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다시 사야 하나..
외장하드를 정리하는 중에 대학교 시절 제출했던 과제 하나를 열어 보게 됐습니다. 유진스미스 (W. Eugene Smith, 미국, 1918-1978)라는 사진가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자료였습니다.
외장하드 깊숙이 숨겨져 있던 The Walk to Paradise Garden(1946)의 감동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했습니다.
대학생인 저는 위의 사진을 보고 바로 유진스미스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었습니다.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라는 걸 처음 느끼게 해준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진은 뭔가 달랐습니다.
유진스미스는 1918년 미국의 캔자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스위크NewsWeek, 라이프Life, 지프데비스Zife Davis 사의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1944년 라이프Life의 종군사진가로 사이판과 오키나와 전투를 취재하는 도중 부상을 입고 잠시 사진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1947년, 라이프Life로 돌아온 그는 1951년 스페인마을(Spanish Village)로 U.S카메라상을 수상합니다.
1955년 라이프Life를 그만두고 매그넘에 가담한 유진스미스는 구겐하임 재단의 기금으로 피츠버그(Pittsburgh) 등을 촬영하며, 1958년 세계의 10대 사진가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1975년 뉴욕국제사진센터에서 미나마타병(Minamata)전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사진작품 활동을 하다 3년 후인 1978년 10월 안타깝게도 '뇌일혈'로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사진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이루는 전체적인 조화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여 지각으로 매개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나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소리를 듣게 만들고, 이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때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내도록 인도해 갈수도 있다. 더 많은 이해와 연민을 느낄 것이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W. Eugene Smith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다'라고 이야기 하는 유진스미스의 사진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문자에 의해 읽는 것이 전부였던 그 시절, 문자가 아닌 사진으로써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게 하는 보도사진의 선두주자였으며 사진 하나를 위해 닷징, 버닝 등의 작업을 평균 150회 이상 거친 완벽주의자였죠. 모두가 부러워하는 라이프Life의 사진기자 자리도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지 않아 그만두는 고집불통이었습니다.
라이프와 결별한 이유는 슈바이처 박사의 사진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라이프Life에서는 슈바이처 박사를 성인으로서의 이미지로 부각시키고자 하였으나 유진스미스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유진스미스는 소외 받고 가난한 계층을 카메라에 담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이야기 하고자 했으며 그 어둠을 밝음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유진스미스의 사진철학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진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는 결국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진스미스는 극적인 구도와 전개를 위해, 그리고 명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최소한의 연출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현실과 사진의 왜곡을 통한 감정에의 호소 그리고 작가가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의 사진에 명확히 녹아있습니다.
사진작가이자 평론가인 수잔손탁 (Susan Sontag, 미국, 1933-2004)은 아래 '목욕하는 도모꼬' 사진을 보고 "현대 각본연출법의 참된 주제로서 탐구된 페스트의 희생자가 넘치는 세계를 찍은 한장의 피에타이다" 라고 비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미나마타 사람들이 회사와 정부에 대하여 싸우는 중에 보여준 용기의 가장 아름다운 절정으로 보였다. 이제 이 사진은 낭만주의라 불린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용기였는데, 용기 또한 낭만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는 미나마타 최고의 요소를 상징하고 싶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안겨 있는 어린이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했던 것이다.
그 집으로 가서 나는 매우 힘겹게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네 도모꼬를 목욕시킬 참이었어요. 이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라고 말하고는 일본인이 흔히 하는 것처럼 먼저 욕조 밖에서 그 아이를 안고 씻긴 다음 욕조 안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매우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적인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나는 해냈으며 그것은 충분히 낭만적이다.
-W. Eugene Smith
보도사진가는 자기가 정직하다면 객관성의 경계를 넘을 수 있다고 유진스미스는 이야기합니다. 위대한 이야기꾼이기를 열망한 유진스미스는 그의 포토에세이에서 사진으로 말하는 이야기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조산사 (1951)
모드켈렌이라는 한 산파의 희생적인 삶을 그렸으며 하층민들의 초라한 신생아실을 고발하여 사회적 반향을 불러 모으기도 했습니다.
시골의사 (1949)
세리아니는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일과를 늦은 한밤중까지 지속하기 일쑤다. 그는 내과 업무로부터 시작하여, 정형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치과 그리고 안과 심지어 일반 실험실 조수까지의 업무를 통괄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적한 시골의 일반의들과 같이 그는 휴가나 짤막한 휴일조차도 갖지 못한채 보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본인의 일을 볼 수 있는 병원을 가지고 있다.
위 설명은 [시골 의사]가 [라이프지]에 실릴 당시에 같이 게재된 글입니다. 이 사진을 통해서 이 작은 마을에서 유일한 의사역할을 하고 있는 의사 세리아니의 고충과 보람을 일반인들은 물론 전국 의과대학생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포토저널리즘을 확립하고, 사진이라는 것이 텍스트의 종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내러티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유진스미스는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향해 스스로 뛰어드는 실천적인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그의 사진이 언제까지나 영원하길 빌어봅니다.
참고자료
- 세계사진가론(육명심 저, 열화당)
- 사진의 역사(뷰먼트 뉴홀 저, 열화당)
- 20세기사진사(이토 도시하루 저, 현대미학사)
- 포토저널리즘(이병훈 저, 나남)
- 사진(류얼 골든 저, 동녘)
- photojournalism.org
- windshose.new21.org
*이 글은 2014년 1월, 어느 기업 블로그에 기고했었던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