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다독이는 그리기
매일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다. 그리기와 글쓰기.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지 오늘도 반복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본다. 무차별적으로 일이 쏟아지거나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을 때 종이 어딘가에 낙서를 끄적이고 엄마의 건강이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천천히 엄마의 얼굴을 따라 그리기 시작한다.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종이에 남기면 그 생각이 쓰레기 일언 정, 말도 안 되는 망상일지언정 무거운 감정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니 말이다.
4년 반쯤 갑자기 회사에서 하던 업무의 주제를 바꾸라는 지시를 받았다. 원래 관심 분야가 아니었기에 일하는 게 재미가 없었다. 회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매일 반복하는 업무에 싫증이 생겨났다. 일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쉬면서 몸도 추스르고 생각도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라 여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좀처럼 쉬는 법을 몰랐다. 무엇이 휴식이고 어떻게 해야 쉴 수 있는지 모른 채 시간이 지나갔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갈 거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조금씩 해야겠다는 생각에 낙서를 시작했다. 지루한 회의 시간을 탈출하고 싶어, 꽉 막힌 훈계를 듣기 싫어, 내가 좋았던 순간들을 꽉 붙잡고 싶어 연습장으로 도망을 갔다.
틈만 나면 도망을 쳤다. 생각의 도망이 이어져 실제로 여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재미없는 현실을 벗어나 낯설고 이국적인 장소로 여행을 떠났다. 라오스로, 스페인으로, 이탈리아로 가급적 멀리, 아주 멀리 떠났다. 여행에서의 시간은 현실보단 흥미로워 수많은 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나중엔 아무리 기록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 아주 깊이 새기기 위해 글로 남기고, 그림을 그려 소중한 순간들을 박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만 죽어라 열심히 하는 행렬에서 벗어나 내 그림을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남들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삐뚤거리고 똥 손으로라도 나만의 시선이 담긴 그림들을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휴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럭저럭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 올라갔다. 신체적은 휴식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론 묘한 만족감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탈출하고 싶어 그린 그림은 나를 지탱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 주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다른 세계와 연결을 시켜 주었는데 회사가 아니어도 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었다.
이를 테면 그림 그리는 일로 나만의 이모티콘을 만들어 수익화를 할 수 있었고, 그림을 그려 수많은 외국인에게 판매를 해보는 경험도 해보았다. 대만의 유명 잡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고 영국의 방송에도 나오게 되었다. 아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좀처럼 일어날 수 없던 일일 것이다.
새로운 세계와 연결되고 싶어, 내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기에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물론 삶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잠깐 재미있을 때가 있다면 마음이 시들해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땐 잠깐 화실에 다니기도 하고 문화센터에 나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동료를 만들었고, 수년간 연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기를 멈출 때도 있고 하기 싫다고 방황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리고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을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