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원 May 02. 2024

신랑 둘, 결혼식 사회를 맡았다

게이 커플 결혼식에서 느낀 특별하고 당연한 마음들

웨딩홀 입구에 들어서자 봄을 듬뿍 맞은 생화가 예식 공간 곳곳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오늘 꽃장식이 특히 예쁘게 나왔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홀 매니저를 따라 사회자 위치를 안내받았다. 예식 순서를 조율하는 매니저에게 내가 준비해 온 큐시트를 꺼내 순서마다 전환과 오디오를 체크했다. 이렇게 꼼꼼하게 챙기는 사회자 분은 처음이라는 말을 듣고 괜히 멋쩍어 '꼼꼼이 아니라 이건 불안이 하는 일'이라며 웃어넘겼다. 식장에 일찍 도착한 하객이 하나, 둘 나타났다. 이제 30분쯤 지나면 예식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신랑 둘이 주인공인 결혼식 사회를 맡았다. 작년 삼식과 상두는 하와이까지 날아가 혼인신고를 했고 올해는 한국에서 예식을 하기로 결정하고 친구인 나에게 사회를 부탁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용기 있는 여정에 기분 좋은 놀라움과 사회를 믿고 맡겨준 고마움이 가장 컸으나,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어 조금 망설여진 건 사실이다. 결혼식 사회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신랑과 신랑이 주인공인 결혼식은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결혼식을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검은색 정장 신랑과 하얀 드레스의 신부 대신—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는 주입식 한국 교육을 충실하게 임했기에— 아무리 내가 게이라고 할지라도 턱시도를 빼입은 신랑 둘이 손잡고 있는 결혼식을 쉽게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대본을 작성할 때는 대상이 되는 하객을 고려하며 쓰는데, 이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들은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회를 부탁받은 후 마음먹고 대본을 쓰려고 앉았을 때 한동안 빈 화면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상두의 경우는 결혼식 두 달 앞두고 어머님 참석이 결정되었다. 꽤 오래전에 커밍아웃 후 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삼식과는 달리, 이번 결혼을 계기로 처음으로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낸 상두는 사실 부모님의 결혼식 참석이 불투명했었다. 그럼에도 어머님이 고민 끝에 결혼식 참석을 결정하셨고 마침 그날 삼식과 통화 중이었는데 나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뻐했다. 다만 혼주석이라는 이름으로 양가 부모가 분리된 기존 예식 형태가 마음에 걸렸다. 결혼식 참석을 어렵게 결정한 상두 어머님의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한데, 일반적인 혼주석의 경우는 참석한 사람보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의 빈자리가 더 눈에 들어온다. 이 문제로 세심하게 고민하던 삼식과 상두는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이 편하게 함께 앉을 수 있는 가족석으로 혼주석을 현명하게 대체하기로 했다. 그렇게 부재보다 참석하는 마음이 더 큰 의미가 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당일 리허설을 위해 조금 일찍 도착했다. 덕분에 신랑 둘이 주인공인 예식은 처음이라는 결혼식장 스태프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식을 준비하며 신랑들과 의사소통에 있어서 혹시나 실수할까 조심스러웠다는 매니저의 말에 세심한 배려를 느꼈고, 결혼식을 더 잘 도와드리고 싶어 긴장했다는 말에는 왠지 마음이 훈훈해졌다. 예식 내내 모든 분이 프로페셔널하고 친절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주셨는데, 이분들의 직업인으로서 최선이 어쩌면 당연한 것임에도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온 이유는 아마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상상하기 힘든 학습된 무기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미리 움츠려 들어 주춤하는 마음과 함께.


"오늘 결혼식은 다른 결혼식과는 달리 조금 특별한 기대감을 가지고 오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기도 하고, 정말 당연한 결혼식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 특별하고 당연한 하루를, 여기 우리 모두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기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예식을 시작하며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사회를 준비하며 공들인 마음을 고르고 고른 단어와 문장으로 이렇게 전했다. 특별하고. 당연한 결혼식. 여기. 우리. 모두. 있는 그대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예식장을 가득 매운 하객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두 주인공을 축하했다. 거의 절반을 차지한 퀴어 하객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가진 양가 가족, 친지분들까지 한데 모여 두 사람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무대 앞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삼식의 부모님이 축사 순서에서 진심이 담긴 편지를 낭독할 때는 하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큰 박수와 호응 부탁드린다'는 사회자의 뻔한 멘트가 필요 없을 만큼 매 순서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하고 예식의 순간에 몰입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일렁거렸다.


한때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딱 보고 배운 만큼 미래를 그리던 시절에는 마음이 가난하고 비좁았다. 조금 더 부풀려 행복을 상상하려고 하면 불안이 금세 발목을 잡았다. 어느 누가 보여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는 행복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불안을 멱살 잡는 용기가 필요했다. 살다 보니 어떤 용기는 가장 작은 단위인 '우리'로 시작되었다. 하나에 하나가 더해진 뻔한 둘이 아니라, 하나와 하나가 합쳐져 다시 태어난 '우리' 말이다. 그 우리 안에 용기가 자랄 수 있었다. 두 신랑이 직접 준비해 부른 축가의 가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너로 인하여"


공교롭게도 결혼식 바로 하루 전이 둘이 만나지 11년째 되는 날이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고민과, 성장과 결정의 순간을 함께 통과해 왔을 두 사람의 예식을 기념하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가사가 있었을까. 막상 결혼식이 끝난 뒤 연습한 화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는 상두의 하소연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이제 둘은 결혼이라는 과정을 또 함께 해냈으니 앞으로 더 많은 날동안 다양한 화음을 맞춰가겠지. 저녁 예식이라 이것저것 정리하고 식장을 나서니 밤 9시쯤이었다. 살짝 더웠던 한낮의 열기는 누그러지고 4월에 어울리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