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와 귀찮음.
나는 백수다. 작가지망생이라는 허울만 좋은 이름을 달고 사기는 하지만, 작가지망생을 직업으로 인정해주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직업의 사전적 정의(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만 봐도 그렇고, 사회 통념 상으로도 그렇고. 누군가 백수로 살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 '귀찮음'이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매일 귀찮음과 싸운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귀찮음을 접하다보니, 귀찮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신체적 귀찮음',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고적 귀찮음', 누군가와 접촉하고 대화하길 싫어하는 '사회적/관계적 귀찮음',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총체적 귀찮음'. 이 분류는 당연히 내가 마음대로 정의한 것이기에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매일 내가 싸우는 귀찮음은 모두 이런 유형의 귀찮음 뿐이니까.
귀찮음은 사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먼저,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귀찮다. 그저 이불 속에서 꾸물꾸물대며 괜히 볼 것도 없는 유튜브 영상을 뒤적거린다. 새로고침 하며 별 의미없는 영상을 보기를 여러 번. 겨우 침대에서 벗어나면 아침 식사를 하기가 귀찮다. 도대체 인간의 식욕은 누가 만든 것이며, 배고픔이라는 건 왜 존재하는 것인지. 냉장고를 열어 뭘 먹을까 하다가 포기하고는 그냥 식빵 하나에 우유 한 잔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넣는다. 학생이라면 학교에 가는 게 귀찮고, 직장인이라면 회사에 가는 게 너무나도 귀찮다. (그런 삶을 경험해봤기에 백수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배부른 소리인지 와닿기는 한다.) 과제나 팀 프로젝트는 왜 있는 것이며, 박 과장과 이 팀장의 지시는 회사의 이익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커리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처럼만 느껴진다. 다 귀찮음에서 오는 핑계라는 것도 알고 있다. 게다가 오랜만에 연락 온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청첩장이라도 받았을 때에는 '왜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 애를 보러 가야하지'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는 이런 귀찮음을 매일 마주한다.
다시 돌아와서 백수인 나의 귀찮음은 굉장히 사소하지만 중요한 귀찮음이다. 모든 귀찮음을 마주하며 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운동과 작업의 귀찮음. 일주일에 하루이틀을 빼고는 매일 운동을 간다. 뭐, 이런 생활습관이 오래되진 않았으나 그래도 내 생활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말은 "아, 운동 가기 싫다아."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앞에서 쓴 귀찮음의 종류만 놓고 보자면, 그 귀찮음은 '신체적 귀찮음'에 '사고적 귀찮음' 더 나아가 '총체적 귀찮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귀찮음은 별 이유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고.
작업의 귀찮음도 똑같다. 작가지망생이기에 매일 글감이나 글쓰기 따위에 온 정신이 쏠려 있다. 그러나 정작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러가는 길은 매우 지난하고도 머나먼 여정이다. 집에서는 도무지 집중하기 어려우니 어디론가 가야 한다. 노트북과 마우스를 챙겨 가방에 넣는 것도 귀찮고, 외출에 앞서 샤워를 하는 것도 귀찮고, 어느 카페를 가야할 지 정하지 못했다면 그것 역시 귀찮음에 일조한다. 귀찮음이란 건 실체도 없으면서 이렇게나 나를 괴롭힌다.
아주 다행인 것은 이러한 귀찮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쪽은 열에 아홉 나라는 것이다. 오늘도 역시 온몸을 짓누르는 귀찮음의 무게를 이기고 운동을 갔다왔으며, 다이어리에 적힌 '오늘 할 일' 목록에 취소선 한 줄을 그었다. 집에 돌아와선 책상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니, 매일 아침 그렇게도 귀찮아하면서 어떻게 매번 그 귀찮음을 이겨내는 걸까. 귀찮음을 이기는 힘은 무엇인가.' 몇 분을 명상하듯 생각해본 결과, 답은 간단했다. '그냥 하면 되는 것'. 하기 싫은 핑계나 하지 않아도 될 정당성 따위를 찾지 않고 여러 이유를 따질 것도 없이, 그냥 하는 것이다. (귀찮음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면서도,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과 그레이의 노래 '하기나 해'가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귀찮음은 사실 지속력이 약하다. 오랜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귀찮음은 순간 솟구치는 감정에 가깝고, 이는 짧으면 몇 초에서 길면 한 시간 안에 사라진다. 귀찮음으로 가득한 혼잣말을 꿍얼꿍얼 해대면서 어찌어찌 헬스장에 도착하면, 어느새 다른 생각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땀을 흘릴 때는 알 수 없는 쾌감과 희열을 느끼기도 하면서. 귀찮음을 가방에 잔뜩 쑤셔넣고 아무 카페에 가서 아무 자리에 앉으면, 백지였던 노트북 화면은 어느새 나만의 이야기로 꽉꽉 채워진 한 꼭지의 글로 가득 차게 된다. 이렇게 귀찮음이란 것이 살짝씩 고개를 들 때마다 '어차피 금방 사라질 거야'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해 왔다. 귀찮음과의 싸움에서는 거의 늘 이런 식으로 이겨왔고.
물론, 오늘 저녁에도 내일 아침에도 모레 오후에도 귀찮음은 계속해서 내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나 하나 더 보라는 사탕 발린 말로 속삭이면서, 해도 안 해도 별 차이 없으니 그냥 하지 말라는 말로 꼬드기면서.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똑같이 '그냥 할' 것이다. 그게 내가 귀찮음을 이겨온 방법이니까. 이런 승리를 발판 삼아 하루하루를 나아가다 보면 더 나은 내일을, 더 멋진 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그냥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