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한 아테네 공항 환승 사건
중간 기착지로 도착한 아테네 공항.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조금은 피곤한 여정이었다. 그리스 국적기를 탄 덕분에 얻은 3시간이라는 환승 대기 시간이 반가울리가 없었다. 게다가 들고 있던 론니플래닛 책에 따르면 아테네 공항은 각국 여행객들이 뽑은 최악의 환승공항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고!
과연, 비행기 접안시설이 부족해 승객은 활주로에 내려서 버스로 이동해야 했고, 시골 버스 대합실을 연상케 하는 낡은 시설과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앉을 공간이 몹시 부족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갈아탈 비행기의 탑승 게이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기내에서 알게 된 수다스러운 호주 백패커 G양과 함께여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G양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서며 왜 그러냐고 묻자 방송에서 뭔가를 들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도 영어 원어민이라 다르긴 다른가 보다.
둘이 한참을 달려 탑승 게이트가 가까워지자 무전기를 든 항공사 직원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짜증스런 표정과 함께. 허둥지둥 보딩패스를 내미니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고 있었냐며 추궁하듯 물었다. 아직 두 시간 가까이 남았건만 왜들 이러시는지….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은 게 어디냐며 서로를 '위로'하고 탑승하려는데, 타야 할 비행기가 안 보였다. 아래층으로 가라고 해서 내려가 보니 텅 빈 버스 한 대만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접안을 못한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둘이 타자마자 버스는 부리나케 출발했다. 오늘 따라 유난히 넓게 느껴지는 활주로….
마침내 트랩에 올라 기내에 들어서려는 찰나, 객실승무원이 앞서 가던 G양을 막아섰다. 조종실에서 기장이 부른다는 것이다. 통로가 좁아 G양이 앞에 서고, 내가 뒤에서 조종실 쪽을 기웃거리니 기장이 G양에게 호통을 친다. “너희들 때문에 늦어지고 있잖아!” 내참 이렇게 황당할 수가!! 기장이 승객에게 성질내는 것은 정말이지 처음 봤다. 그나저나 기장의 욕을 G양이 앞에서 막아 줬다고 내심 좋아했으나, 자리로 가기 위해 뒤돌아 객실로 들어서는 순간, 이번에는 수많은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앞장서고 있는 내 얼굴로...
Athens, Greece
이 사건은 아직도 미스터리하다. 어쨌든 이 날 사건을 계기로 한 가지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었다. 비행기를 기다릴 때는 가급적이면 탑승게이트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것과 공항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한쪽 귀는 항상 방송에 열어 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참고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테네의 엘레니콘Hellenikon 공항은 2001년 문을 닫고, 아테네의 북동쪽에 24시간 운영되는 신공항이 개항했다. 여행자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 여행 에피소드 시리즈는 여행매거진 '트래비'와 일본 소학관의 웹진 '@DIME'에서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