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격리, 그리고 분열에 대하여
COVID-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로 전 세계에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적인 재앙으로 인해 각국은 불안으로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스스로 고립과 격리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친근함과 반가움을 표시하던 악수와 볼인사는 사라지고, 접촉을 피한 채 마스크와 장갑으로 방어막을 형성합니다.
세계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사회시스템은 일시정지를 선택했으며, 공공장소는 텅 비어가고, 재택근무와 택배로 고립과 격리의 생활을 지속하며, 불황과 실업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인종차별적인 공격으로 불안과 분열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비탄과 슬픔, 실업과 폐업의 근심과 공포 속에서 누군가는 주식에 눈독을 들입니다. 바이오주와 재택근무 시스템, 비접촉 업무환경 솔루션과 온라인 화상진료, 무인택배 시스템, 스트리밍 산업과 홈게임 등의 비상을 꿈꾸기도 합니다.
어쩌면 자본주의에서 산다는 것이 인간성을 쉽게 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재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근원적인 문제는 치료제 개발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2차, 3차 팬데믹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사스도 메르스도 코로나도 아닌 또 다른 신종 전염병이 닥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기저에 깔립니다.
유발 노아 하라리 — Yuval Noah Harari, 이스라엘의 역사학 교수이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의 저자.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 — 교수는 지난 3월 1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서로 분열(disunity)하는 겁니다.”라며 국제적인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국제적인 연대의 이면에는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신뢰가 바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대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과의 신뢰, 개인과 집단 간의 신뢰, 정부와 시민과의 신뢰, 국가와 국가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해집니다. 과거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부가 시민의 신뢰를 얻기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정부를 신뢰한 시민들에 의해 현재 국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좀 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고, 우리는 이를 몸소 경험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전염병에 대처하는 연대의 경험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지나간 후 어쩌면 일부 국가는 더욱더 고립하고 격리하며 분열해 나갈지도 모릅니다. 또 개개인들도 그러한 성향을 띠며 철저한 단절을 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기술은 더더욱 연결을 위해 발전해 가며 불안과 공포를 제거하는 것으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길 희망합니다.
앞서 마스크와 장갑으로 고립과 격리 그리고 분열을 선택했다는 표현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마스크와 장갑을 통해 ‘내가 혹시 전염병에 걸렸을지라도 당신에게는 전염시키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니 안심하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악수와 볼인사가 상대방을 해칠 무기와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일부 유래처럼, 마스크를 통한 눈인사가 상대의 불안과 공포를 불식시키는 배려가 되어 신뢰와 연대를 위한 출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지난한 싸움이 될 이 상황에서 무던하게 애쓰는 의료진들과 현장에서 도움을 주는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 Written by. 김영욱 Kim Youngwook
글 쓰는데 도움이 된 글과 기사
from: CNN https://edition.cnn.com/videos/tv/2020/03/29/exp-gps-0329-global-good-news-coronavirus-covid-19.cnn
from: Financial Times https://www.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