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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Mar 03. 2024

눈 속을 걸어요

Uppsala, Sweden


웁살라.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북쪽으로) 40분쯤 걸리는 이 도시에는 늦봄과 늦가을에 왔었고, 겨울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발란데르 시리즈(헨닝 만켈) 덕분에 (그중에서도 <얼굴 없는 살인자>) 겨울 스웨덴(이라기보다는 Ystad 위스타드)의 인상은 ‘눈이 엄청 오겠지, 어둡겠지’였다. 위스타드 (발란데르 시리즈의 배경)는 좀 더 남쪽이지만(*1). 어쨌든 쿠르트 발란데르 형사가 9월인가 10월부터 눈이 올 것 같다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주변 상황 매우 암울함), 소설 마지막에 눈이 엄청 내리는데… 가만 이거 <얼굴 없는 살인자> 맞나. 시리즈의 다른 책이었나… 발란데르가 바깥 온도 확인하고 그날의 스웨터(두께)를 결정하는 장면도 꽤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웁살라, 겨울. 심지어 2월. 가기 전에 날씨를 확인했더니 눈이 온단다. 이미 왔었고 그리고 또 온다고. 게다가 대설주의보 비슷한 것이 옵션처럼 붙어있었다. 웁살라에 사는 지인은 ‘아침에 네가 숙소에서 나올 때쯤이면 충분히 걸을 만할 거다’,라고 했다. 왜냐면, 웁살라 사람들의 주 교통수단이 자전거라서. 눈이 오기 시작하면 눈을 치우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이 되기 전에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길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차도에 쌓인 눈도 치우지만. 자전거는 인도와 거의 근접해서 다니거나 인도를 같이 사용하기도 하니까 사람이 걷기에도 적절해진다.



그다음 날 아침, 눈은 펑펑 내리는데 정말 다들 눈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사진은 오후 무렵이지만). 앞이… 보이나? 녹기 시작하면서 비가 내리면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반복해서 그때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왼쪽은 아침, 오른쪽은 오후. 색감이 확실하게 다르다.

하얗고 하얗고 하얗고… 계속 눈이 내렸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냥 후드나 모자만 쓰고 다니던데 (그리고 자전거!) 나약한 외부인(=나)은 우산을 썼습니다. 축축해지는 것도 있지만 (나름 방수되는 코트인데) 추웠어… 몇 번 와서 아는 풍경인데 눈이 내리니까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풍경은 따뜻한 방에서 핫초콜릿이라도 한 잔 마시면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길이 걸을 만하니까 눈 속을 걷는 것도 할 만한데 싶다. 영국과 비슷하게 회색인 겨울하늘인데 (해도 빨리 지고) 하얗고 눈이 쌓이니 빛이 반사되어 그런가 희미하게 밝고 뭔가 기분이 들뜬다.


웁살라는 공원이 크고 멋지고 바로 큰길에 접해 있어서 걷다가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커다란 나무를 만끽하다가 다시 길로 나갈 수 있다. 오솔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강이 나오고 그 주변의 공원이 나오고 상가가 나온다. 산책하기에 이렇게까지 적절할 수 있나.



이런 길을 걷다 보면 툼누스(<사자와 마녀의 옷장>)씨가 빨강우산 쓰고 나와야 할 것 같다.



여기 눈사람은 보통 3단이던데 이 아이는 4단…이며 대단히 공손해 보인다. 허리를 펴세요.



예전에 왔을 때는 이 다리에 이런 귀여운 고양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겨울에만 하는 걸까.



눈 이야기만 하다가 끝내기에는 내가 웁살라를 많이 좋아한다.


웁살라 Uppsala라는 지명을 처음 접한 것은 ‘웁살라 사람 베노’, 그러니까 <장미의 이름>에서였다. 수사학을 공부하는 젊은 스칸디나비안 수도승. 지식을 구하고 원하는 책을 읽을 자유를 외치다가 금서를 독점하는 자들에게로 냉큼 돌아서버린.


예전 글 https://brunch.co.kr/@minjbook/50

에서도 썼지만, 산책하기 좋고, 적절한 크기에 적당히 붐비고, 열려있는 태도(아마?)와 환경, 큰 대학을 끼고, 강이나 어쨌든 물이 있는 도시를 좋아한다. 웁살라가 그렇다. 봄에 왔던 것은 정말 옛날이라 사진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의 눈 덮인 도시도 좋았지만 (나는 걸어 다니며 아주 신이 났었다. 눈 오는데 이렇게 신난 거 나이가 한 자릿수 일 때 이후로 처음이지 않을까) 가을에도 매우 아름다웠다. 나무가 많고 공원이 크고 강이 있고 오래된 건물이 잘 보존되어 적당히 섞여 있으니까 예쁘지 않을 리가… 봄은 당연하게(?) 좋다. 6월이었는데 새벽 3시까지 희미하게 밝았다. 꽃이며 나무며 사람들이며 다들 햇살을 받아 너무 기쁘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겠지… 2월에 오니 낮길이가 이래도 사람들이 살 수 있다니 해양성 기후 굉장하다(?).



밤에 산책하다 보면 이런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조그마한 네모가 환하게 빛나길래 가봤더니 어느 빵집의 외벽 장식이었다. 이런 거 만들 생각은 그렇다치고 진짜로 만들어서 설치하다니. 멋지다.



웁살라 대학, 린네 정원/박물관


웁살라 대학은 스웨덴 (어쩌면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15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초기에는 가톨릭 영향력 아래에서 운영되었다 하니 웁살라 사람 베노도 여기서 공부했을까… 생각해봤는데 시기가 안 맞다. 그러고 보니 윌리엄이 왜 영국인이며 바스커빌 사람이고 어째서 윌리엄인가, 하는 것은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에 있었는데 (윌리엄이 영국인인 거 생각할수록 좀 웃기다) 베노는 왜 웁살라/스칸디나비아 사람일까. 그런데 그 시절에 저 북쪽동네에서 이탈리아(북부지만)까지 데구루루 굴러오다니. 웁살라 사람 베노 씨 생각해 보니 굉장하잖아. 웁살라 19세기에 영하 30도(섭씨) 아래를 찍었던데 이탈리아 와서 베노 씨 기후적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웁살라 대학은   박물학의 중심지였다. 식물학자 린네 (Carl Linnaeus) 웁살라 대학에서 식물 탐험대(젊은 독신 남성들로만 구성된 ‘린네의 사도들’) 불러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보따니스트>). 린네는 지금도 쓰고 있는 식물 명명법을 창안했고(*2) 식물의 활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린네의 사도들은 식물표본을 린네에게 보내주고 린네의 이명법과 식물의  이론을 전파했다고 한다. 린네의 정원 (옛날 6월에 왔을   봤는데 지금은 닫혀있음. 팬데믹 여파인가) 남아있다. 린네 박물관은 5월부터 열고 겨울에 닫는다. 근처에 린네 카페 (Café Carl von Linné) 있는데 적당히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쉬기에 좋다.


City Library in Uppsala 웁살라 시립 도서관

동네 서점도 좋아하지만 동네 도서관을 기웃거리는 것도 좋아한다. 웁살라 도서관은 이번에는 아쉽게도 못 갔지만 예전에 가을에 왔을 때 갔었다. 옅은 가을 햇살에 체스말이 예쁜 외부. 도서관은 밝고 깔끔하고 정말이지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으면 주말마다 오겠지 싶은 곳이었다. 여기는 심지어 일요일에도 연다 (하노버에서 일요일에 도서관에 가볼까 했더니 다른 모든 곳처럼 닫아서 좌절했었다). 다양한 언어의 책들이 있었다. 어린이 책 코너도 나지막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Antikvariat röda rummet (중고책 서점)



중고책은 어감이 이상하게 별로라서 second-hand book이라는 단어 쪽을 더 좋아한다. 두 번째가 아니라 여러 번 손을 바꾸면서 왔을 수도 있지만. 꽤 큰 서점인데 책이 많기는 하지만 마구 쌓여있다는 느낌은 또 아니다. 적절히 정리되어 있다. 그림책이 많아서 둘러보기가 즐거웠다. 여기서 칼 라르손에 대한 작은 책 (그림이 많았음)을 샀다.


Yllotyl (뜨개실 가게)



어딘가에 가면 그 동네 뜨개실 가게를 찾아본다. 실은 부피가 꽤 커져서 많이 사기는 힘들지만 마음에 드는 색의 실이나 궁금했던 브랜드의 실을 발견하면 조금씩 산다. 이 가게에는 Sandnes Garn 실이 많았다. 밝은 색감의 실이 잔뜩 있어서 화사했다. 샘플로 뜬 작품들도 여기저기 놓여 있어서 이 정도 두께와 촉감이구나 하고 가늠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Sandnes Garn의 Sunday로 뜬 모티브 담요(?)가 있었는데 이 정도 두께와 무게라면 예전부터 생각했던 ‘코바늘로 뜬 모티브를 연결한 치마’를 만들 수도 있겠는데 싶어서 좀 고민했지만 실 15 타래(쯤)를 사면 가방에 자리가 없어… 자기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오래된 청바지를 뜨개를 해서 뭔가 업사이클 해 보겠다는 듯) 점원과 같이 실을 고르는 손님도 있었다. 다들 즐거워 보였다.


Gateau (Vaksalagatan)



베이커리/디저트 카페. 체인이다. 이 지점은 크고 밝고 널찍해서 케이크 하나와 커피 한 잔을 주문해서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일하기가 좋았다. 여기 프린세스케이크(분홍색)와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한다. 프린세스케이크는 저 분홍 부분이 뭔가 쫀득한데 떡과는 다른 식감이라 재미있다. 마지판인가… 초콜릿 케이크는 확신의 북유럽 초콜릿 케이크. 진하다. 추운 동네 디저트가 그렇지만 한 입 먹으면 그래 이 정도로 달아야 추위를 극복할 수 있는 거구나 싶다.


Khao Soi by Jane



가을에 웁살라에 왔을 때 나를 살렸던 곳. 그때 몸살감기로 꽤 아파서 뭔가 따뜻한 국물! 좀 매운 거! 하며 검색하다가 찾은 곳이다. 그리고 저녁마다 와서 먹었다. 처음에는 카오 소이가 가게 이름인 줄 알았는데 태국식 에그누들 수프였다. 그 가을에 덕분에 어떻게 살아남아서 일 다 하고 집까지 돌아왔다. 이번에도 가서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 갈 때도 있어줘요.



*1. <사자와 마녀의 옷장>의 ‘크리스마스 없고 눈만 잔뜩 내리는 겨울’ 덕분에 영국은 눈이 많이 오겠지 했는데 브리스톨은 남서쪽이라 그런가 눈이 거의 안 온다. 눈 좀 스친다 싶으면 동네 문 닫는다. 스웨덴도 지역별로 다를 지도 모르지… 않나 아닌가.

*2. ‘식물학의 역사는 크게 린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보따니스트>



사자와 마녀의 옷장, C.S 루이스

얼굴 없는 살인자, 헨닝 만켈

보따니스트, 마르 장송, 샤를로트 포브, 박태신 역/정수영 감수, 도서출판가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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