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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Oct 11. 2022

여기에서의 삶은 어떤 가요

사라예보의 고양이들

그러나 가장 자유로운 동물은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혼자 걸으며 세상 어디에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
- p. 6, The Cat that Walked by Himself


일에 관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나는 맛있어 보이는 부분만 딱 갉아먹는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도시, 나라, 시대, 사람에 대한 것도. 어쩌다 관심 가는 부분은 열심히 찾아 읽다가 시들해지면 그만둔다. 그리고 그 이외에는 모른다 (당당함).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경우는 연결해서 더 찾아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굉장히 한정적이고 편향된 지식과 그에 따른 의견만 가지고 있고 때때로 상식도 좀 부족하다(...) 어릴 때 '너는 지식에 체계가 없다', 는 말을 들었지.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아서 그나마 이 정도 상식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꽤 여러 도시를 다녔지만 그 도시의 역사나 문화, 특징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긴 부분에 대해서만 안다. 사라예보의 경우, 1차 세계대전의 상징적인 시작점, 오스만,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가 섞였는데 거기에 공산주의(소비에트 연방)까지, 라는 것. 보스니아 전쟁, 사라예보 포위전, 그리고 <피플 오브 더 북>.


<피플 오브 더 북>의 영향으로 나에게 사라예보는 여러 종교가 - 근본은 같지 않나 싶지만 어마어마하게 서로 적대관계인 - 그 작은 도시 안에 같이 있으면서 나름 잘 살아가는 그런 이미지였다. 거기가 흥미의 시작점이었고. 사실 - 현실 - 은 어떤지 모른다. 그저 사라예보 구시가지를 걸어 다닐 때 그 도시의 분위기를 다소 무책임하게 좋아한다. 시나고그에서 10분쯤 걸으면 모스크가 나오고, 5분쯤 더 걸으면 가톨릭(?) 성당, 그리고 거기서 3분쯤 더 걸으면 정교회 성당이 나온다. 옛날 시나고그는 음악당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새로 지은 시나고그는 본래의 목적으로 쓰고 있고. 크고 작은 모스크가 동네 여기저기에 있다. 주택가의 목재로 지은 미나레트가 있는 작은 모스크는 동네의 여러 일들을 의논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라예보의 지인이 다녔던 학교는 지금은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수도원이었는데 사회주의 공화국이던 시절 학교가 되었고 90년대 이후 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무슬림 아이들도 다닌다고. 이 나라는 대학 전까지가 의무교육인데 학교는 모두 국가지원이지만 수녀회가 운영하는 이 학교의 경우 그 외 기부금이 많이 들어와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고.


무슬림은 고양이의 우아함과 깔끔함을 찬양하여 귀하게 여긴다고 한다 (*1). 그래서인지 사라예보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이 아이들이 반가웠다. 아직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은 도시인데, 왠지, 저 태연자약한 느낌의 고양이들이 이제 괜찮아질 거야,라고 하는 것 같아서.


6년 전쯤 여기에 왔을 때도 이렇게 고양이가 많았던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만난 고양이는 옛시가지의 이슬람 사원 마당(?)에서 봤던 고양이뿐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큰 들개들이 무리를 지어 산에서 내려와서 돌아다니니 저녁에 다닐 때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관련 이야기들이 좀 있었다. 아마 전쟁 당시 산으로 피난을 갔던 동물들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을 했다.


6년 전에 갔던 서점을 찾아가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최근에 출간된 사라예보 포위전에 대한 책이 영어 버전으로 나와있었다.

저자는 포위전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그리고 사라예보라는 도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담담히 서술한다. 포위전의 시작, 공격, 식량, 문화, 사람들 사이의 관계, 같은 것에서부터, 그 당시 동물들의 상황에 대한 짧은 챕터도 있다. 사라예보 포위전 당시 반려동물을 버린 사람은 적어도 저자의 주변에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이 살던 사람이 죽어 남겨진 아이들은 많았겠지. 폭격 때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은 동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p. 92-93). 폭격은 인간에게도 거대한 공포지만 동물들에게는 더 한 공포였겠지. 천재지변과는 다르게 전조 없이 거대한 소리, 그리고 빛과 함께 무서운 뭔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떨어지고... <긴긴밤>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숙소 근처의 이슬람 사원에는 고양이 물그릇, 밥그릇이 있다.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밥 먹는 아이들을 봤다. 챱챱 먹다가 다른 고양이가 다가오면 슬며시 비켜준다.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일까.


거리 곳곳에서 고양이들은 혼자서, 가끔은 2-3마리 정도가 함께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곳에서는   주는 사람이 있는  같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뭔가 주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사람들에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는 일은 별로 없었다. 거리의 고양이들은 관광객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 귀찮아서? 식당 안에는 들여보내 주지 않지만, 바깥의 자리에서는 고양이들이 가끔 쉬다가기도 하더라. 손님이 쓰다듬어주면  무릎에 앉아주는 고양이들도 있었다.


여기의 고양이들은 잘 지내는 걸까. 며칠 지내다 보니 거리에서 어리거나 조금 큰 정도의 아이들밖에 못 봤다, 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고양이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The Cat that Walked by Himself and other stories, Rudyard Kipling, The British Library (2010)

Sarajevo The longest Siege, Amra Abadžić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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