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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시고랭미고랭 Nov 14. 2019

짠돌이 남편과 산다는 것

속 터지다가 짠하다가

아들램과 함께하는 등원 길. 남편의 전화가 왔다. 보이스톡이다.

남편의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자기, 왜 자꾸 보이스톡으로 전화해? 통화감도 떨어져서 전화도 잘 끊기고 목소리도 안들린단 말아야."


"전화비 아끼려고! 회사 지원 줄어들었단 말이야. 좀 감도 떨어져도 통화되잖아!"


"아.........."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전화비 몇 푼 든다고 그걸 그리 아끼나 답답하다가 생각해보니 여기저기 전화하는데 많아서 지원금 한도 내에서 전화비 끊으려고 보이스톡으로 전화하는 마음 생각하니 짠하고 안쓰러웠다.


월급날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남편과 내 통장에는 다 합쳐서 70만 루피아(한화 약 65,000원) 정도만 남았다. 이번 달엔 어쩔 수 없이 한국 월급을 일부 가져다 써야 할 것 같다. 한국 통장 잔고와 이번 달 예상 월급을 확인한다. 아, 이번 달엔 한국 월급도 적게 들어오는 달이네. 내년 10월까지 목표로 한 저축금액이 있는데 돈을 꺼내 쓰려니 뭔가 아쉽다.


주재원이라면 모두 주거비, 학비, 교통비, 통신비 등등을 지원받을 거라 생각하지만 회사마다 차이가 크다. 우리 남편의 경우는 주거비와 통신비 빼곤 지원이 없다. 교통비와 학비로 매달 현지 월급의 절반 이상이 지출되니 생활비 계산하는 게 빠듯하다. 셋 중 누구 하나라도 아파 병원이라도 가면 그 달은 현지 가계부가 더 빡빡해진다. 물론 보험으로 전액 보상받지만 한국 통장으로 들어오니 그 돈은 저축이라 생각하고 건드리지 않는다.


동남아 주재원이라면 기사에 내니에 메이드 쓰면서 남자든 여자든 맨날 술 먹고 골프 치고 놀러 다닌다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맨날 골프는 무슨, 매일같이 야근에 회식에 혹여나 한국서 손님이라도 오면 주말 출근하는 남편 보면 대체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편견이 나왔을까 싶다. 예전에 '주재원 와이프의 삶이란'이라는 글을 썼다가 초반에 줄줄이 달린 온갖 악플에 속상해서 며칠간 우울했었는데 그 댓글의 대부분이 '남편 덕에 호의호식하며 띵가띵가노는 여자'란 편견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골프는 무슨, 1년 동안 골프장은커녕 미용실도 못 갔는데 무슨 호의호식에 띵가띵가인가. 지난 1년간 170,000루피아(한화 약 14,000원) 티셔츠 한 장 샀는데 그것도 애기가 차 안에서 멀미로 토해서 급하게 산 티셔츠였다. 그 화려한 라마단 말미 세일 기간에도 아무것도 사지 않았으니 우리 부부의 소비는 정말 먹는 것과 주방/세탁세제 외에는 전무하다.


어젯밤 한국에서 가져온 화장품이 다 떨어져서 남편에게 "화장품 사야 할 것 같아. 토너 다 떨어졌어." 물었더니 "사! 한국돈 뽑아서 환전해서 사."라고 흔쾌히 말하던데 정작 본인이 전화비 아낀다고 보이스톡으로 전화하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우선 일주일간은 샘플 스킨들을 토너 대용으로 사용하자!라고 마음먹는다. 남편이 아끼는데 나도 하나라도 더 같이 해야지.


인니는 화폐단위가 100루피아(한화 8원 정도)부터 10만 루피아(한화 8,300원 정도)까지 다양한데 현지 사람들은 100, 200, 500짜리 동전들을 막 던진다. 길에 떨어져 있어도 안 줍고 거스름돈도 퉁친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무조건 100루피아까지 다 챙긴다. 내가  동전지갑을 갖고 다니며 잔돈 계산하는 걸 본 남편이 본인도 동전 쓰겠다 해서 500, 1000루피아짜리 큰 동전들은 한 번씩 모아서 남편에게 준다. 택시나 커피 등 자잘한 계산 때 한 번에 털면 좋다.


음식 남기는 거 싫어하고 관리비 1 단위까지 하나하나 다 확인하고 어쩌다 기사한테 퇴근하란 말 깜빡해서 초과근무비 1만 루피아(한화 800원) 주게 되면 언짢아한다. 13년 동안 입은 티셔츠를 아직도 잠옷 대신 사용하고 와이셔츠 깃이 다 낡아서 하나 새로 사자 고하면 자기는 필요 없는데 왜 사냐고 한다. 현지 사정상 바틱 셔츠를 두벌 사게 되었는데(인도네시아 전통의상으로 인니에서는 바틱을 입을 시 정장을 입은 것과 동일하게 대우한다. 매주 금요일은 '바틱 데이'로 바틱을 입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왜 두 벌을 사야 하냐고 짜증을 냈었다. (월요일 화요일 연달아 입어야 하니까....ㅠ)  


5년째 같은 휴대폰을 쓰는데 그 휴대폰도 당시 출시된 지 2년 넘은 저가 모델을 통신사 이동조건으로 공짜로 받은 거라 요새 뭐가 잘  안 된다! 출장으로 한국 들어갈 때마다 제발 핸드폰 좀 바꿔 오라 하는데 귀국하면 바꾼다고 절대 안 바꾼다. 현지 골프비용이 워낙 싸서 주변분들이 골프 치자고 하니 돈 든다고 계속 만류하길래 내가 이러다 우울증 걸리겠다고 운동한다 취미 하나 만든다 생각하고 나가서 좀 치라고 하니 골프채 없다고 버티다가 회사 사무실 창고에서 다 낡은 골프채 세트를 발견하고 아무도 안 쓴다길래 그걸 가져다 치는 사람이다. 시작한 김에 골프채 사라고 했는데 골프가방이 너무 낡았으니 그것만 바꾸자 하곤 우리나라 돈 20만 원이 아까워서 며칠 동안 고민한 사람이다. 자기를 위해서 사라 하니 고민 고민하다 고맙다며 또 애지중지 아껴한다.


물론 좀 지독한 면 때문에 사람을 괴롭게 할 때도 왕왕 있다. 한 번은 커피 마시러 가지고 해서 갔는데 비싼 카페에 말도 없이 케이크 시켰다고 뚱해 있었다. 비싸 봤자 옆 까페에 비해 커피는 200원 비싸고 케이크는 3000원짜리였는데! 애기가 케이크 먹고 싶다 해서 산 건데! 어이없어서 이렇게 작은 걸로 맘 상해서 가족끼리 있는 소중한 시간을 잃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하도 속상해서 양가 부모님께 통화하다 하소연했더니 친정에선 속상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시댁에선 난처한 웃음만 지으셨던 게 생각난다.


또 한 번은 골프웨어 없어서 티셔츠를 한벌 샀는데 한국에 잠깐 들어갔을 때 가져갔다가 세탁기에서 안 챙겨 왔다고 내내 성질을 냈다. 골프 치러 가야 하는데 단 한 벌 있는 옷이 없다고 화를 바락바락 냈다. 그러지말고 빨리 가서 라운지에서 하나 사라 했더니 그냥 티셔츠를 입고 가더니 분이 안 풀렸는지 골프장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카톡으로 면박을 주었다. 그 날 너무 속이 터져서 애가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 며칠간 열이 38도를 오가며 밥도 못 먹게 아픈 상황이었는데 골프셔츠 하나 없다고 사람을 그렇게 생각 머리 없다고 면박 주냐고 그냥 한벌 사면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이게 작게 보면 7만 루피아짜리 한벌이지만 크게 보면 살림 전체라고 쌩난리를 쳤었다. 그날 밤 결국 나는 온몸에 열꽃이 돋았고 다음날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고 현지 한의원에서 일주일간 침, 부황 치료를 받았으며 한약까지 지어먹었다. 그 비용이 대략 한화로 100만 원이었으니 성질 안 내고 그냥 조용히 골프셔츠 한 벌 샀으면 내 병원비에 상한 마음까지 아꼈을 텐데. 사소한 것에 집착하다 보니 더 크고 소중한 걸 잃은 케이스다.


한번 산 물건은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오래 쓰고, 허툰데 돈 나가는걸 제일 싫어하지만 가끔 도가 지나쳐서 내 맘을 힘들게 하는 남편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신용카드 긁어서 장난감이며 필요한 거 무조건 사주라 한다. 역시 내리사랑엔 뭐가 없나 보다.


가끔 속이 너무 답답할 때가 있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빠듯하게 살아야 하나 싶어서. 에코백이랑 배낭만 메고 다니고 1년 동안 한국서 가져온 청바지 두벌에 티셔츠 돌려 입으며 길거리 화장품 써도 내 마음 떳떳하면 되지 하고 잘 살다가 한국 지인들 서울 부동산이 얼마 올랐네 인스타에 비싼 옷이며 가방 걸친 사진 보면 지금 이렇게 한 푼 두 푼 아끼며 사는 게 무슨 찌질이냐 싶기도 해서 서글퍼지기도 한다. 나중에는 물건에 하도 무감해져서 어떤 모양인지도 신경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 얼마 전 남편이 내 지갑을 보더니 지갑 사자고 직접 몰에 데리고 갔다. 10년 전에 가방을 사면서 공짜로 받은 지갑을 안 쓰다가 인니에 가지고 와서 썼는데 물이 빠지고 헤져서 지갑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굳이 비싼걸 살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깨끗하고 단정해야 하는 거야. 오래 써서 낡아도 깔끔하고 잘 손질되어 있다면 새거나 다름없잖아. 그게 중요해."


짠돌이 남편이 내게 한 말이다. 자기는 아껴사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추리하게 다니지 말라고. 그래서 3,000원짜리 케이크나 아끼지 말라고 핀잔주었지만 남편의 말속에 사람의 기본 됨됨이가 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워도 같이 사나 보다.


짠돌이 남편과 살며 오래된 구축이지만 집도 사고 빚 갚으며 한 해 두 해 보내다 보니 이제는 나도 아껴서는 게 습관이 되었다. 가끔은 진짜 남들처럼 예전처럼 쇼핑백 둘러메고 팬시한 맛집 찾아다니며 실컷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턱끝까지 올라오지만... 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년 귀국 때까지 돌려줘야 할 월세 보증금 다 모아서 가겠다는 목표가 있으니 다시 기운을 내야겠다. 오늘 점심은 좀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외식비는 부족하니 집에 가서 비빔밥이나 해 먹어야겠다! 힘내자! 담주에 월급 들어오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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