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j Apr 23. 2022

오렌지와 커피, 버터 바른 빵

안느와 로자먼드

커피에 오렌지 주스. 오렌지 라떼. 처음에는 엌? 했는데 맛있단다? 제주도의 어느 카페에 귤로 만든 주스에 커피를 얹은 음료가 있다고. 흠. 생각해 보면 저 조합이 그렇게까지 기괴한 것은 아니다. 커피에 산미가 있으니. 나는 산미가 강한 커피는 좋아하지 않는데 - 그 계열이 좀 더 섬세하다(?)고는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닌데 뭐 - 귤, 오렌지 아니면 자몽을 커피에 곁들이는 것은 좋아한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나왔던.

오렌지의 속살을 깨물자 달콤한 과즙이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과즙을 넘긴 다음 바로 아주 뜨거운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셨고, 다음 순간 다시 신선한 과일을 깨물었다.
- <슬픔이여 안녕, 3장>

안느 (내가 처음 읽었던 번역에서는 안느였다. 요즘 번역에는 안)의 조언에 따라 거기에 버터 바른 빵 (또는 버터롤)을 함께 아침으로 가끔 먹는다.

귤, 커피, 사워도우 빵에 버터와 무화과 잼

그런 소설이 있다. 읽을 때 소설을 읽는다, 라기보다, 얘 여기 앉아봐. 네 생각은 알겠는데, 하며 화자를 머릿속으로 소환하게 되는. <슬픔이여 안녕>이 그렇다. 읽을 때마다 쎄실 나와봐라 좀 싸우자, 라는 기분이 들어서. 이야기 내내 쎄실은 자신의 내면을 저며서 보여주다 보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니, 네가 지금 스스로 검열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하며 좀 시비를 걸게 된다. 평온한 독서의 한 꺼풀 아래에서는 격한 내면의 대화가...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백주의 악마 (애거서 크리스티) 인용,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양육자가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고 사생활이 있다던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식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이들을 종종 당황하게 한다. 레몽은 쎄실을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것처럼' 대하지만 쎄실이라고 딱히 자기 아빠를 사람, 또는 인격체,라고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사실 시릴(쎄실의 여름 한정 연인)도... <슬픔이여 안녕>에서 쎄실이 동등하게 대접해 주는 대상은 결국 안느뿐이다.

...... 그런데 안은 나를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게 잘못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갑자기 시급한 일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
- 쎄실, <슬픔이여 안녕>


그리고 그 안느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 슬픔, 또는 죄책감, 그저 몇 가지 계략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것도 안느의 인생을 휘저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느낀 쾌락. 그 쾌락에 대한 죄책감. 쎄실이 그때 느낀 감정을 슬픔이라 정의하고 받아들여서 다행히 이 소설은 "쎄실 더 라이징" 같은 것이 되지 않았지...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안느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궁금했다. 안느 대체 저기(쎄실네 별장) 왜 간 걸까. 쎄실도 레몽도 당황하는 것을 보면 평소에 안느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 레몽이 불렀는데 ("내가 전에 안에게 의상 컬렉션 일로 너무 피곤해지면 여기와도 좋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 그 의도를 잘못 이해해서? 도착해서 엘자(그 당시 레몽의 애인)가 여기 같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직후 안느의 반응을 보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레몽의 평소 행실('아버지는 좀 경박하지만 사업적으로 유능하며 언제나 호기심이 충만하지만 이내 싫증을 내는 남자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 레몽에 대한 쎄실의 묘사)을 안느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마흔 살, 고독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일지도 모를 성적 충동...
- <슬픔이여 안녕>

10대의 나는 쎄실 (또는 사강) 만큼의 통찰력이 없었기 때문에 저런 이유는 생각을 못했고, 읽어도 와닿지 않았다. 이 소설의 안느는 뭐랄까 선입견이지만 나에게 '우아한 프랑스 여인'의 이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 줬기 때문에.

마흔두 살의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아주 매력적이고 세련되었고, 도도하고 지친듯하며 주변에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슬픔이여 안녕>
안은 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거의 하얀색에 가까운 그 특별한 회색 드레스는 마치 새벽녘의 바닷빛 같은 빛을 품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의 모습에는 성숙한 여인의 매력이 한데 모여 있었다.
- <슬픔이여 안녕>

덕분에 회색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이 나에게 남긴 두 가지 - 오렌지+커피+버터빵 조합과 회색.


안느에게 쎄실은 친구의 딸. 친구는 이미 15년쯤 전에 죽었고, 친구 남편이었던 레몽이라는 자는 유명한 난봉꾼. 아마 그래서 수녀원 학교에서 자란 친구의 딸이 세상에 출하되지 맡아서 몇 가지 알려주고 신경 썼지만, 글쎄, 안느에게 쎄실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까. 레몽이 엘자와 헤어지게 유도하는 (좀 더 쎄게 표현해야 하는데!) 카지노 외출에서 쎄실에게 떠 맡긴 역할을 생각하면 레몽이나 안느나... 댁들은 보호자 자격이 없다고!


어쨌든, 안느...  여름에,  거기에 갔을까?


어떤 것은 나이가 들어야 이해가 된다.

... 그녀는 자아상실의 공포에 떨고 있는 동안에도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종종 그녀는 과거의 그녀가 호르몬과 본능에 끌려 저지른 미친 짓들을 떠올리고 진저리를 쳤다.
- p.339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디북>

안느는 호르몬의 부르심에,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조급함에, 그리고 사회적인 압박에 흔들린 것이라고 나이가 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반짝반짝 빛나고 삶은 즐겁게 어쩌면 힘겹게, 하지만 빠르게, 지나간다. 나이가 들고 그 반짝임이 시들해지면서 어쩌지 행복하지 않아,라고 느끼게 되면. 전통적인 가치관이 들이밀었지만 내가 가지 않았던 그 길에 뭔가 더 좋은 것이, 행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언제나 완벽으로 스스로를 몰고 가던 사람이, 만족하며 살다가 삐끗하는 순간...


사실은, 그저 나이가 들어 에너지가 딸리고, 많은 것들이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자극이 드물어서 지루해지고, 조금씩 허무함이 마음을 갉아먹고, 거기에 호르몬의 농간이 더해진 것이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고 한들… 머리로는 알면서도. 경로 수정을 하려면 나이가 있으니 빨리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급해지고 그래서 잡은 게... 어 레몽? 아니 왜?! 안느, 주변에 사람이 그렇게 없었나요.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나는 늘, 너와 함께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 이제 이루어졌네.
- 로자먼드 <Evil under the Sun>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백주의 악마 Evil under the Sun>의 로자먼드 단리 Rosamund Darnley. 그녀는 런던 의류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이며 (Rose Mond Ltd) 등장할 때마다 푸아로가 눈을 빛내며 찬탄을 바치는 대상이다.

로자먼드 단리가 다가와 옆 자리에 앉자 에르퀼 푸아로는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껏 만났던 그 어떤 여인들보다 로자먼드 단리에게 감탄했다. 푸아로는 그녀의 독특함, 우아한 몸의 선, 기민하고 뛰어난 머리를 좋아했다. 그는 로자먼드의 단정하고 매끄러운 검은 머리와 모순적인 느낌의 미소를 좋아했다
 - <Evil under the Sun, Chap. 2>


푸아로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거기에 육체적인 매력이 있어야 하지만. <다섯 마리 아기 돼지>에서의 반응을 보고 처음에는 이과계의 유능한 여성을 거북해하나 싶었는데, 이과계라서, 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본인 세대가 추구했던 여성성이 전혀 없는데도 매력적인 사람(특히 여성)을, 또는 그 매력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로자먼드는 뛰어난 사업 감각, 거기에 예술성, 그리고 그 취향에도 딱 푸아로가 좋아하는 그런 고상함이 있다. 로자먼드의 매력은 푸아로 세대가 선호하던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매력이다. 그래서 로자먼드가 등장할 때마다 푸아로는 최애를 영접하는 것 마냥 황홀해한다. 심지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을 때조차.



하지만 그 로자먼드도 안느가 빠진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나이 들고 심술궂은 여자예요! 어쨌든 그게 오늘 내 기분이랍니다. 일 년에 2펜스씩 벌면서 듬직하고 말없는 남편이랑 여러 아이들을 뒤치다꺼리는 삶이 더 행복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 로자먼드와 푸아로의 대화 중 <Evil under the Sun>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 다른 이들의 선망, 내내 쌓아왔던 것, 그 모든 것들이, 몇십 년간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첫사랑이자 소꿉친구였던 사람과 마주하자마자 흔들린다. 그리고는 저런 말을... 이거야 말로 호르몬이 이때다 하고 빈틈을 찾아 공격한 게 아닌가.


하지만 언니(?) 켄 마샬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네 사업 그만두고 나랑 시골 가서 살자, 그거 그만둘 만큼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그 정도의 애정은) 나에게 필요 없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인간인데요... 어엌 그래요 뭐 행복할 수도 있지. 하지만 저 '첫사랑 소꿉친구'는 아무래도 코페투아 Cophetua 콤플렉스가 의심이 됩니다?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 우위 (권력이든 감정이든)를 점하는 것에 집착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정말이지, 언니 걔는 좀, 싶지만 푸아로도 딱히 아무 말 안 하는 걸 보면 저럴 때는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오히려 더 집착하겠지) 알아서 그러겠지 싶다. 사실 미스 마플 데려와도 안될 것 같죠. 그래도 영영 떠나 버린 안느와는 다르게 로자먼드는 런던으로 돌아가서 냉정히 돌이켜 볼 시간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켄 마샬 거하게 걷어차 버렸으면.



그러니까, 그녀들에게는 친한 자매나 단호하고 사려 깊은 절친이 필요했던 거다. 특히 안느. 레몽네 휴가지에 가려고,라고 털어놨을 때, 너 잠은 제대로 잤니, 요즘 일한다고 스트레스 심하지 않았니, 밥은 먹었니, 배란기라거나 PMS는 아니니, 확인하고 자, 푹 자고 저기 네가 좋아하는 레스토랑 가서 같이 이거랑 이거 먹자, 여기 좋은 술이 있단다... 며칠 뒤에 다시 이야기하면 어때, 라고 해 줄 사람이 있어야 했던 거다. 사람은 말이죠, 잠이 모자라거나 정신적으로 몰렸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에요. 로자먼드는 그래도 런던으로 돌아가면 그런 친구들이 있지 않을까.



덧. 쎄실은 새엄마 후보(안느)랑 자기 아빠 헤어지게 하려고 주변 사람 조종해서 계략을 짜는데 린다(<Evil under the Sun>의 켄 마샬 딸)는 새엄마(로자먼드 아님)가 싫고 싫고 또 싫어서 저주인형을 만든다... 시대적 배경이 10년쯤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쎄실이랑 린다 나이대는 비슷할 텐데. 너무 편협한 시각이겠지만 조심스럽게 프랑스 vs. 영국인건가 하는 생각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듀나. 자음과모음 2011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김남주 옮김. arte 2019 (전자책)

<Evil under the Sun> Agatha Christie. Harper Collins (ebook. 인용의 애매한 번역은 나)

코페투아 Cophetua, 왕과 거지 소녀 https://en.wikipedia.org/wiki/The_King_and_the_Beggar-maid

'친구의 조언'은 트위터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보살핌, 유년기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