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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eeker Aug 31. 2016

아이 둘 데리고 유럽으로-10

Roma 8.8-8.12, 2007

Roma 8.8-8.12, 2007



로마 - 한때 거대한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 도시의 지리적 크기는 의외로 작다. 로마 북쪽의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에서 남쪽의 콜로세움(Colosseo)까지 걸어서 30-4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의 고층 아파트와 넓고 곧게 뻗은 대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좁고 고불고불한 골목을 걷는다는 건 타임머신 없이 고대 로마로 들어간 것과 같았다. 트레비 분수(Fontann di Trevi)와 판테온(Pantheon)은 여섯 개 이상의 골목길들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서 여러 방향에서 별 기대 없이 골목길을 빠져나오다 뜻밖의 장관에 놀라는 사람들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의도하지 않은 몰래카메라 같다고나 할까?


나에게 로마는 분수의 도시이다. 가로수가 드물어서 자칫 삭막하기 쉬운 거리 풍경에 크고 작은 광장마다 배치된 다양한 형태의 분수가 여유로움을 만든다. 건물의 가로 벽면 전체를 장식한 트레비 분수는 화려한 대리석 조각상들 사이로 떨어지는 세찬 물살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도심에서 해변을 연출한다. 반대로 스페인 계단 앞에 있는 난파된 배 모양의 분수는 물줄기가 가늘고 선이 예쁘다. 로마의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지하수이고 옛날엔 공동 식수로 사용했단다. 공원에서 식수용 물을 마시듯이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2007년 유럽여행에서 겪은 문화충격(culture shock) 중 하나가 물에 대한 것이었다. 식당에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물은 무료가 아니었고 물에도 옵션이 있었다. 음식 메뉴를 주문할 때 수돗물(tap water)과 생수(bottled/still water) 중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나서 생수라고 대답하면 탄산수(water with gas)와 보통 물(still water/water with no gas) 중에서 또 선택하라고 한다. 생수는 유료이며 무료인 tap water는 정수기를 거친 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수도꼭지를 통과한 물이다. 몇 해전부터 한국에서도 탄산수가 판매되고 있지만 10년 전에는 약수터에서나 마실 수 있던 쌉싸름한 탄산수를 매일 마시며 생활하는 서양인들의 식습관이 신기해 보였다.


식당과 관련해 한 가지 덧붙이면 우리가 식사를 했던 런던, 파리, 제네바와 이탈리아 도시들의 음식점에선 계산서(bill)에 종업원의 봉사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로 팁(tip)을 낼 필요가 없었다. 반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물가가 싼 독일은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미국과 캐나다처럼 팁을 요구한다. 카드로 지불할 경우엔 팁(5-10%)을 얼마를 줄 건지 종업원이 물어보고 음식값과 팁이 합산된 영수증(receipt)을 준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음식점에선 손님이 주문을 하면 음식이 나오기 전에 테이블 위에 계산서가 먼저 준비되고 식사를 마친 후 카운터에서 지불하지만 서양에서는 식사를 끝내고 웨이터에게

"Can I have my bill?/Bill, please."

하면 식사를 한 자리로 계산서를 가져다주며 현금이나 카드로 지불한 후 영수증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호주(팁 문화 없는)는 bill을 receipt와 혼용해서 쓰기 때문에 계산서를 달라고 하면

"Do you mean receipt?"

라고 종업원이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흔하다. 요약하자면 나라마다 다른 지불 절차를 따르기 때문에 여행하고자 하는 나라의 지불 관행에 대해 미리 알고 가면 편리하다.


유럽에서 유료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차역과 지하철역의 공중화장실은 평균 50센트 정도의 사용료를 입구에서 직원에게 지불해야 한다. 대형 쇼핑몰의 화장실에도 팁 박스를 설치한 곳이 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할 땐 급하게 화장실에 가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동전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박물관과 식당에서 무료 화장실을 부지런히 이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뉴욕과 같은 미국 대도시에선 대중교통시설의 공중화장실은 총기와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많이 일어나 출입구를 봉쇄한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런던의 하이드파크(Hyde Park)부터 로마의 고대 유적지까지 유료 화장실을 경험하고 나면 내 나라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공중화장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피자는 동그랗다는 나의 고정관념은 피자의 고향 이탈리아에서 깨졌다. 피렌체와 로마에선 두꺼운 네모난 피자를 얇고 둥근 피자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다. 도화지만큼 큰 피자를 작게 잘라서 무게로 가격을 정한다. 야채가 많고 치즈 토핑이 적어서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정어리와 같은 생선살이 들어간 피자도 많이 먹는다. 파리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백인 여자아이가 먹는 걸 보고 딸아이가

"나도 저거 먹을래."

해서 주문한 피자를 먹으며

"엉? 피자에 가시가 있네?!"

세계화로 인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스시롤, 햄버거, 스파게티는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 나라의 전통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여행의 필수 요소이다. 영국의 피쉬 앤 칩스(fish and chips)가 정말 맛이 없는지, 로마의 젤라토(gelato)는 단맛의 촉감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느껴보면 완고하게 굳어버린 생각의 틀이 말랑말랑해지면서 세상에 대한 공감의 범위가 한 뼘은 늘어난다.



로마의 대표적 관광지인 성 베드로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바티칸 미술관(Musei Vaticani), 콜로세움은 내부를 둘러보는 시간보다 입장을 기다리는데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약간의 전략이 필요하다. 바티칸 미술관은 오전 8:45, 성 베드로 성당은 오전 7:00에 문을 열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다면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 정문 우측에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Pieta)상과 그가 설계한 Dome(둥근 지붕) 바로 아래 지하에 있는 초대 교황이자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무덤을 둘러본다. 그 다음에 성 베드로 성당 우측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에서 미켈란젤로가 커다란 홀의 천정에 그린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목이 뻐근하도록 올려다본 후 바티칸 미술관으로 이동해서 라파엘로의 방(Stanze di Raffaello) 벽면에 그려진 <아테네 학당>을 보는 순서로 관람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대로 바티칸 미술관을 먼저 공략하면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볼 수 있었던 높디높은 바티칸의 성벽을 따라 줄지어 선 사람들을 오전 9시면 목격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줄서는 수고없이 콜로세움에 들어가려면 콜로세움 앞에 세워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stantino)을 지나 경사진 좁은 흙길을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로마 초기의 유적지인 팔라티노(Palatino) 언덕으로 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개별 입장권보다 싼 통합 입장권을 구매해 팔라티노를 먼저 둘러보고 나서 콜로세움 입구에서 표를 제시하면 바로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유적지와 관광지가 오밀조밀 모여있지만 콜로세움과 바티칸을 방문할 땐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다. 로마엔 시내버스 외에 좌석이 달랑 6개뿐인 미니버스가 다닌다. 버스 문을 열어놓은 채 운전석엔 아무도 없고 승객이 먼저 타고 기사님을 기다려야 했다. 바티칸 남쪽에 있는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올라탄 빨간색 이층 관광버스는 정거장마다 10분씩 정차했다. 지하철역의 티켓 자동판매기는 별칭이 '돈 먹는 기계'라는 여행안내서의 경고는 사실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날 지하철역 1층 자판기가 꿀꺽한 1유로를 지하의 다른 자판기를 고치고 있던 직원에게서 돌려받았다. 옆에 있는 다른 기계 앞에서 한 가족 5명이 10번도 넘게 버튼을 눌렀는데 손에 쥔 표는 3장뿐이라며 직원에게 화를 냈지만 그는 대꾸가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다빈치 국제공항(Aeroporto Internazionale Leonardo da Vinci)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여행가방들을 대형 비닐랩으로 칭칭 감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길거리에 소매치기만 조심하면 되는 곳이 아니라 비행기에 짐들이 실리는 도중에도 도난사고가 빈번하다는 걸 보여주는 기묘한 공항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여행 가기 무서운 나라, 개념 없는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스스럼없고 붙임성 좋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웃음이 난다. 그리고 잔가지가 없이 윗부분만 잎이 무성하던 키 큰 로마의 소나무들이 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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