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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Mar 16. 2022

헤드헌터

헤드헌터

 

‘헤드헌터’라는 단어를 시어로 쓴 시가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한 시인이 운영하는 시모음 카페 검색창에 ‘헤드헌터’라고 입력했다.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무’ 라던가 ‘개미’라던가 ‘호수’라던가 일상적으로 쉽게 보는 것을 자주 글에 가져다 쓰는데, 오히려 소재로 생소한 단어가 등장하면 비슷한 이야기를 할 때도 좀 더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간과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이라는 건 사실 거기서 거기로 대부분 비슷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익숙한 단어들로 다시 빠져드는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소재를 낯설게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말하는 것이 결국 작가의 개성이 된다. 나는 이 소재의 딜레마에 빠질 때 사다트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에서 등장한 ‘필통’ 이라는 단어를 가끔 떠올린다.

‘나의 것이 있었던가? 나의 것이라는 건 어떻게 생겨나나?’ 오늘 문득 책상에 앉아서 누군가가 내 생일에 준 엽서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정방형 모양의 엽서이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 한 편이 손글씨로 쓰여있다. 작년 이맘쯤 전남친에게서 받은 엽서다.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요새 내내 안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다.

주말에 헤드헌터와 통화를 하고, 나는 간만에 이력서를 새로 써서 메일로 보냈다. 마치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놓은 뒤 생기는 긴장과 설렘 같은 기분을 잠시 느꼈다. 새로 쓴 이력서가 날 지금과는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끝에는 거기 가서도 사실 여기랑 별반 다를 건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나는 계속 뭔가로 부터 도망치고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난 불이 꺼진 회의실에 마치 조용히 걸 전화 통화가 있다는 듯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서 사실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혹은 그저 청명한 날이라도 잠시 홀로 창 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나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아무 것도 모르겠고,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이다지도 나를 잃고 살아도 되는지’ 자문하면서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있다. 회사에 새로 들인 비데에 엉덩이가 따뜻해지면서도 그 따뜻함이 역겹게 싫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라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지난 주말 맞은 백신의 여파가 아직 몸 속에 남아 있다. 주말엔 정오를 넘어서까지 나는 ‘잊으려고 하는 게 잊혀질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까지’ 잠을 잤다. 그게 사람인지 일인지 잃어버린 꿈인지 모두 엉겨 있어서 나는 잠꼬대처럼 벽과 침대 사이에다가 속삭이듯 ‘괴롭다’라고 말했다. 지난주 내내 시달렸던 일과 사람의 일이 떠올라 신물이 나서 도저히 출근할 마음이 없었다. 

대표에게 문자를 남기고, 회사 그룹웨어에 접속해서 특별휴가 결재를 작성했다. 지난 주 공휴일에 근무했기 때문에 이번 달 안에 쓸 수 있는 대체 휴가가 하나 있다. 금요일에 내면 주말과 연달아 쉴 수 있어 좋지만 이미 다른 팀원들이 금요일에 많이 신청해 놓아서 화요일인 오늘 쓰는 것이 팀장으로써 조금은 책임감 있을 것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부질없다. 내가 언제 쉬든 상관할 사람은 없다. 나는 ‘더 이상 남 눈치를 보면서 비겁한 자기 변명하면서 살지 쫌 말자’라고 나를 나무라며 시원하게 결재완료 버튼을 눌렀다.


매일 닳도록 신고 다니던 앵글 부츠가 있는데, 얼마전 구둣방에 맡겨 놓고 계속 찾질 못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찾아가면 그 구둣방 아저씨도 이미 퇴근하신 후 였다. 휴가를 쓴 김에 나가서 미루던 일을 하자는 생각에 분리수거 거리를 양손과 가슴까지 잔뜩 안고 내려갔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두 봉지 함께. 쓰레기를 한아름 버리고 나니 답답하던 속이 조금 더 후련했다. 그리고 아직 못 맡기고 방구석에 쌓아둔 패딩과 올 봄에 자주 입을 외투 하나랑 모직 바지를 싸안고 세탁소에 가서 맡겼다. 구둣방에 가니 맡겼던 부츠가 영 마음에 들지 않게 고쳐져 있었다. ‘아…이걸..아저씨…이렇게 하셨구나…’하고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가죽을 덧대주기로 하셨지만 막상 고치려고보니 구두 상태가 여의치 않아 그냥 구두약칠을 했다고 했다. 번들거리는 검은 칠 부분은 흡사 민머리를 가리려고 흑채를 뿌린 대머리처럼 어색하게 맨들거렸다. 하지만 덜렁거리는 가죽 끝에 마감 처리를 한번 더 부탁하고는 다른 말없이 그냥 들고 나왔다. 왜냐면 내 뒤에 와서 구두를 받아간 여자가 자신의 구두를 보며 ‘아 정말 깔끔하게 수선해주셨네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도 내 구두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신 것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구두는 정 맘에 안들면 좀 신다가 버려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디로 가야하나… 그냥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쇼윈도에 비친 내 머리카락을 보고 화가 났다. 난 요새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나는 걸까? 당장 가위로 푸석거려서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을 다 잘라버리고 싶은 난폭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진정하며 우리 동네에서 제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머리를 잘 하는 미용실 중 하나인 차홍룸에 전화를 걸었다. 걸어가는 길에 내 신발을 보니 고급 미용실에 어울리지 않게 제주시장에서 산 올레길 워킹화라서 어느 빌딩에 들어가 계단 난간을 잡고 방금 고친 부츠로 갈아 신었다.  

차홍룸은 평일 낮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컷트만 하는데도 다른 곳보다 두배 더 받지만 생일이라고 아빠가 보내준 용돈이 20만원 있으니 거기서 얼마 쓰기로 했다. ‘남친이랑 맛있는 거 사먹어라’ 하며 보내주신 건데, 우리가 헤어졌다는 걸 알려드리자 아빠는 조금 아쉬워하셨다. 맏딸이 40이 넘어 처음으로 아빠한테 남친이 생겼다고 알리고 연애를 하니 내심 ‘결혼이라도 하려나’ 기대하고 계셨다. 하지만 전남친은 긴 머리를 좋아해서 내가 좋아하는 단발을 2년 동안 참고 살았다는 걸 아빠는 모르지. 아빠는 어릴 때부터 단발이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그땐 부모님이 긴 머리를 못하게 해서 속상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단발을 택하게 되다니 아이러니다. 나는 뭔가를 끊어내는 심정으로 혹은 되찾는 심정으로 머리를 자른다. 아빠는 생일 선물이라고 준 용돈으로 내가 머리를 자르러 간 걸 모르시겠지.

헤어디자이너는 훈훈한 외모의 젊은이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늙은이처럼 젊은이들의 오이 같은 싱그러운 향기에 살짝 주눅이 들곤 한다. 분명 머리를 자르기 전에 난 마스크 속에서 울상이었다.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보기 싫었다. 하지만 두피 체크를 하고, 두피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샴푸와 트리트먼트로 샴푸실에서 머리를 감고, 지압을 받은 뒤 발라준 페퍼민트 아로마 오일의 청쾌한 향이 머리끝과 귓 뒤 움푹 패인 곳에서 시원하게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선생님이 가져온 패드에서 사진을 넘겨가며 헤어 스타일을 고르고, 요즘 유행한다는 태슬 컷으로 정했다. 태슬컷은 커튼이나 옷 끝에 달린 술을 말하는데, 그 모양새를 닮게 머리를 자르고 스타일링을 한다 해서 태슬컷이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잘려나가고 머리통이 가벼워지니 울적했던 마음이 더 떨어져 나갔고… 나는 본의 아니게 내면의 독백 같은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전남친이 단발을 싫어해서 계속 긴 머리를 유지했어요. 얼마전에 헤어져서 이 참에 다시 원래 좋아하던 단발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근데 이게 원래 내 모습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모습.” 헤어디자이너는 그 말에 맞짱구를 쳐주면서 ‘아직 반 밖에 자르지 않았지만 벌써 잘 어울리시네요’라고 살짝 띄워줬다. 나는 가위가 사각사각 거리면서 귀 밑을 스치는 감각을 즐기면서 괜히 더 속에 있는 것들을 조분조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도 “맞아요 저도 요새 그 생각을 자주 해요” 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서 여태까지 살아온 게 아닌데, 요즘은 문득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싶어요.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라며 앞머리를 자르기 위해 눈썹 위를 오가는 가위를 눈을 치뜨며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게 뭔데요?” 나는 그 물음에 거울에 비친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글 쓰는 것요”

그때 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내가 그동안 계속 나를 짓누르고 말을 못하게 입을 막고 어떻게든 지금의 겉으로만 안온한 이 삶에 묶어 두려, 말도 안되는 폭압을 내 스스로에게 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회사를 그만둔다고 당장 굶어죽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악다구니를 하면서 뭔가를 바꾸려고 이뤄내려고 노력해도 결국 내 이름으로 남는 것 하나 없는 게 회사 일인데, 난 도대체 뭐 하러 이렇게 살고 있나? 일을 통한 자아실현 같은 건 없어. 삶의 기술이 조금 늘 뿐이겠지. 일은 일일 뿐이고 생계일 뿐이니까.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멍청한 짓은 하진 않을 것이다. 팀장을 맡고 있고,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있으니까 올해 계획한 일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성과를 봐야지. 중도에 나가는 것도 비겁하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발견하더라도 뭍에 닿을 때까지 같이 항해를 해보기로 모험해보기로 결심을 하고 입사했기 때문이다.  

회사 생각만하면 머리만 아프지, 귀한 휴가니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자. 나는 머리를 자르고 나오면서 간만에 셀카를 찍었다. 거리에 서서 사진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진짜 곽소민 같다’ 이제 진짜 나로 조금 돌아온 걸까? 나는 잠시 한 열아홉 정도의 마음으로 돌아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르막길을 신나게 걸어서 스타벅스로 향했다. 짜이티라떼를 한잔 시켜놓고 쇼파에 몸을 묻고 앉아서 나는 벽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한 섬마을을 형상화한 입체 벽화가 눈앞에 있었다. 제주도로 이사를 하는 건 어떨까? 집으로 돌아와서 ‘제주 중산간 주택’이라고 검색해보았다. 그러다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읽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라는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빛나는 단편이 책제목과 동명인 소설이다. 난 시를 주로 써왔지만  소설도 간간히 습작해보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소설을 더 써보고 싶어졌다. 그게 시나리오화 되면 더 좋겠고, 영화가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나는 걸 보고싶다. 시를 쓸 때도 나는 내가 쓴 글이 언젠가 시각화 되어 사람들에게 보여지기를 바랐다. 비록 시인의 길로 일이 풀리기보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소망이 엇비슷 하게나마 이뤄지긴 했으나, 아직 내가 그려왔던 꿈에 다다르기에는 부족하다.

나는 나를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눈치 보면서 남 비위 맞추면서 나를 숨긴 채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택한 삶의 존재 방식 대로 당당하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것의 시작이 내겐 글을 쓰는 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 삶이 다시 기록될 것이다. 기록만이 유의미함으로. 어차피 삶의 의미 따위가 없다고 하더라도 기록만이 그 무의미를 증명할 것이다.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다시 작가라는 내 존재의 정체성을 되찾고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20315




헤드헌터


헤드헌터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까마귀인지 까치인지 내게 걸어오는 새를 보다가 우두커니 골목에 서 있었다 어둠을 감추는 산허리를 보며 쉬는 퇴근길 울음인지 웃음인지 눈썹에 경련을 느끼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는 명료하게 손을 뻗어 팔을 끌어당긴다 이 곳에서 당신을 필요로하고 있다고 ‘도대체 뭘 바라고 이렇게 사는 지’ 불 꺼진 회의실 창문 앞에 자주 멍하니 섰을 때


헤드헌터가 말했다 '여기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필요라는 건 뭘까? 그들이 필요한 인간이라는 건 누굴까? 생각을 하다가도


여기서 나는 풍화하고 있다 너는 풍화하는 중이다 목에 모래알이 씹히는 것 같다 골목을 돌았는데 다시 돌아야 할 골목이 이어진다


창 밖의 새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검은 새가 비를 맞고 있다 사정없이 머리에 빗방울 툭툭 맞으며 젖는 모습을 본다 모가지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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