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빈 Jul 20. 2022

유럽 캠퍼가 된 이유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해준 아들의 한마디

한국을 떠나던 날


어느 더운 여름날 밤 10시, 와이프에게 '퇴근했어'라는 문자를 보낸 후 1시간이 걸려 드디어 도착한 우리 집. 3살짜리 아들이 여태 잠을 자지 않고, 나에게 달려와 보챈다. 달달달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려온다. 업무에 시달리며 받은 못난 스트레스를 괜히 와이프에게 툭 던진다.


왜 아직까지도 애가 안자고 있어?


그러면 안됐는데, 그렇게 말해버렸다. 일은 일대로, 육아는 육아대로 무엇하나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내 나이는 만으로 스물여덜, 와이프는 스물넷. 어쩌면 우린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것들을 짊어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때의 나는 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집안일을 한 와이프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따듯함도, 아이를 반겨주며 뽀뽀해줄 만한 조금의 여유도 없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가 함께 잠자리에 누웠다.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가 말했다.


여기는 엄마랑 내 집인데, 아빠는 왜 아빠 집에 안가?


아이가 그렇게 느낄만했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인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아이가 잠들고 난 후 퇴근한 적이 부지기수. 건축가 선배들은 건축을 한다면 야근을 '원래' 달고 사는 거라 장난치듯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당장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는 더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마지막에 내린 결단은 독일 이민이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와이프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양가 부모님의 허락도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캐리어 3개를 들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고 믿을 것이라곤 잘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와 우리 가족 셋뿐(지금은 넷!)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무모했고, 용감했던 것 같다.




원래 쉬운 것은 없다.


독일에서 독일 말을 할 줄 모르는 부모는 무능력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우리 가족에게 부당한 일이 생겨도 독일어를 할 줄 모르면 우리를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낮에는 한국에서 꿈꿨던 것처럼 가족과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와이프와 치열하게 독일어에 매달렸다. 다음 날 새벽을 맞이하는 게 매일 아쉬울 정도였다.

이민자에게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비자 문제, 재정문제, 이웃과의 소통 문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문제... 모든 게 걱정이었지만, 우리 가족이 같은 시간을 보내며 사사건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걱정과 아쉬움, 그리고 행복이 뒤섞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의 독일어도 서서히 무르익어갔다.

함께 일해봅시다!

그 무렵 내 건축 포트폴리오를 좋게 본 한 독일 건축설계사무소에 취업할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은 당당하게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던 독일에서 비로소 정착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캠핑밖에 없는데...?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지?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기분이 다르다고... 일자리를 구하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휴가였다. 그동안 독일어 공부하랴, 비자 걱정하랴, 취업 걱정하랴... 온갖 걱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버텼기에 휴가가 더 간절했다.  시간을 "즐기는" 행위가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다. 잔뜩 부푼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보니 가격 좋고 위치 좋은 곳들은 이미 반년 전, 진짜 핫한 곳은 일년 전에 이미 예약이 꽉 찼다. 어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나머지 호텔들은 호텔 같지 않은 시설에... 빵과 소세지가 주메뉴인 식사비와 숙박료는 어찌나 비싼지... 한 두 번이야 이렇게 휴가 간다고 하더라도 매번 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답은 캠핑밖에 없었다. 아주 피크기간만 피하면 예약도 쉬웠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맘편한 곳에서 삼겹살에 맥주 한잔이면 되는데 그걸 하기가 여기선 참~ 하기 힘들었다. 한국에서도 캠핑은 우리의 로망 아니었는가!? 매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두지 않았는가!? 드디어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 캠핑 가자!

우리집에서 차로 3시간이면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다 갈 수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렸고, 우리는 망설임없이 가족 캠퍼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