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나는, 샤워할 때 유독 깊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명상할 때도 아니고,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생각할 때도 아니고, 책을 읽고 있을 때도 아니다. 샤워할 때만 유독 그렇다. 아마도 한창 우울과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오늘 일을 걱정하던 그 시기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샤워하는 시간은 보통 십오 분 정도로 그렇게 길지도, 그렇게 짧지도 않다. 잠에서 막 깨어나 아무리 몽롱한 상태라도 샤워하는 순간에는 온갖 생각에 사로잡힌다. 온갖 생각이란 건 대부분 당시의 내가 자주 접하는 일이나 관심사에 대한 것이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오늘 고객사 전화 안 왔으면 좋겠다’부터 시작해서 ‘전화 오면 어떻게 얘기하지? 그냥 받지 말까?’로까지 이어졌고, 샤워기 수도를 잠그는 순간에는 ‘출근하기 싫다’라는 생각으로 끝이 났다. 회식으로 술에 잔뜩 취한 다음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술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헤롱헤롱 대며 좋게 말하면 고민과 생각, 나쁘게 말하면 기우와 망상을 하며 샤워를 하곤 했다(이때에도 당연히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으로 샤워를 마쳤다). 직장을 그만두고 막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오늘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생각, ‘어떻게 써야 전달력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나의 십오 분을 지배했다. 이십사 시간 중에서 겨우 일 퍼센트를 차지하는 시간이지만, 오롯이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가끔은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멍청하고 허무맹랑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전날 밤 아홉 시 뉴스에서 본 잔혹한 살인범과 독대하는 장면이라든지, 떡상할 주식과 가상화폐를 잔뜩 사놓고 벼락부자가 되는 장면이라든지. 어떤 때는 문득 전 여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떠올리며, 그녀의 배우자에 대한 상상과 그녀가 살아갈 앞으로의 인생까지 지레짐작하곤 한다(이때는 모종의 죄책감까지도 느낀다). 어디까지나 나의 뇌 속과 나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허구와 상상의 일이기는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을 왜 하고 있지’라고 느끼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한다. 그럴 때면 정수리 위로 쏴아 하며 쏟아지는 따뜻한 물로 머리와 어깨에 머물러 있는 생각을 씻어내고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그러고나면 그 생각들은 몸에 묻은 거품이 물에 씻겨내려가는 듯 정말 실체 없이 사라진다. 신기할 따름이다.
매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다. 샤워를 하며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그럴듯한 글감을 떠올렸을 때다(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그 순간 느끼는 글감이란 건 아주, 아주 아주 작은 티끌과도 같다. 그 티끌만한 글감을 마주했을 때는 묘한 기분이 든다. 비유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무수히 많은 별이 펼쳐진 밤하늘에서 ‘저 별이 내 별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와 비슷하다랄까. 일상 속 나라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상의 조각일 수도 있고 아주 어릴 적 마주한 강렬하고 짙은 경험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일상에서 겪은 바 있는 찰나의 순간이다. 물론 그 티끌이 제대로 된 글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혹시 몰라 샤워를 마치고 바로 작업 방으로 들어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메모로 남기기는 한다. 그러나 구색을 갖춘 이야기로 변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그 글감을 써내려갈 준비만 하고 있을 뿐.
오늘 아침엔 그러한, 그럴듯한 글감이 떠올랐다. 과거에 경험한,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굉장히 작디 작은 티끌, 기억이라는 창고에서 재고 정리되고 있는 작은 조각이었는데 왠지 느낌이 좋다. 이번에는 글로 옮겨쓸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2021.05.21.에 네이버 블로그에 쓴 내용을 옮겨 적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