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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 Sep 12. 2023

굶을까 하다가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아이에게

밥맛이 없다. 샤워를 간신히 해내고 소파에 눕듯이 앉아 망할 놈의 벤츠를 곱씹는다. 중립 기어도 안 박아두고 이중주차 하는 몰상식한 개새끼. 오랜만에 운동을 마치고 금메달 딴 기분으로 나섰는데 예상치 못한 빌런을 만나 멘탈이 만신창이다. 가까스로 분노를 다스리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신은 여전히 좁아터진 필라테스 건물 주차장에 있다.


벤츠를 피해 나가려다 내 차를 긁었다. 긁히는 소리는 분명 귀로 들었는데 심장이 저릿했다.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크게 들이쉰 뒤, 후진 기어를 주차 기어로 바꿨다. 들이쉰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차에서 내렸다. 차 왼쪽이 주차장 기둥에 달라붙어 움푹 찌그러져 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손에 잡히는 건 뭐라도 들고 벤츠 창문을 내리찍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으며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창문이 모두 닫힌 것을 확인한 뒤 핸들을 힘껏 붙잡고 소리쳤다. “씨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다시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차를 빼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열이 오른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달아올랐지만, 별일 아니라고 혼잣말로 속을 달랬다. 서툴렀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더니 별거 아닌 일에 온 속이 불 지펴진 내가 더 못마땅해졌다. 시속 70킬로 도로에서 120킬로까지 속도를 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뒤만 보고 쫓아가다 횡단보도 앞에서 우회전하는 차에 치이고 말았다. 20킬로 조금 넘는 가벼운 몸무게는 당시 배우고 있던 합기도 덕분인지 공중에 한참을 붕- 떠올랐다가 팔꿈치와 무릎을 찢으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도로 한가운데 아스팔트의 온도가 볼에 느껴질 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겁나고 무서워져 벌떡 일어나 집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맞는 바람에 팔꿈치와 무릎이 쓰렸던 감각이 생생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내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오늘처럼 화를 냈던 적이 있었던가. 그날의 교통사고로 꽤 오래 남았던 팔꿈치와 무릎 상처도, 자전거를 타다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앞니가 깨졌을 때도, 조직염 치료를 위해 불가피하게 해야 했던 수술이 5센티가 넘는 수술 자국을 남겼을 때도, 단 한 번도 속상했던 적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다쳐온 날 보며 울상이 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은 난다. 평생 이런 나 자신이 통증에 무던한 성격이라고 여겼고, 유독 몸에 난 상처에 대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지인을 보면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했다.


날 닮은 꼬마의 얼굴이 머릿 속에 달처럼 떴다. 슬픈 얼굴을 하고 표정은 웃고 있는 아이. 아픈 감각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컸던 아이. 외로움이 마음 켜켜이 생채기를 낼 때도 참고 삼켜서 웃어넘기던 아이. '너는 징징거리는 일 한번 없이 늘 의젓한 아이였어'라는 말을 가슴속 훈장처럼 여겼고, 그것이 아이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린 시절의 잦은 이사는 부모의 선택이었지만 가족의 품을 떠난 후에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스스로 빨래를 해야하는 자취의 역사는 열여덞살에 시작되었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옮겨 다닌 집 만해도 네다섯 군데가 넘는다. 팔자에 숨 죽여있던 역마는 나를 미국을 거쳐 독일까지 데려다 놓았고, 지난 10년간 트럭이 아닌 비행기를 타고 했던 이사만 세어도 다섯 번이다. 내 이름으로 계약된 공간이었지만 집이라 부르기에는 왠지 망설여지는 이 곳, 저 곳을 하염없이 옮겨다니다 결국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사는 동네에 살기 시작한 건 1년이 조금 넘어간다.


    꼬마야, 넌 슬픈게 뭔 줄 알아?

    응.

    슬픈게 뭔데?

    슬프면 집에 가지.


여전히 밥맛이 없다. 속으로 벤츠 주인을 여러 번 찔러 죽이고 소파에 늘어져 있다. 핸드폰으로 차 수리 견적을 알아보다 차의 움푹 팬 곳이 내 몸처럼 쓰리다. 밀물처럼 무기력하게 쓸려온 기억에 오랜만에 마음이 젖는다. 괜히 오래된 일기를 꺼낸다.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시기에 끄적인 마음의 낙서들이 장장마다 빼곡하다.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아이에게‘로 시작하는 어느날의 일기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한다.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아이야
    난 널 위해 기도했단다.

    네가 자고 나서 눈을 뜨면 다시 맞을 아침을 끔찍하게 느꼈을 때.

    난 널 위해 기도했단다.

    네가 새벽녘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때.

    난 널 위해 기도했단다.

    네가 죽고 싶다는 말을 살고 싶다는 의미로 내뱉었을 때.

    난 늘 널 위해 기도했단다.

    네가 발가벗은 몸으로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시뿐인 누군가를 껴안아야 했을 때도.

    늘 같은 자리에서 널 지켜보며 기도했단다.

    불안과 두려움에 몸이 떨려와도 마음 깊숙한 곳, 그 가운데 사랑을 꼭 움켜쥐고 있는 너의 작은 손을 위해 기도를 했단다. 깊은 동굴 속으로 홀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널 부르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너의 여정임을, 네가 앓아야 할 몫임을 알기에 너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나는 기도를 했단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넌 사랑으로 빚어낸 나의 최고작품.

    나는 오늘도 널 위해 기도를 한다.

    언젠가 네가 결국은 닿을 그곳에 조금 덜 아프고 도착할 수 있기를.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낸다. 몸을 일으켜 쌀을 씻는다. 쌀뜨물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고 씻은 쌀을 전기밥솥에 넣어 뚜껑을 닫는다. ‘백미 고화력’을 누른다. 굶을까 하다가 밥을 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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