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sdom Seeker Sep 17. 2016

여행은 연애, 사는 건 결혼-2

바다 건너 이사


너무 많은 걸 지니고 산다


2-3주의 여행을 떠날 땐 입을 옷 몇 벌, 세면도구, 화장품 정도만 챙기면 된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살러 가려니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구, 가전, 주방용품, 침구까지 따라가게 생겼다. 기계의 도움을 받는 현대인으로 사는 건 여러모로 편리하다. 하지만 멀리 떠나게 되어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물건의 가짓수가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침대, 식탁, 소파 등의 가구가 딸린 집을 쉽게 임대할 수 있지만 호주의 주택은 식기세척기, 오븐, 에어컨 정도만 구비되어 있어 나머지는 현지에서 구입하거나 쓰던 걸 가져가야 했다. 모든 것이 낯선 나라에서 향수병을 겪지 않으려면 집안에서만이라도 익숙한 물건들을 곁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이 쓰던 가구, 이불, 계속 읽을 책들을 가져가기로 했다.


직장의 이동과 학업 때문에 나라 간 유동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걸 고려한다면 국가마다 제각각인 전압과 가전제품의 플러그/콘센트 체계를 단일화하는게 낫지 않을까. 나라를 옮겨 다닐 때마다 가전제품을 교체하는 건 불필요한 자원 낭비이다. 한국(220v)과 호주(240v)의 경우 전압이 달라 모토로 작동되는 냉장고, 청소기, 헤어드라이어, 믹서기, 세탁기는 가져가도 금방 고장이 나기 때문에 전부 호주에서 사야 했다. 플러그 모양도 달라서 서울에서 가져간 전기밥솥과 탁상용 램프는 기존 콘센트 끝에 '돼지코'라 불리는 콘센트를 끼워서 사용했야 했다.




먼지, 이삿짐에 넣으시면 큰일 나요


해외이사는 짐의 양에 상관없이 배에 선적될 컨테이너 하나를 무조건 임대해야 한다. 화물 수요량이 적은 노선에선 비용을 낮추기 위해 컨테이너를 공유할 다른 화물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원하는 도시와 날짜가 일치해야 하고 자칫 짐이 섞일 수도 있으며 다른 이의 화물에 문제가 생기면 통관심사가 지연되어 짐을 늦게 받을 수도 있다. 컨테이너 사용료는 화물의 총무게에 상관없이 컨테이너 개수로 책정돼서 반만 채우거나 빈틈없이 쌓아 올리거나 동일하다. 이 사실을 듣고 둘째 아이는 피아노를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가엾은 국산 피아노는 출렁이는 태평양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적도를 두 번이나 지나는 '출세'를 감당해야 했다.


부산-브리즈번 컨테이너 서비스 항로 (출저:http://www.hmm21.com/cms/company/korn/container/service/index.jsp)


서울에서 포장된 살림살이는 부산항으로 운반되어 거대한 배에 실려 시드니항을 향해 출발한다. 거기서 다시 트럭으로 브리즈번까지 파손 없이 운반되려면 국내 이사에 비해 가구와 기타 가재도구를 포장하는데 두배의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다. 트럭에서 컨테이너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가구가 부러지거나 유리가 깨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뽁뽁이로 돌돌 말고 나서 다시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재단하듯 가구에 딱 맞게 접어 옷을 입히는 H 해운 기사분들의 손놀림은 정말 장인 수준이었다.


해운업체와 유학원에서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짐을 포장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모든 가구에 붙은 먼지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피아노 내부에도 먼지가 있으면 안 된다. 만약 통관 검사 과정에서 먼지(세균 때문에)가 발견되면 반입이 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구를 소각한단다. 호주는 청정지역이라 이삿짐에 포함된 신발 밑창과 자전거 타이어에 낀 소량의 흙(씨앗이 들어 있을까 봐)도 입국을 불허한다고 했다. 말린 약재나 건어물 같은 식품은 이삿짐에 넣을 수 없고 공항에서 수화물로도 갖고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호주는 외국에서 유입되는 동식물과 세균에 대해 엄격히 관리한다.


또한 마약물 밀수를 막기 위해 서랍장 안의 내용물도 확인하기 때문에 서랍을 열쇠로 잠그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브리즈번으로 이민 오신 분의 금고가 잠긴 상태로 도착해서 열쇠를 들고 시드니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들었다. 비타민이나 연고 같은 상비약의 특정 보관 위치(이사 물품 리스트의 번호를 알아두어야 한다)도 미리 신고해야 짐을 빨리 받을 수 있다. 호주에서 판매하는 칫솔, 휴지, 생리대, 고무장갑, 노트, 볼펜, 속옷의 품질이 떨어지니 국산제품을 이삿짐에 넣어 가라고 했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부과될 수 있으니 바코드와 가격표가 붙은 포장지는 제거하고.



정말 가나 보다



지원학교에서 입학을 허가하는 오퍼(Offer of a Place)를 받은 후 미리 예약해 둔 삼성 의료원에서 비자 발급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입학 허가서, 신체검사 결과, 통장잔고 내역, 범죄 관련 기록 등의 증빙서류를 준비해 비자 신청을 한 후 이주만에 비자를 받았다 (평균 2-3주 소요). 유학원에서 비자 승인 소식이 왔을 때에도 아이들은 막연히 가나보다 했다. 서울을 출발한 이삿짐이 배와 육로를 거쳐 브리즈번 집에 도착하려면 여유잡고 79일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사람보다 두 달 앞서 집을 나섰다. 학교에 다녀와 침대와 책상이 사라진 자기 방을 보고 아이들이 물었다.

"진짜 가는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은 연애, 사는 건 결혼-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