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Providence - H. P. Lovecraft
뉴잉글랜드 지역의 도시 이름은 처음 들으면 뭐...? 싶은 곳이 좀 있다. 예를 들어 New London (New York부터도 그렇지만 New London이 더...). 심지어 "New"없이 그냥 쓰는 곳도 있고. 영국 도시들 검색하다 보면 가끔 미국 도시가 섞여 나온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Amtrak을 타고 스쳐 지나가는 역 이름들을 보면서 어쩌다 저렇게 되었나를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예를 들어
1. 상상력 부족 이라던가
2. 두고 온 곳이 그리워서
3. 아니면 그 도시랑 비슷해서 (그건 아닐 것 같아...)
4. 지역명 따위는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살아남겠어!)
...
그리고 Providence. 여기 이름을 들었을 때 역시 4번이 답인가 싶었다 (+ 여기까지 살아서 도착해서 다행이야...?). 대체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어떤 일을 겪었길래 동네 이름을 Providence신의 섭리 라고 지었는가.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인 Rhode Island의 주도. 하지만 H. P. Lovecraft가 태어나는 바람에 오래된 그분들의 도시가 되었다 (... 반 농담이지만. 의외로 잘 모르던데. 하지만 Lovecraft tour guide 도 있다). 보스턴과 기차로 1시간 (또는 45분)이라는 애매한 거리 (저 기차는 시간표도 애매하다). 눈보라(블리자드라고 하는 쪽이 더 느낌이 산다)가 보스턴을 휩쓸면 높은 확률로 프로비던스도 같이 눈에 파묻힌다. 3월에도 블리자드가 와서 하루 이틀 정도 집안에 갇히는 정도는 뭐 (이메일/문자로 경고가 날아오면 물과 식량을 쌓아둔다. 전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 언덕이 많고 꽤 가팔라서 걸어 다니는 사람 (=나. 미국에서 8년 살았지만 차 없이 살았다. 그게 가능한 동네에서만 살긴 했지만) 은 - 특히 눈 오고 난 후-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곳이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상태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걷다가 지쳐 쓰러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오래된 도시들이 다 그렇지만 여기도 구역별로 분위기가 참 다르다. 다행히 살던 곳 ~ 직장 주변은 꽤나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도시 분위기가 났다. 산책하다 보면 잘 관리된 집들이 예뻤다. 하지만 길 잘못 들면 비어있는 오싹한 집들을 지나가게 되기도 한다. 황폐한, 이미 전성기가 지나서 서서히 무너지는 것 같은 구역도 있고.
Books On the Square (471 Angell St.)
Brown Bookstore (244 Thayer St.)
이 동네에서 자주 갔던 서점은 두 군데. Brown 대학 서점이랑 Books on the square 다. Brown 대학서점은 할인 판매하는 책이 꽤 많고 다양했다. Ruth Rendell의 Tigerlilliy's Orchids를 여기서 발견했었지... 표지+제목만 보고는 그런 내용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이 책으로 영국 의료 서비스의 실상을 간접 경험했다. 서점 안의 카페(Blue State Coffee) 자리가 꽤 좋다. 커피는 그냥 그랬지만 양배추 절임이 들어간 랩 샌드위치는 종종 생각난다 (점심으로 자주 사 먹었다).
Books on the square는, 근처에 (454 Angell St.) HP Lovecraft square가 있지만 밝고 활기찬 분위기의 딱 동네서점이라는 느낌의 서점. 기념품 사기에 좋은 곳!
Benefit St.
커다란 나무와 19세기 집들이 어우러진 거리. 6월이면 나무가 우거져서 푸른 천장을 만든다. 햇볕이 녹색으로 아른거려서 그 아래에서 한참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파스텔톤의 예쁜 집들과 H.P.L. 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Cafe Pearl at RISD Museum (224 Benefit St.)
RISD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미술관 구내 카페인데 이 카페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RISD 미술관보다는 그 안의 샵에 더 자주 갔었다. 재미있는 게 많아서. 샵은 언덕 아래 1층에 있고 이 카페는 언덕 위 1층(?)에 있다. 이 동네 언덕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미술관 카페답게 내부가 예쁘다. 바깥의 작은 정원이 보이는 자리도 있고 (한 번도 못 앉아 봤지만). 그리고 중요: 여긴 커피가 맛있다(!). 아침으로 아보카도 토스트 (그 당시 뭔가 트렌디하다는 카페들은 다들 아보카도나 수란에 로켓(아루굴라)샐러드를 토스트에 올렸다. 요즘은 다들 그 메뉴를 파는 것 같다)와 cafe miel (꿀 넣은 카페라테...?)을 곁들이면 영양분과 당분, 카페인이 함께. 사람이 꽤 바글바글 했는데 아침엔 그나마 한산하다 (=매의 눈으로 살피지 않고 평화롭게 좌석을 찾아 앉을 수 있다). COVID-19에 어떻게 버티고 있으려나...
Bagle Gourmet Ole (288 Thayer St. )
열량 높은 아침식사를 먹고 싶으면 여기서 Bagel w/ Cheese and Egg를, 좀 더 가볍게 갈 때는 달걀만 아니면 크림치즈가 든 베이글을 샀다.
DEN DEN cafe (161 Benefit St. )
내 소울푸드는 떡볶이다. 미국이라도 우리에게는 H-Mart가 있으니 재료는 구입 가능해서 집에서 만들어 먹었지만 사람이 자기가 만든 떡볶이만 먹고살 수는 없지요. Den Den은 깔끔한 느낌으로 찌개, 떡볶이, 김밥 등을 내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그릇과 담아내는 방법을 잘...? 디저트는 일본풍. 녹차라테도 꽤 맛있었다) 꽤 그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떡볶이가 맛있다는 거다. 진한 맛이어서 내가 평소에 만드는 타입이 아니라 더 좋았다. 물론 가격은... 일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Den Den으로 탈출해서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고 에너지를 적립한 후 언덕을 오르며 다 써버렸던 것도 추억이다.
Benefit St. 에 처음 생기고 (실내외 모두 목재 느낌을 살린 멋진 공간이다) 북적거리더니 몇 년 지나서 2호점이 생겼다. 거긴 치킨(...)이 메인. 떡볶이는 2호점에도 있다.
Ellie's Bakery (61 Washington Square)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맛있는 마카롱을 살 수 있어! 카페도 겸하고 있어 (분위기가 좋다) 앉아서 브런치나 적당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거대한 수탉 장식이 있어서 찾기 쉽다.
Coffee exchange (207 Wickenden St. )
Coffee exchange에서는 다양한 원두를 포대자루에 넣고 무게를 달아 판매하는데 꼭 아라비안 나이트의 장 보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 1권의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연회를 위해서 짐꾼을 고용해서 식료품과 향신료를 고르고 구입해서 담는 장면의 묘사를 좋아한다. 여기 로쿰까지 있으면... 싶지만 미국이쟎아. 하지만 미국이니 도넛은 있다. 어째서인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다시 먹을 생각이 드는 걸로 봐서는 맛있었는 듯.
강가 (Providence River. 처음엔 바다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더 내려가야 바다가 나온다)라서 주변을 산책하기도 좋다.
떠나고 나서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출장 갈 일이 있었다. 올해에도 6월에 갈 예정이었는데 COVID-19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돌려졌다. 갈 때마다 시큰둥하게 가서는 (보스턴이나 뉴욕에 내려서 기차를 타기 때문에 더. 미국 기차라는 게 참... amtrak의 장점은 창 넓고 좌석 넓은 거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나) 도착해서는 나 여기에 나름 애착이 있구나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