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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eeker Sep 04. 2016

아이 둘 데리고 유럽으로-11

Seoul, Spring, 2007

Seoul, Spring, 2007


몸은 여기 있어도 마음은 이미 그곳에

한 사람에게 매료되듯이 한 장소에 꽂힐 때가 있다. 친구와 연인과 단촐하게 가는 여행이라면 여권, 시간,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떠나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은 늘어나는 경비와 짐가방, 차멀미, 배탈, 세탁물, 뒤쳐지는 공부 생각에 떠밀려서 다음으로 미뤄지기 쉽다.


불현듯 유럽이 날 부르는 것 같은 한 순간의 착각에 이번 여름방학엔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아이들 마음에 잔뜩 바람을 집어넣고 나니 그 뒷감당은 내 몫이 되었다. 책과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느라 벚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을 놓쳤고 여행 준비를 마쳤을 땐 장맛비에 쌓아둔 자료들이 눅눅해졌다. 비행기 바퀴가 히드로 공항(Heathrow Airport) 활주로에 닿기 석 달 전에  나는 이미 런던의 지하철을 타고 있었고 피렌체의 돌길을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며칠 동안?


지도 위에 펼쳐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20가지가 넘는 아이스크림 중에서 세가지만 골라야 할 때와 같은 고민에 빠진다. 서유럽을 선택하면 프라하를 곁눈질하게 되고 이탈리아를 목적지로 결정하면 이웃나라 그리스와 스페인이 아쉽다. 그래서 여행도 주제와 목적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싶고,

하고 싶고,

느끼고 싶어

거기에 가려하는가?'


가족의 관심분야 - 미술, 음악, 공연, 건축물, 축제, 쇼핑, 서점, 음식, 맥주, 스포츠, 공원, 숲, 호수, 바다 - 에서 교집합과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여행 안내서와 인터넷의 자료들을 참고해서 한 도시에서 방문할 장소들을 결정하고 대략 며칠을 머무를지 예상해본다. 이때 아이들의 체력과 기상/지침 시간을 고려해 하루에 방문할 수 있는 여행지 수를 선택한다. 뉴욕, 런던, 파리, 로마와 같은 대도시는 최소한 5일은 머물러야 도심과 근교의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여행할 나라가 확정되면 관광비자가 필요한 지부터 먼저 확인한다. 여권 만료일도 함께.



박물관과 유적지의 입장료, 대중교통 요금, 연계 교통편이 변경될 수 있으니 최근 6개월 이내에 업데이트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정을 계획한다. 2007년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는 템즈강 남쪽의 Waterloo Station에서 출발했지만 2015년엔 도심에 위치한 St Pancras International Station으로 가야 했다. 파리 외곽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에 가려면 국철을 타야 한다. 여행안내서에 적힌 데로 국철이 환승되는 지하철역에 갔다가 환승역이 바뀌었다는 안내문과 마주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Google Maps를 다운로드하여 여행하는 도시의 교통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으니 출발 전에 먼저 체크하고 움직이는 게 좋다. 특히 런던은 보수공사 등을 이유로 주말에 일부 구간에서 운행을 하지 않는 지하철 노선이 많고 밤 11시까지만 다니는 버스도 있다. 반대로 숫자 앞에 'N'자가 붙어 있다면 밤 11시에서 오전 6시 사이에 탈 수 있는 버스를 의미한다.


첫 목적지는?

방문할 도시와 머무르는 기간이 정해지면 이제 도시와 도시 사이의 이동 순서를 결정한다. 유럽 전역의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망은 유레일 패스 홈페이지(www. eurail.com)에서 소요시간과 함께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중앙역에서 바로 하차하기 때문에 외곽에 위치한 공항으로 이동해 장시간 체크인 수속을 받고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다. 물론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구간에선 기차역에서 여권 검사와 입국심사과정을 거치지만 공항의 탑승수속만큼 까다롭지는 않다. 특히 처음 입국할 도시와 마지막 출국하는 도시는 우리나라에서 직항 비행노선이 있는 곳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경유하는 비행기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들이 지치게 되고 여행가방의 분실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출처: http://www.eurail.com/plan-your-trip/railway-map


예약은 서두를수록 이득


모든 예약은 비행기 출도착 날짜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7-8월과 12-1월, 방학과 휴가가 겹치는 성수기에 여행 날짜를 잡았다면 숙박료와 교통비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제선 비행기는 한 달 전과 석 달 전에 구매한 티켓의 가격차이가 수십만 원에 이르며 탑승 요일별로 요금이 다르니 가장 저렴한 날짜로 출도착일을 선택한다. 또한 환율 변동에 따라 가격이 유동적이므로 해당 국가의 환율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비행기가 첫 여행지에 도착할 날짜는 처음 호텔의 체크인 날짜가 되고 돌아올 비행기를 타는 날이 마지막 호텔의 체크 아웃 날짜이므로 앞서 각 도시별로 며칠밤을 보낼 건지 계획한 걸 바탕으로 체류 날짜를 확정하고 호텔을 예약한다. 다양한 예약 사이트에서 최저가를 비교하다 보면 특급 호텔이 50% 할인가에 올라올 때도 있다. 더블침대 두 개가 설치된 객실은 3-4인 가족이 한 객실을 이용할 수 있어서 성수기엔 수요가 많으니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더블 침대 하나와 싱글 침대 하나로 이루어진 트리플 객실엔 싱글 대신 접이식 간이침대를 임시로 가져다 놓는 경우도 있으니 사진으로 방의 내부 전경을 먼저 꼼꼼히 확인한다.


아파트형 호텔의 장점은 식사와 빨래의 해결이다. 냉장고, 오븐, 전자레인지, 스토브, 식기세척기와 같은 주방시설과 각종 조리기구들이 갖춰져 있어 식비가 절약된다. 런던의 Tesco, 파리의 Carrefour, 호주의 Coles 같은 대형 마트의 체인점은 주택가뿐만 아니라 번화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븐에서 일정 온도와 시간 동안 익히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 폭립, 치킨 등을 냉장식품 코너에서 살 수 있고 과일과 샐러드도 종류가 다양하다. 세탁기에 넣을 소형 세제도 판매하니 관광지를 둘러보는 낮동안 세탁기에게 빨래를 부탁하면 된다. 세탁기에 건조기능이 있거나 건조기가 따로 설치되어 있어서 빨래를 말리는 수고는 생략할 수 있다. 일반 호텔을 이용할 때 운이 좋으면 숙소 근처에서 빨래방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관리자 없이 세탁기만 덩그러니 있고 빨래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세탁기 앞에 쭈그리고 있어야 한다. 아파트형 호텔은 추가 시설로 인해 일반 호텔보다 비싼 편이지만 낯선 도시에서 집에 있는 듯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고 그곳 시민들과 함께 장을 보는 과정에서 그들의 일상도 체험할 수 있다.


유럽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여행객들도 많지만 대도시를 중심으로 여행한다면 자동차보다 기차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유럽 도시들은 대부분의 관광지가 시내 중심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도심 혼잡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높은 주차장 사용료를 부과하며 공용 주차장도 드물어서 자동차는 비효율적이다. 반대로 공용 자전거는 대로변뿐만 아니라 골목에도 10대 이상 줄지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파리는 현금으로 무인 자판기에서 대여료를 지불할 수 있지만 런던은 카드결제만 가능하다. 하나 더, 자전거를 탈 때  헬멧 미착용이 불법인 도시가 많으니 유의하시길.



기차 요금도 비행기 티켓처럼 출발 날짜에 가까워질수록 요금이 올라간다. 유레일 패스는 국가별 패스와 2-4 국가를 묶은 다국가 패스로 나눠져 있으니 여행경로와 기간에 맞게 선택한다. 이동 도시마다 개별적으로 구매한 티켓을 합산한 비용보다 유레일 패스가 30% 이상 더 저렴했다. 기차의 좌석 배정은 인터넷으로 직접 해야 하는데 모든 노선을 한 번에 예약해야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A doctor is the last person
for tourists to visit.

세부 일정을 짤 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아이들의 건강과 여행지의 공휴일. 대중교통과 자동차를 이용한다고 해도 관광지에서 걷기 량은 평소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잠을 많이 자야 아프지 않고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 처음 유럽여행 당시 8살, 10살이었던 우리 애들은 대개 밤 9/10시에 잠이 들고 아침 8/9시에 눈을 떴다. 큰애는 가끔 코피가 나고 작은 애는 여행 3주 차에 다래끼가 났지만 감기나 배탈로 고생하진 않았다. 외국은 우리와 다른 의료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아이들이 아픈 경우를 대비해 현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병원 시스템에 대해 미리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 의사가 진료하는 곳의 위치와 연락처를 포함한 어느 호주 여행 안내서처럼 병원에 대한 정보가 여행책자에 더 많이 다뤄지면 좋겠다. 감기와 설사는 현지에서 감염된 세균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간 약을 복용해도 증상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처방전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감기와 배탈 관련 약들(over the counter drug)을 약국외에 마트에서도 살 수 있으니 병을 키우진 말자. 여행지에서 아프면 백배의 서러움을 감당해야 하니까...


여행 전에 날씨와 환율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 외에 반드시 체크해야 할 사항은 여행지의 공휴일이다. 우리나라는 명절과 국경일에 영업하는 마트와 식당들이 있지만 유럽, 미국, 호주에선 크리스마스에 며칠씩 문을 닫는 곳이 절대다수이다. 성탄절 외에도 영연방 국가는 엘리자베스 여왕 탄생일이 공휴일이며 기독교 문화권인 나라들은 부활절도 휴가기간이다. 만약 여행지에서 마실 물도 먹을 것도 대비하지 못한 채 공휴일을 맞게 된다면 가장 큰 기차역으로 가라. 12월 25일에도, 1월 1일에도 기차역 내 상점들은 영업을 한다.



하루하루 새롭고 두렵고 설레며


2015년 12월,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기내를 술렁이게 했다. 동그란 창 너머 런던이 저녁 불빛에 반짝거렸다. 창가에 앉은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런던 지도를 한 손에 꼭 쥐고 창밖을 내다보다가 볼펜을 입술에 물고 다시 지도를 내려다본다.

'나도 처음엔 저랬는데...'

그때 나는

하루하루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새로웠고,

다음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두려웠고,

간절히 원했던 그곳에 섰을 땐 가슴이 설레었다.

그녀도 매 순간 그럴 거라 생각하며 런던의 아스라한 첫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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