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희 Oct 21. 2020

여행이라 행복하고, 막막한 해외 살이

나를 둘러싼 알이 깨지고, 깨어가고.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로망처럼 남아있다. 외국 하면 생각나는 화려한 조명과 건물,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멋진 야경, 다양한 사람들이 가득한 글로벌한 느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멋진 나!.. 를 꿈꾸며 나 역시도 해외에 왔다. 글로벌한 이 도시에서 외국인들과 교류하고 나의 세계를 넓히는 멋진 하루하루를 상상하며.

그 상상이 틀리진 않았으나 내가 너무 뽀샤시한 필터를 씌우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은 보통 해외를 여행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는 생각 없이 돈을 쓰고,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며, 현실을 잊고 그 속의 정취에만 빠져 한껏 즐기다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이 아니라 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물가 높은 이곳에서 생각 없이 돈을 쓰다 보면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거지꼴을 면하려고 조금씩 아끼며 살아도 '내가 해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면서 이것도 못사?!' 하는 좌절감을 느낀다. (이건 물론 월급의 차이도 있겠다^^.. 씁쓸)

좌절감과 함께 날 흔드는 생각은 임시의 생활을 산다는 허무함이다.

이곳에 이민을 오는 경우에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잠시 파견근무를 하거나, 유학을 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온 것이라면 언젠간 한국으로,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는 계획이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이곳의 생활은 내 인생의 특별한 한 부분이다. 여기서 생활할 때 많은 결정의 순간에 큰 관건이 되는 생각은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수명이 긴 물건들과 함께 산다. 생활을 하다 보니 10만 원을 기준으로 그 물건의 기대수명이 달라지는 것 같다. 똑같은 청소기를 사더라도 비싼걸 사서 오래오래 쓰고 고장 나면 AS도 받아가며 써야겠다는 생각과 그냥 대충 쓰고 고장 나면 버리고 가야겠단 생각은 소비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런 이유로 현실적으로 짧으면 2년 길어도 5년을 넘지 않을 곳에서 사게 되는 물건은 질이 좋지 않더라도 조금 저렴한 물건을 고르기 망정이다. 들고 가면 그것도 다 짐이고 돈이니까. 내가 나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한 내 주위 물건들을 보면서 하루에도 12번도 더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생각지 못한 순간에 나의 발목을 잡는 언어의 문제도 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들, 현지인처럼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억울하고 답답한 순간에 꼭 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함만 더 가져가는 순간들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있다. 판매자의 실수로 물건이 잘못 배송 왔을 때, 메뉴판에 없는 음료를 주문하고 싶을 때, 누가 내 앞에 새치기를 했을 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번번이 삼켜낸다.

그럴 때마다 새삼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외국에서 저렇게 능숙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며 자유자재로 자기 의견을 표현할까?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어도 한국어를 저렇게 배울워서 구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말이 어눌하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순진하고 어벙 벙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던 외국인 출연자들에게 혼자 사과한다. 언어의 장벽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남겨진 끝없는 숙제이다.

이런 순간들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야무지게 물건을 잘못 낸 판매자에게 야무지게 따져가며 반품을 요청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것들 사서 오래오래 쓰는 삶을 살 수 있는데. 여기서 처럼 대충 하루하루 때우다 가는 느낌이 아닐 수 있는데. 그렇게 살기엔 지금 내 나이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한데.

하루하루가 여행 같아서 즐겁다가도 이 여행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역설적인 생각에 막막한 느낌에 압도될 때가 있다. 그럴 땐, 막막한 느낌의 늪에서 날 끌어올리기 위해 정량화된 시험이란 밧줄을 내린다. 밧줄 잡기가 힘이 들긴 해도 그것만이 막막한 감정에서 날 꺼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헛헛할 땐 무엇이라도 남겨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보다 훨씬 자주 일기를 쓰고, 브런치에도 기록을 남기고, 영상도 만들어 올린다. 이 임시의 날이 나중의 후회가 되지 않고 반짝반짝한 추억으로 남도록.

언제까지 내가 잘 만들어둔 세계에서 똑 부러진 척을 하며 살 순 없다. 이곳에서 느끼는 내 부족한 모습은 이곳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부분이기도 하다. 기꺼이 나의 단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내 세상을 깨트리고 깨지며 그렇게 조금씩 업그레이드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해외에서 살다 간 사람들이 좀 더 넓은 식견을 가진다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닐까.

여행자처럼 신났던 디즈니랜드에서

keyword

김재희 소속 직업 교사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초등교사입니다. 다양한 곳에서 평범한 일상을 느끼고, 느낀 점을 글로 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글자로 빚어내는 고통과 보람을 좋아합니다.

구독자 25

작가의 이전글 요동치는 3개 국어 해외에서 홀로 살아가는 작가의 다음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