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소도시 이사 대작전
매일 서초동 집을 나서면 교통체증이 날 반갑게 맞았다. 아침저녁으론 출근 시간이라 막힌다지만, 낮에는 또 왜 그렇게 막히는 걸까? 차를 끌고 나가면 집 앞이 제일 막히는 지경이었다. 모두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도시 한복판을 걸어가며, 이제 이 장면을 구경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되뇌었다.
소도시로의 이사를 결심하고 부동산에 알렸다. 집을 구할 땐 매물이 없어서 힘들더니, 내놓을 땐 집이 안 나가서 난리였다. 부동산이랑은 연이 없는 걸까… 하긴 전세 대출 이자가 너무 많이 올랐으니 그럴 법도 했다. 이사를 결심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금전적인 부분이니까. 남편의 건강(매주 장거리 운전, 먼지 가득한 관사에서의 생활이여 안녕)과 나의 안식 및 리프레시도 중요한 이유였다. 새로운 곳에 가면 더 산뜻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정신없고 복잡한 대도시보다 소도시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남편이 소도시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우리가 이사 갈 소도시는 우리나라의 딱 중앙 정도에 위치했고 막히지 않으면 차로 2~3시간 만에 서울에 갈 수 있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면 무조건 2시간 안으로 서울에 도착한다. 내륙이지만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고, 도심에도 작은 저수지나 호수들이 많아 멀리 가지 않아도 자연을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남편은 이 도시에서 가장 최근에 개발된 지역에 신혼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신축 아파트도 많으니 그쪽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신축 아파트? 너무 비싸지 않을까…?”
곧바로 부동산 어플을 켜서 해당 지역의 전세 매물을 확인하다가,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신축 2년 차 방3화2 브랜드 아파트 전세가가 지금 살고 있는 10평 초반 투룸 빌라 전세가의 절반이었다. 차이가 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났다. 심지어 이 지역은 새로 개발된 신도시로 근처에서 평당가가 가장 높은 곳인데도 그랬다. 정말 서울 집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싸긴 비싸구나. 그곳으로 이사 가면 전세자금 대출은 추가로 안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일단 직접 집을 보러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살 소도시 동네의 첫인상은 이랬다.
“오… 아파트밭이네.”
여러 브랜드 아파트들이 마치 군락을 형성하듯 끝도 없이 지어져 있었다. 조경도 제각각 개성을 뽐내고 있어, 가벼운 산책은 단지 내에서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중 한 아파트의 조경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버랜드 조경팀이 꾸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 아파트들에 비해 시세가 1.5~2배 정도 비쌌다. 조경은 옆 아파트 살아도 구경하러 올 수 있으니까… 하며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부동산 사장님께 돈 없는 티를 안 내는 게 집 보는 일 중 제일 힘든 부분이다.
처음엔 서울에 오갈 일이 꽤 있었기 때문에 신도시 말고 기차역이나 터미널 쪽을 고민했다. 다니던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야 했고(괜찮은 병원이 없는 게 소도시의 단점) 프리랜서 일이 있으면 미팅을 하러 가야 했다(일자리가 많이 없는 것도 소도시의 단점). 문제는 그쪽은 구도심이라 도시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발전한 지 꽤 되었고 위치가 좋은 만큼 병원 등 편의시설은 많았으나 아파트도 건물도 도로도 모두 낡았다. 남편 회사와의 거리도 신도시보다 차로 10분 정도는 더 가야 했다. 어차피 기차역이나 터미널도 지금 살려는 동네와 멀지는 않으니, 고민 끝에 일상의 질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너무 잘 왔어요~ 여기가 원래 매물이 없는데, 지금 마침 타입별로 나와있거든. 이렇게 구경해 보고 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진짜 드물어요. 운이 좋네~”
정말 친절한 사장님이셨으나, 저 말은 그저 영업 멘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진짜였다. 원래 매물이 잘 안 나오는 아파트인데 그 시기에 바로 옆 임대 아파트 입주자가 발표 나면서 전세로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사가게 되었고, 내가 딱 그 타이밍에 집을 보러 갔던 거였다. 입주하고 나니 주변에서 그 아파트에 매물이 잘 없는데 어떻게 구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이곳에 살게 될 운명은 아니었을까?
내가 원하는 조건은 간단했다. 일단 해가 잘 드는 집이면 좋겠고, 옆집 세간살이 뷰 말고 뭐가 보이든 트인 뷰였으면 좋겠다는 것. 운 좋게 10군데도 넘는 매물을 보았고 집마다 장단점이 있었다. 어느 집은 부엌이 넓었고, 어느 집은 안방 구조가 좋아 드레스룸이 넓었다. 드레스룸에도 창문이 있는 집, 없는 집이 있었다. 그러다 평수가 넓은데 우리 예산 안으로 들어온 집을 발견했다. 부엌이 무척 넓었고, 집 자체가 넓으니 일상 생활할 때 답답함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창문 밖으로 옆 동이 바로 보여 뷰가 아쉬웠다. 그럼에도 가성비가 좋은 것 같아 그 집을 계약하려 했다. 하지만 일단 우리 집부터 나가야 이사 갈 곳을 계약할 수 있다는 안전제일주의 남편과 서초동 집은 위치가 좋아서 어차피 나갈 테니 일단 가계약하자는 나의 대립이 있었다. 결국 고민하는 사이 집은 놓쳤고, 서초동 집은 간발의 차로 계약됐다. 조금만 더 일찍 나가지… 집을 구하다 보면 정말 세상엔 마음처럼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상심해 있던 와중에 부동산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내가 봤던 집 중 가장 뷰가 좋았던 집을 누가 계약하려 한다는 거였다. 이러다 이 집마저 놓치는 게 아닐까 싶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이번 통화에서도 정말 괜찮은 집 맞아? 너무 급하게 결정하는 건 아니야?라고 되물었다. 그 말에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확인했지만 나와있던 매물 중엔 가장 좋은 집이 확실했다. 나는 몇 번을 확인하고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결론은, 입주해 보니 이 집을 계약한 게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느껴진다. 첫 집의 큰 평수와 가성비에 속아 내가 원하던 조건이 아님에도 계약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안전하고 마음에 드는 집을 적당한 시기에 구했으니 남편의 안전제일주의와 내 조급함의 훌륭한 콜라보가 아니었을까. 집 구하는 일이 원하는 만큼 잘 되진 않아도, 나와 맞는 집은 어딘가에는 꼭 있다는 것. 그것이 소도시 집 구하기의 교훈이었다.
내가 입주한 집은 뷰가 트여 있어서 파란 하늘 아래 잔잔한 호수가 보인다. 게다가 아직 개발 중인 도시라 길만 건너면 시골집과 논밭들이 펼쳐지는데, 아파트 위에서 보니 푸릇푸릇한 그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일상에선 아파트의 편의를 누리면서, 소도시의 자연환경까지 누리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뷰 좋은 건 한 달 밖에 안 간다는데, 난 이사 온 지 몇 달이 지나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열고 뷰를 즐긴다. 살아갈수록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는 걸 느낀다. 취향이나 가치관에 있어서 ‘정설’이라는 건 없다. 뭐든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집주인과 계약까지 마치고, 설레는 이사 준비에 들어갔다. 사실 설렌다기보단 귀찮은 일에 가깝지만. 이전 집이 좁았던 덕분에 짐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가장 많았던 내 옷들도 거의 버렸다. 회사에 가지 않으니 매일 입을 옷을 걱정할 필요도 살 필요도 없다. 회사를 다니며 내가 힘들게 돈 버는데 이런 것도 못해? 라며 쓴 돈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만둬보니 새삼 느껴진다. 카드 값이 1/3로 줄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카드 값은 영원히 못 줄이는 줄 알았는데, 나도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구나. 회사를 그만둬보니 나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누군가 이렇게 했다고 해서 나도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비교군도 없으니 강박도 없다.
나는 몰개성의 사람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선택들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에세이 쓰기를 오랫동안 망설였던 이유도 그랬다. 나처럼 개성 없는 사람의 글을 누가 좋아해 줄까 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맞춰주기를 제일 잘하며 살아왔다. 조직에서 필요한 존재로 날 맞추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만나면 나는 또 그 무리에서의 나의 역할을 하며 살아왔다.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굴까(나이 서른 넘어 이런 질문이라니)? 회사에서 했던 존재가치의 고민과는 별개로 내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왔는데 정작 내 취향도, 나만의 특색도 별로 없다. 이번만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남들 사는 대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끌리는 대로 한 번 살아보면 어떨까? 그럼 그 안에서 내 취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든 서초동을 떠나 드디어 소도시로 이사를 왔다. 이전 집주인이 전세금을 늦게 보내주는 바람에 부동산에서 수십 통의 연락을 받으며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이사는 무사히 마쳤다. 짐은 업체에서 옮겨 주셨지만 그 모든 걸 있어야 할 자리에 다시 정리해 넣는 건 우리 몫이니 해도 해도 이사가 끝나지 않았다.
이사 오기 전에 식기세척기 이전 설치 예약도 모두 마쳤었는데, 남편이 보더니 자기가 할 수 있겠다며 기사님을 부르지 말고 몇 만 원 아끼자고 했다. 평소 물건 고치기를 좋아하고 손재주도 좋은 남편이니 그래 한 번 해봐라, 하며 맡겼는데… 내가 방 하나에 들어갈 짐 정리를 모두 마치는 동안 남편은 몇 시간 내내 그걸 붙들고 있었다. 짜증이 치밀었지만 일단 내 할 일을 했다. 그때였다. 부엌에서 뭔가 펑, 터지는 소리와 시원하고도 불길한 물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 나온 부엌에선 수도관인지 이음새인지 어딘가가 터져서 부엌을 물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남편은 급하게 터진 부분을 붙잡았고, 나는 물에 쫄딱 젖은 남편을 보고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몇 시간째 그것만 붙들고 뭐 하는 건데! 외치자 남편은 쫄딱 젖은 꼴로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치미는 분노를 삭이며 바닥에 흘린 물을 닦았다. 내 눈치를 보던 남편은 오히려 물이 새는 바람에 어디가 문제였는지 알았으니 말끔히 연결을 마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휴… 그래도 결국 연결해 냈으니 마지못해 축하를 해줬다.
"저녁이나 먹자..."
힘에 부쳐 잠시 쉬는 동안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전 집에선 느끼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노을 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삿날의 우당탕탕 소동은 어느새 까맣게 잊혔다.
쫄딱 젖은 남편과 꼬질꼬질해진 나, 그리고 집 한 편에 잔뜩 쌓인 짐 상자들까지. 소도시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