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H May 27. 2024

남편도 소중하니까,

육아 중 남편의 대상포진 사건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를 생각하면, 혹여나 실수를 할까, 내가 잘못한 것은 없을까 하는 걱정으로 오직 머릿속에 회사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키우는 내가 요즘 갓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과 같은 마음이다. 아기의 표정, 행동, 옹알이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보조를 맞추는 요즘이다. 뭐든 처음이고 서투른 탓에 내 머릿속에는 아기로 채워지고 있다. 자연스레 아기 외의 다른 사람, 일들은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어느 날 남편이 눈 다래끼가 났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피곤해서 생긴 다래끼인 줄 알고 약 먹고 금방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래끼는 점점 빨갛게 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수포처럼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한쪽 얼굴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남편은 약을 먹고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3시경, 결국 남편은 119에 연락해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다. 


검사를 통해 알게 된 병명은 '대상포진'이었다. 면역력이 저하되었을 때 생기는 병이라는데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며 남편이 많이 피곤했나 보다. 어쩌면 내가 내 논문을 쓴다고, 나의 일을 한다고 내 몫의 육아까지 남편이 하느냐 몸이 많이 괴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남편이 몇 번 괴로움을 호소했던 시간이 있었다. 다만 나도 육아로 피곤했기에 남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당장 아기를 돌보는데 급급했었던 것 같다. 여러 번 남편이 신호를 주었지만, 왜 그 신호를 무시했었을까. 너무 가까운 존재일수록 사소하게 여겨지나 보다. 


남편은 10일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남편 없이 나 홀로 아기와 잠을 청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니 남편 없이도 척척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남편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좋은 동료이자, 가족, 친구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마음은 이미 훌쩍훌쩍 울고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가가 있기에 또 어떻게든 아가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엄마는 강해지나 보다. 


남편의 대상포진 사건을 겪으면서, 나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최선을 다해 챙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챙긴다고 내 시간을 사수한다고 남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육아를 하면서 아기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속에 반려자를 의식적으로나마 챙겼어야 했다. 그게 결국 아기와 나를 위하는 길인 것을 남편이 크게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를 힘들게 한건 남편이 아프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남편에게 퉁퉁거렸던 시간들이었다. 우리 부부는 조용하고 순둥 해서 평소 크게 싸울 일이 없지만, 육아를 하면서 몸이 피곤하니 밑바닥까지 보여주게 되는 것 같다. 그럴수록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소중할수록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마음속으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면 이렇게 큰 사고가 생기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법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으니 직접 경험을 하고 시행착오를 하며 터득하는 중이다. 육아 중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내 마음도 성장을 하게 된다. 오늘은 남편을 위해 딸기를 씻어놔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