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네겐 고마운 사람이라니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전 직장 후배의 게시물에서 한동안 멈춰있었다. 세련되고 예쁜 음식 사진 밑에는 본인에게 큰 기회를 준 감사한 사람에게 꼭 대접하고 싶었던 음식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게시물만 봐서는 하등 이상할 게 없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기분이 더러웠다. 왜냐하면 그 후배가 자신에게 큰 기회를 주었다고 적은 사람이 내겐 가장 큰 기회를 앗아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후유증은 어마어마해서 퇴사 전까지 나의 모든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상담도 받고 약도 처방받았지만 우울증은 약 5년간 지속되었고 재작년 약 8개월간 집중 상담을 받고 나서야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이 누군가에겐 가장 큰 기회를 준 사람이라니. 그리고 나름 잘 이해하고 지냈다는 후배와 그 사람이 서로 그동안의 노고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릴 정도의 관계였다니. 물론 그들도 그 나름의 애환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거기까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 이상의 생각은 멈추었다. 내가 왜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의 사연까지 미리 고려해야 하나. 그럴 필요 없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누구보다 착하고 힘이 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과 그들의 인연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나는 가장 안 좋은 상황에서 가장 안 좋은 시기에 가장 안 좋은 방법으로 그들을 만났을 뿐이다. 지지리도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쓰게 웃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다시 함몰되어 아프고 싶지 않아서.
항상 인간관계에 유려한 사람이 있을까. 단 한 번도 인간관계에서 실수한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툴고 실패한 관계들이 쌓여 보다 원만하고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리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지나간 시간이 아쉬운 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후회 때문이리라. 누군가와의 지난 시간들을 원망하다가 나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무례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적은 없나 생각해보니 분한 마음이 저절로 사그라든다. 지난날 못난 나 자신의 서툰 행동이라는 표현으로는 변명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부끄럽다. 나의 과오에 대한 누군가의 용서와 무마를 바라듯 나 역시 내 상처와 트라우마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또 다른 기회를 바랐듯 나 역시 타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냐며.
정작 상처를 준 사람은 본인이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까맣게 잊고 지낸다. 설령 기억이 난다 해도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하며 가볍게 넘긴다. 그러나 피해자는 평생 가는 기억으로 괴롭거나 힘들어한다. 불공평하지만 본인을 위해서 상처를 놓아주거나 과거의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니까. 내가 그랬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그들을 되새길 필요가 없을 만큼의 상황이 되니 그제야 그들의 무례함이 곱씹을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책들이 자신을 위해 타인을 용서하라고 말했나 보다. 억지로 관계를 회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본인에게든 타인에게든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아니듯이 현재의 타인도 과거의 타인이 아닐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전 직장에서 큰 상처를 입었지만 악바리처럼 7년 반을 버틴 덕에 그래도 많은 것을 배웠다.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업계라서 그들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볼 수 있던 건 큰 행운이었다. 그 덕에 조금이라도 빨리 변화하는 IT산업을 접할 수 있었고, 지방 출신 문순이로 경제, 금융,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경제와 금융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전 직장 입사 시점에 나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에도 합격했었는데 그때 그 자리를 거절하고 전 직장을 선택했다. 만약 내가 그때 전 직장이 아닌 다른 곳을 선택했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그날 밤 퇴근한 남편과 영화 <나비효과>를 보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결국 남주인공은 태아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탯줄로 목을 감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남주인공이 그토록 되돌리고 싶던 과거와 간절히 바랬던 모두의 행복한 삶은 그의 죽음 이후, 그가 존재하지 않는 삶 속에서 전개되었다. (태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설정은 개인적으로 Bullshit이었다) 그러나 '내'가 '없는' '모두'의 행복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주인공이 처음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이미 지나간 과거는 억지로 되돌리려 하지 말고, 흘러간 것은 흘러간 대로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 과거에 우리가 무슨 상처를 입었건, 어떤 흉터가 남았건. 혹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행복과 기쁨이 있었을지라도. 바꿀 수 있는 건 지금 현재와 현재의 내 선택과 행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미래뿐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지난한 후회와 미련, 아픔은 이만 고이 접어 시간 속으로 날려 보낸다. 아직도 쿡쿡 아프지만 언젠가 아프지 않은 날이 올 것이다.
훗날 우연히 아픈 과거의 인연을 마주하게 되면 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여전히 아픈 나 자신이 버겁다면 그 아픔에 대해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고통의 무게를 넘기고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란다. 반대로 누군가의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늦었더라도 진심으로 사죄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