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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상출구 Nov 19. 2022

칭찬이라는 덫

인정받기 위한 수단일 뿐인 팀 <폭스캐처>

몇 년 전 직장상사가 단 둘이 있을 때 말했다. “회사 선배들이 후배한테 잘한다고 박수치는 건 일을 더 시켜먹기 위해서야.” 그는 어떤 비밀을 폭로하듯 말했지만 나라고 모르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이제 막 함께 일하기 시작한 소속 부서장에게 듣는 상황이 어딘지 우스꽝스러웠다. 이 사람이 앞으로 나랑 어떻게 일하려고 그러는 건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직장상사가 그런 내심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알려주고 나면 칭찬의 효과가 떨어지니 당연한 일이다. 겪어 보니 그 상사는 칭찬이 드문 사람이었다. 칭찬에 인색하다기보다는 속이 빤한 칭찬을 낯 뜨거워하는 타입이었달까. 차라리 이런 사람이 낫다고 생각했다.


칭찬이 사람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쓰이는 세태는 유감스럽다. 사람을 도구처럼 여기지 않고서야 칭찬이라는 선의의 언어로 누군가를 휘두르려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의가 있는 칭찬은 듣는 이에게 독이 든 술잔이나 다름없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 그러니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감언이설에 취약하다.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에 눈이 멀다시피 하고, 칭찬이 사라지거나 질타로 바뀌면 하염없이 무너진다.


실화를 소재로 삼은 영화 <폭스캐처(Foxcatcher)>(2015)에서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와 그를 후원하는 재벌 존 듀폰(스티브 카렐)은 각자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으로 뒤틀린 인물이다. 레슬링 애호가인 존은 레슬링을 경멸하는 어머니에게 인정받으려 애쓰고, 마크는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면서도 더욱 주목받는 형 데이브(마크 러팔로)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존은 이용하는 쪽, 마크는 이용당하는 쪽이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은 누가 더하거나 덜하다고 할 수 없이 모두 파멸적이다.


인정에 굶주린 두 남자


초대받아 간 존 듀폰의 집에서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마크. 영화 <폭스캐처> 스틸컷

무뚝뚝한 마크는 늘 불만족스럽고 불안해 보인다. 불만이 가득 차 폭발할 것만 같은 분위기는 장면을 가득 채운 정적과 함께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하루는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초등학교 강당에서 몇 안 되는 학생을 마주하고 강단에 선다. 목에 건 메달은 어딘지 과시적이고,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메달이 그에게 걸린 게 아니라 그가 메달에 매달린 듯 보인다. 마크는 메달을 들어 보이며 ‘단순한 메달’이 아니라고 강조하는데 아이들은 놀람도 동조도 없이 시큰둥하기만 하다. 강연 후 몇 푼 안 되는 사례비를 받는 자리에서 이름이 데이브 슐츠냐고 묻는 교직원에게 마크는 형 대신 나온 거라며 “둘 다 금메달리스트”라고 강조한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메달을 방향까지 맞추며 애지중지 선반 위에 올려놓는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크에게 금메달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물건이다. 그러나 메달이 “마크는 대단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크는 직접 메달을 드러내 보이지만 사람들은 메달과 마크 어디에도 관심이 없다. 세간의 눈이 온통 형 데이브에게 쏠려 있다. 그 현실이 마크는 불만스럽다. 정작 데이브는 세평에 무관심하다. 층층이 쌓여가는 불만이 탁월한 형에 대한 열등감과 분노로 변해갈 때 존 듀폰이 다가온다. 대신 연락해온 직원은 존을 설명하면서 “듀폰 가문의 존 듀폰”이라고 배경을 연신 강조한다. 마크의 금메달처럼 초대형 화학업체를 운영하는 듀폰이라는 가문은 존의 사회적 가치를 말해주는 대리물이지만 마크는 그 설명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마크가 치켜든 금메달을 보고도 마크에게 무심했듯이. 마크와 존은 서로가 거울에 비친 자아인 것처럼 보인다.


가로막듯 서 있는 존 듀폰(앞)의 뒤에서 마크가 두 팔을 번쩍 든 모습. 영화 <폭스캐처> 스틸컷

존은 ‘폭스캐처’라는 레슬링팀을 만들면서 마크를 미끼로 슐츠 형제를 영입하려고 했다. 그는 마크를 만나자마자 “위대한 마크 슐츠”라며 치켜세운다. “마크,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자네를 예우하지 못했어. 그건 문제야. 자네한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문제지.” 마크는 ‘여기에 비로소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얼굴로 경청한다. 존은 이인자로 살고 있는 마크가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 알았다. 그건 자신도 목말라하는 것, 바로 인정이었다. 존은 어머니에게 레슬링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자신이 돈으로 칭찬을 살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인 어머니는 레슬링을 ‘천박한 스포츠’라며 혐오하고 승마를 사랑했다. 존은 말에 열등감을 드러낸다. 어머니 앞에서 어설프게 레슬링 코치 흉내를 내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


칭찬의 역효과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 있다. 칭찬받기를 즐기게 되면 칭찬이라는 보상을 받기 위해 행동하게 돼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칭찬이 목적이 되면 과정의 즐거움이나 본질적 성취감을 느낄 수 없게 되고 성장이나 발전도 더뎌진다, 그런 이야기다. 칭찬에 익숙해지면 칭찬받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가 어서 자신을 치켜세워줘 화제의 중심에 서기를 원한다. 듣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으면 마음에도 없이 자신을 살짝 깎아내려 “아니야. 네가 무슨”으로 시작하는 답정너 칭찬을 유도하기도 한다. 칭찬에 대한 욕심이 사람을 속물로 만드는 것이다. 인정받기를 제1 목표로 레슬링을 하는 마크와 존은 그런 경우였다. 이들은 타인의 인정을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이라 생각했고, 그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증오했다.


형 데이브가 동생 마크의 어깨를 잡고 걱정하는 모습. 영화 <폭스캐처> 스틸컷

존은 자신이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슐츠 형제를 이용하려 했다. 금메달리스트인 슐츠 형제가 자신의 팀에 합류하면 자신이 그들의 리더이자 멘토로 각인될 거란 생각이었다. 마크는 달콤한 말에 홀려 헌신적으로 따랐지만 존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 데이브는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데이브는 폭스캐처 합류를 거절한다. 존이 실망한 기색으로 데이브가 얼마를 원하느냐고 묻자 마크는 “형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데이브는 타인으로부터의 보상이 아니라 가족의 안정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데이브는 뒤늦게 폭스캐처에 합류한 뒤에도 존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불쑥 찾아온 존에게 “일요일은 가족을 위한 날”이라며 시간을 내주지 않았고, 존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멘토라고 말하라는 요구에 순순히 호응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고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존과 마크는 목표를 이루는 데 실패한다. 존은 끝내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마크는 올림픽에서 우승하지 못한다. 마크는 자신을 치켜세우며 “우리는 친구”라던 존 때문에 망가진다. 마크가 잇단 패배로 무너져 내릴 때 곁을 지킨 사람은 존이 아니라 형이었다. 데이브는 “넌 혼자가 아니야. 이렇게 무너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상대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선 이런 말과 태도를 기대할 수 없다. 칭찬을 많이 해준다고 ‘진실한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칭찬을 보상이나 유인책으로 쓰는 이들이 아니다. 누군가가 쓸모없어졌다며 등을 돌릴 때에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 그렇게 우리를 수단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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