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
그때 우리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때마침 BBC에서는 터키에서 발생한 강진에 대한 뉴스가 긴급히 흘러 나오고 있었다. 꽤 큰 지진으로 피해가 엄청났다. 그런데 정작 당혹스러웠던 것은 뉴스의 내용이 아니었다. 바로 나와 함께 뉴스를 보던 이탈리아인 룸메이트 M군의 반응이었다.
"아주 잘됐다. 터키X들은 다 죽어도 싸."
왜 그런 반응을 보이냐는 나의 말에 그는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래전 영국에 머물던 시절 있었던 일이다. 이때의 기억은 지금도 이런 재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떠오른다. 터키와 이탈리아 간에 역사적으로 어떤 앙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 친구가 터키에는 가본 적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했던가. 새삼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특히나 이웃에 대해서는 늘 과격한 감정이 잠재되어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국, 일본의 존재처럼. 아마도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나의 이탈리안 룸메이트를 능가하는 발언도 어렵지 않게 찾을 것이다.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질 수는 없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수리 오형제가 지켜주기라도 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안타깝지만 UN 평화유지군도 평화를 보장해 주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국가의 개념과 문화의 영역 구분이 분명했다. 당연히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간의 교류도 원활하지 못했다. 인간은 무지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모르면 무섭다.
오래전 처음으로 중국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미디어 혹은 제한적인 경험을 통해 생겨난 이미지 덕분(?)에 중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바닥인 채였다. 과거 이데올로기의 영향까지 받아 적대적이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런데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들도 우리와 너무나 '같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신선하게, 그리고 묘하게 다가왔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달라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다르게 컨트롤 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전선에서는 양측 경계병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 표면적으로는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영화 JSA를 보면 이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여행=노는 것'이라는 관념이 남아 있다. 그러나 결론은 나왔다. 여행은 세계 평화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행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주고 받고 그들이 사는 것을 보고 온다. 돌아와서는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그렇게 이어지는 인연은 다음 여행에서 다시 이어진다.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고 선물을 주고 받고. 그러다가 인연이 더욱 깊어지는 이성 간이라면 결혼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알고 얽히다 보면 국가간, 문화간의 장벽도 모호해진다.
물론 아무리 교류가 활발해진다 해도, 세계 단일 정부 같은 것은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 당장 EU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세상에는 이렇게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을 원치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계가 곧 잠재적인 갈등의 불씨를 의미한다면 여행, 즉 국제적인 교류는 큰 의미가 있다. 국가 간, 지역 간의 갈등이 불거질 때 교류가 없는 집단 간에는 무력 충돌 같은 극단적인 결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상대에 대해 아는 것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국민들은 소수 극단적인 정치인들의 ‘선동’에도 휘둘리기 마련이니까. 한 번 생각해보자. 나의 친구들이, 혹은 나의 외가(혹은 친가)가 사는 나라를 공격하자는 누군가의 말에 당신은 무어라 말할까? 적어도 ‘당장 밀어버려!’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여행을 계획한다. 세계 평화의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