이 섬에 도착하니까 끊기더라. 호텔 방에서도 wifi 잡히지 않음.

A ... 김전일이 좋아하겠는데 그 섬.

- ... 김전일이 좋아하기에는 좀 커. 사람도 좀 많고 (768명 2018년 기준)... 어쨌든, 호텔 공유기 위치를 죄다 파악했지.

A 아니 거기까지 가서 왜 그렇게... 아 너 일 끝내야 하는 거 있다고 했지. 듀 얼마 안 남은 거. 그거 안 끝냈어?

- 닥쳐...!


슬슬 다시 출장 일정이 잡히기 시작했다 (여전히 온라인으로 하는 일이 더 많지만). 6월에, 이탈리아 벤토테네 Ventotene라는 섬에 9월에 갈 일이 있는데... 라는 말을 들었지만, 가능하긴 한가? 싶어서 별 생각을 안 했는데 가능하더라. covid-19 검사 3번쯤 해야 하고 (영국-이탈리아 가기 전에 한 번, 이탈리아-영국 오기 전에 한 번, 다시 영국에서 한 번 더),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더 늘었지만.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여행에 대한 감을 잃었다 -라고 하기에는, 원래도 좀 대책 없다. 로마까지는 비행기. 출발 직전에야 찾아보니 로마에서 포미아 Formia까지 기차로 가서 거기서 벤토테네 까지 는 페리로. 그런데 배가 하루에 2-3번 뜨네...? 알고 지내던 이탈리아 애가 이탈리아 기차에 대한 두려움을 전파해서 좀 걱정했는데, 막상 타고 보니 영국 기차보다 시간 잘 맞추는 듯. 창 밖 풍경도 예쁘고, 영국 과는 많이 다른 데다, 기차 안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즐겁게 (하지만 지쳤음) 왔는데, 어라 페리 시간보다 3시간 일찍 도착했다. 게다가 일요일. 앉아 있을 만한 곳도 거의 없음 (맥카페가 열려있었다). 들고 온 짐(18인치)은 가볍지만 이 동네는 산 바로 밑에 해변이라. 기차역은 저기 언덕 꼭대기에 있고요. 페리 타는 곳은 저 아래... 좀 넋 부랑자로 다니다가 동네 맛집 인 듯한 멋진 디저트 집 (Troiano Pasticceria)을 발견하고 어떻게 어떻게 칸놀리 cannoli를 샀다. 아마 레몬 크림. 내가 얼마나 넋 나갔던지 사진도 안 찍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조금 만 더 정신이 있었으면 몇 개 더 사서 포장했을 것 같은데 (맛있음). 다 먹고 가게 주인 포스의 중년 여자분이 맛있었냐고 (굉장히 불쌍하게 생각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 상태가 좀 많이 좀비였겠지. 페리 타는 곳까지 다시 내려가서, 거기서 다시 넋 놓고 있다가 2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섬에 도착했다 (그리고 로밍이 끊겼다).


Noooo….

원래 벤토테네에 오기 전에 마무리 짓고 오려고 했던 일 이 있는데 (듀가 가까움), 늘 그렇듯이 다 못 끝내서 (그래서 더 좀비 같은 몰골이었다) 여기서 해야 하니까 이메일이며 등등을 보내고 받아야 할 텐데, wifi가 안 잡히고 로밍도 안되니 잠깐 정신이 뭔가 퓨즈 끊기듯이 나가는 느낌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21세기에 wifi가 아예 안 잡힐 리가 하며 호텔에 물어봤더니 공유기 몇 개가 있고 테라스 쪽에도 있어서 결국 일주일 내내 휴식 시간마다 나는 그 테라스의 지박령이 되었다. 경치가 좋아서 다행이었지.


사실, 체력이, HP에 빨간불이 반짝입니다 같은 느낌인 상태로 가서, 다른 사람들은 휴식시간(이탈리아 답게 길었다)이나 아침 시간에 조깅이며 바다수영을 즐겼으나 나는 바다는 이만큼 (즉 테라스) 떨어진 곳에서 그냥 바라보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이라. 섬에 고대 로마 유적지도 있고, 여기 심지어 버드와칭 명소고, 근처에 정치사범 수용소(지금은 닫음. 이탈리아 대통령 중 한 명이 거기 수감된 적이 있다고)가 있는 섬도 있다 하지만, 죄다 시큰둥했다 (그냥 듀 맞추느라 발동동 구르는 거였다). 수요일에야 끌고 온 일이 적당히 마무리되어서 마음의 안정을 좀 찾고는 비는 시간에 동네 산책을 나가 볼까 싶어 서점을 검색했다. 섬도 작고 인구수도 적지만 혹시 모르니까. 작아도 이탈리아 동네니까 광장 Piazza Castello 이 있고 그 주변에 괜찮아 보이는 가게들이 있는데 서점도 있고? 오 게다가 구글 리뷰가 심상치 않게 좋았다.


서점, Ultima  spiaggia

찾아보니 ultima는 마지막, spiaggia는 해변, 휴양지인데 연결해서 마지막 휴식처, 라고 번역해 봤다. 서점이 그런 느낌이다.

Ultima spiaggia

낮 시간에 기온이 확 올라서 그런지 서점이나 다른 가게도 꽤 늦게까지 문을 연다. 저녁쯤에 갔다. 입구부터가 너무 귀엽다. 동네 주민 화가가 그린(추측) 벤토테네 풍경 일러스트를 넣은 내년 달력이 있길래 우선 그것부터 고르고.

입구는 작지만 안쪽으로 공간이 길다. 아기자기하고 책이 가득. 맨 안쪽에는 너무 예쁜 그림책만 모아 놓았고… 이거 꿈인가. 여기 섬인데. 동네 주민이 800명이 안된다던데. 팬데믹 겪으면서 살아남아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떠나기 전까지 매일 동네 산책하며 서점에 들렀다. 이탈리아어 못 읽지만 그래도 표지와 아는 단어 몇 개로 무슨 책인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이탈리아 섬에 대한 책을 살까 하다가 내려놨다가 다시 돌아갔더니 누가 그새 사갔더라.

정말 맹렬히 고민한 끝에 그림책을 두 권 샀는데 후회한다. 10권쯤 샀어야 했어. 섬이어서 바다나 해양생물 관련 그림책이 많았다. 벤토테네 역사(추측)를 그린 만화책도 있었고, 뭔가 해군이나 해적인 것 같은 근사한 분이 주인공인 듯한(추측) 만화도 있었고.


슬슬 동네 산책을  다녔다. 오후에 기온이  다가 5시부터 식어서 선선해져서 다니기 좋았다.

동네 빵집. 맛있었다.

고양이와 개, 새에게 친절 한 동네인 듯했다. 가게마다 근처에 강아지 줄 거는 곳이 있었다.

여기서 기다릴게요, 라니. 너무 귀여워…



Ventotene https://en.wikipedia.org/wiki/Ventotene

Ultima spiaggia https://libreriaeditriceultimaspiaggia.it/

Santo Stefano (옆 동네) https://en.wikipedia.org/wiki/Santo_Stefano_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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