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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Apr 07. 2019

릴에서 드레스덴

기차, 기차, 기차... 기차?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


친한 사람들에게 가끔 이렇게 고백하면 다들 세상에 별일도 다 있네 정도로 반응한다. 아니 내가 가고 싶어서 돌아다니는 게 아님을 알지 않니! 직업상 어쩔 수 없잖아 너희도 다 그러면서! 싶지만... 확실히 내가 많이 돌아다니기는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여행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와 공항은 확실히 싫지만. 비행기는 타고나면 뭐... 싶은데 타기 전과 후가 너무나... 하. 에너지가 막 빨려 나가는 느낌이라.


어쨌든.


4월에 릴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부다페스트에 갈 일도 생겼다. 주말을 끼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부다페스트로 가는 것보다는 그냥 주말을 그 중간 어디선가 보내보자 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바빠서 잊었다. 그래서, 런던-릴(유로스타), 부다페스트-런던(비행기)은 있는데 그 사이가 없다, 라는 상황이 되었던 거다.


릴에서의 일이 끝나고 누군가가 알려준 DB(독일 기차) 앱을 깔고 기차표를 예약했다. 중간에 드레스덴이랑 프라하가 좋을 거라고 친구가 추천했던 기억이 나서 드레스덴으로 우선 가자고 마음먹었다.


릴-브뤼셀(남)-프랑크푸르트-드레스덴.


9시간쯤 걸린다. 어쨌든 표+좌석 다 예약해서 기쁘게 잠이 들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가 브뤼셀 남/중/북 모두 서지 않고 지나가겠다고 앱에 떴다. 그리고 이메일도 날아왔다. 브뤼셀에서 이 기차를 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리고 이 기차는, 토요일 아침, 브뤼셀-프랑크푸르트 급행이다.


어쩌라는 거냐...!


우선 브뤼셀로 가니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들 사이에 끼였다. 안내데스크에서 줄을 섰는데 앞의 분이 자기는 쾰른의 아들 집에 가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가냐고 한탄을 했다. 나는 드레스덴 갈 건데 어쩌지, 오늘 안에는 갈 수 있을까 했더니 위로를 건네주셨다. 흑. 안내 데스트 3군데를 거쳐서, 처음 듣는 벨기에-독일 국경 근처의 Verviers까지 가는 기차(지역)+그 역에서 아헨-거기서 쾰른(그리고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는 많고)이라는 경로를 안내받고, 뭔가를 찍은 증명서도 주기에 받아 들고 기차를 탔다. 그 증명서 쓸 일은 없었지만. 그 와중에 기차 안내방송에서, 독일로 갈 승객은 꼭 Verviers에서 내려서 그 역 앞으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아헨으로 가라고 강조를 하는데, 이게 영어 방송이라서인지, 톤이 마치 거기서 안 내리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좀 웃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도 아닌지 내 맞은편 좌석의 사람도 웃더라.


어쩼든 내리라는 곳에서 내렸는데, 어라 맞은편 기차가 아헨으로 간다? 나에게는 기차표가 있고 - 그 경로로 가는 기차면 탈 수 있다 - 증표도 있어서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탔다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표를 보여 달라 하지 않았다). DB앱에서 검색을 하니 이 기차, 30분 만에 아헨으로 간다! 우후후후. 그래서 아헨-드레스덴 경로를 검색해서 예약을 수정했다. 오늘 안에 못 갈 것 같아서 좌절하고 취소한 숙소도 다시 예약했다. 데이터로밍과 보조배터리가 이뤄낸 성과라 하겠다. 데이터로밍 없었으면 대체 어쨌을까.


아헨부터는


아헨-뒤셀도르프-프랑크푸르트-드레스덴


이 되었다. 이야 2시간 더 걸렸어. 그 이후로는 뭐, 그래도 오늘 안에 도착은 하겠네 하며 창밖 풍경도 구경하고 일도 좀 하고(...) 책도 좀 읽고 하며 보냈다. 독일은 딱히 예쁘지 않아서 기차 타도 볼 거 없다고 릴에서 만난 사람이 그랬는데 아니 대체... 평소에 어떤 축복받은 풍경 속에서 기차를 타는 거니...? 프랑스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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