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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 Aug 25. 2023

아주 사소한 이야기

서른셋, 커밍아웃 10주년을 기념하며

오늘은 글을 쓰고 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지인으로부터 받은 오랜만의 연락 때문이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온 연락은 친구 수락을 한 뒤에야 열어볼 수 있었고, 그때까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 친구의 페이스북을 꽤 오랫동안 천천히 읽어보게 되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며 사색과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던 동생이었는데 그에 어울리게 페이스북 곳곳에는 그 친구의 잔상이 소소하지만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읽고 있노라니 아주 드문 그리움의 감정이 올라왔다.


치열하게 써 내려가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던 시절.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도 애써 관대했던 마음은 글이 되어 기록되었고, 내뱉지 않으면 참을 수 없던 순간은 부끄러움 모르는 노래가 되었다. 혼자 사소한 이야기라고 끙끙 앓았지만,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그 이야기를 토해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던 시절에 난, 무대에 섰고, 마음 저려했으며, 사랑을 고민했다. 가장 안전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을 염려하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요즘의 내가, 그때에는 사랑을, 사랑을 고민했다. 사랑이 그렇게 무거웠고 사랑에 목말랐고 사랑을 입에, 글에 수도 없이 담았다 뱉기를 반복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니 오늘과의 생경한 거리감 때문에 눈물이 날 지경. 그래서 오늘은 글을 쓰지 않고는 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시 살고 싶어졌다. 사랑을 함부로 입에 올리면서 다시금 살아있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니 사랑을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스무 살쯤에 나는, 살고 싶은 마음에 커밍아웃했다. 커밍아웃은 일종의 구조요청이었다. 홀로 만들어 낸 초라하고 작은 골방 안에 오랜 시간 웅크려만 있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는 신호였다. 씩씩하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혼자 일어날 힘이 없다고 그러니까 손을 내밀어 일으켜 달라고. 이런 마음으로 커밍아웃했던 시절에 난, 거절을 감당할 힘이 없어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은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판단하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았다. 술자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농담에도 날을 세워야 했고 끊임없이 불안했고 또 불안해했다. 그렇게 누가 후- 불기라도 하면 꺼질 것 같은 시절에 조심스럽게 지인들에게 내 얘기를 털어놓았던 것 같다. 너무나도 다행인 것은, 내 얘기를 듣고 손을 내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품을 내어 나를 꼭 껴안아 준 사람들을 이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서른을 넘겼다. 내가 만든 골방 속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나이었는데, 그럭저럭 흘러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지난 10년을 버티게 해 준 얼굴들이 한 명, 한 명 떠오른다.

커밍아웃은 나의 골방에 처음으로 창문이라는 것을 다는 일이었다. 골방으로 기꺼이 초대된 나의 사람들은 초라하다는 표현 대신 나의 골방이 아늑하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들이었고 창문을 달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 주기도 했다. 웅크려 있던 일이 전부였던 나에게 창문이라는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기꺼이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골방은 처음으로 창문을 갖게 되었다.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었고, 어떤 날은 볕이 내리쬐었다. 볕과 바람은 웅크린 몸을 펴게 했고, 마침내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게 했다. 창문을 통해 난 작은 골방에서 처음으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웠고 따뜻했다. 골방의 온도와 함께 내 마음의 온도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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