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와 주문 呪文, 새와 소년의 노래
주의 - 이 블로그 글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글은 좀 더 생각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직장 동료의 아이가 요즘 수수께끼를 주고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아이와 메시지로 수수께끼를 주고받으며 가끔 이거 알아? 하고 묻는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좋아했던 수수께끼가 생각났다.
날개 없는 새가 날아와서
다리도 없는데 나무에 앉아
입 없는 여자에게
프라이팬에 튀겨지지도 않고 소금도 치지 않은 채
먹혀버렸다.
Q. 날개 없는 새와 입 없는 여자는 무엇(누구)인가.
적당히 영어로 번역해서 알려줬다 (아직 못 맞췄음). 그리고 좀 놀랐다. 와 나 이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북유럽(아마) 동화/민화에 나왔던 수수께끼인데, 어릴 때 좋아했다. 북유럽 동화집은 거의 닳도록 읽었지... 이 수수께끼는 그 자체가 좋았다. 살짝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후반부가 묘하게 폭력적이고 - 날것으로 먹었다는 것을 저렇게까지 강조하다니 - 나름 운율도. 그 동화 자체는 기억이 희미하다. 뭔가 트롤, 아니면 트롤의 상위 존재 같은 것과 주인공(인간)이 내기를 해서 세 가지 수수께끼를 주고받는다. 저 트롤-상위 존재(추측)는 스핑크스를 벤치마킹했는지 (하지만 걔 망했는데) 답이 '인간'인 오래된 수수께끼를 낸다. 주인공은 저 수수께끼를 내서 트롤-상위 존재를 당황시키는데... 어라 반대였나…?
답은? 눈, 그리고 해.
어릴 때는 나뭇가지나 땅에 사락사락 곱게 내려앉는 눈 정도만 알고 있어서, 눈이 반짝이며 (질척이기도 하지만) 햇볕에 녹는 것을 어쩜 저렇게 포악하게 묘사하나 했는데, 프로비던스(https://brunch.co.kr/@minjbook/28)에서 보낸 첫겨울 깨달았다. 거기 북유럽이죠. 내가 미안해요. 몰랐어.
그전에 살았던 맨해튼도 눈이 꽤 오기야 했지만 인식을 못했던 게, 거기는 눈이 내린다, 싶으면 거의 실시간으로 제설작업에 들어간다. 덕분에 잔디밭에 곱게(?) 치워진 눈더미를 보고 와 눈 엄청 왔구나 같은 해맑은 감상이 가능했던 것. 프로비던스는... 더 북쪽에 있는 곳에 비하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11월부터 3월 (가끔 4월)까지 눈이 내린다. 처음에는 그저, 와 눈 내리네 예쁘네 했지만 비상식량, 물, 전기 랜턴을 준비하라는 문자를 받고 뭔가? 싶었다. 그리고 2시간쯤 지나 깨달았다. 눈 쌓이는 게 무서워... 나는 집을 빌렸으니 다행히 눈을 치우는 것은 집주인의 일이었다. 눈이 좀 그칠 때쯤 되면 다들 열심히 집 앞의 눈을 치운다. 눈 치우는 사람도 고용하고.
이렇게 눈이 내려대면, '태양이시여 제발! 이것들 좀! 얼른! 어떻게든! 치워버려!' 뭐 이럴지도. 평생 그런 곳에서 살면 익숙해서 별 생각이 없으려나. 어쨌든 저 폭력성 - 프라이팬에 튀기지도 않고 소금을 치지도 않고 먹어버렸다는 - 도 이해할 수 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꽤 인간적인 고뇌에 기반을 둔 수수께끼가 아닌가...
이 수수께끼에서 해는 여성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해의 신은 아폴론이지만 우리나라 민화의 해와 달에서 해는 여동생이다. 북유럽 신화의 해의 신, Sól 도 여성이다 *1. 여기도 해와 달은 오누이. 같은 성별로 지정된 신화도 있더라.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둘 다 남성인데 관계성이 다르다. 달의 신 Nanna/Sin의 아들이 해의 신 Utu/Shamash. 달의 신의 딸은 Innanna/Ishtar, 금성이다 *2, *3.
어떤 동화/민화는, 내용은 대충 기억하는데 제목/지역이 기억이 안 나고 (유럽 어디인데...), 거기 등장하는 기도문, 이라기보다는 주문, 이 희미하다. 어머니가 어린 소녀를 뭔가 열매가 열리는 덤불(?) 아래에 두고 일하러 가면서 이 열매를 먹을 때마다 그 열매와 예수의 피/희생이 들어가는 기도(아무래도 주문 呪文임)를 읊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당연히 아이는 배가 고프니까 그냥 나무 열매를 먹어버리고 트롤, 아니면 작은 악마들이었나, 어쨌든 걔네들에게 끌려간다. 다행히 소녀는 거기서 나름 잘 지낸다. 물질적으로는. 먹을 것은 풍족하고 일상생활도 나쁘지 않은 듯. 하지만 주변에 같은 인간이 없고, 이 작은 악마들인지 트롤들인지는 자기네 아이 하나와 소녀의 결혼을 강요한다. 소녀가 10대 후반이 될 무렵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왔다가 마침 거기 잡혀있던 소녀도 구하는데...
이 주문이 기억이 안 난다! 머릿속이 간질간질해... 노간주나무 열매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걸리는 건 그림형제의 <노간주나무 Juniper tree> 뿐. 어쩌면 <노간주나무>가 너무 충격적이라 섞인 걸까. 나무딸기 덤불 그런 거였나 싶기도 하다. 부모님 집에 가면 어린 시절 책을 정리해둔 책장을 꼭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 다행히 어릴 때 열심히 모았던 세계 동화/민화 책이 그대로 있어서 - 막상 가면 잊어서.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 *4, 아니 이게 아니라, <노간주나무>는 식인, 근친살해, 죽음과 음식.
어머니는 나를 죽이고
아버지는 나를 먹었네
나의 누이, 작은 마를렌 Marlinchen,
내 뼈를 모두 모아,
비단 손수건에 감싸,
노간주나무 아래 뉘었네.
Kywitt, kywitt, 나는 아름다운 새가 되었네!
- 그림형제 <노간주나무> 중에서 *5
웬만한 HBO 드라마보다 폭력성/막장도가 높지 않나 싶은 내용에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뭐야(무서워) 했는데 생각해보면 <빨강 모자>도 만만치 않지... 나는 사냥꾼이 늑대 배를 가르는 부분이 무서웠다. 어쨌든 이 노래도 뭔가 입에 착 붙는다.
0. 기억나지 않는 북유럽동화
*1 Sól https://en.wikipedia.org/wiki/S%C3%B3l_(Germanic_mythology)
*2 Nanna/Sin https://www.britannica.com/topic/Sin-Mesopotamian-go
*3 Nanna/Sin https://en.wikipedia.org/wiki/Sin_(mythology)
*4 명탐정 코난 오프닝 테마
*5 노간주나무 https://en.wikipedia.org/wiki/The_Juniper_Tree_(fairy_t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