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도시 곳곳의 '알카사르', 스페인 최고의 요새 "알함브라 궁전"
저번 글에서 본 것처럼,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무어인들, 즉 이슬람인들을 격퇴했다.
하지만 동시에 스페인은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700년 동안 정착하고 있었던 이슬람인들의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이것들을 수용하지 않고 파괴해
다시 기반을 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페인에는 이슬람의 유적들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슬람인들의 주요 거점이었던 안달루시아 지방에 이러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 여담이지만, 오늘날의 "스페인스럽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이슬람스럽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스페인 일주 관광코스를 짜는 사람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각 도시별로 빠지지 않는 관광지가 몇 가지 있는데, 첫 글에서 다뤘던 '성당'과 지금 다룰 '알카사르'가 스페인 도시별 관광지로 등장한다. 조금 더 확장해보면, '궁전'도 추가될 것이다.
알카사르, Alcazar는 '요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인들이 자신들이 차지한 이베리아 반도의 땅을 수호하기 위해 지은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베리아 반도 자체가 평균 해발고도 700m 이상의 고원지대이고, 스지형 곳곳에 산지가 많다보니 도시 전체를 효과적으로 수비할 수 있는 방어시설이 필요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알카사르다. 도시 곳곳에서 지대가 높고,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알카사르를 지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으려 한 것이다. - 그러다보니 오늘날에는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랬던 알카사르가 뒤로 갈수록 요새의 기능에 더해 궁전의 기능까지 갖추게 된다. 그만큼 알카사르를 공격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슬람의 칼리프들이 머물기도 좋았을 것이다. (마치 중세 영주의 성을 보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스페인을, 특히 안달루시아 지역을 관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관광지라 할 수 있겠다.
(사진 : 스페인 세비야, Alcazar -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본 규모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했다)
그중에서도... 알카사르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Alhambra)'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들러보는 곳이 바로 이 알함브라 궁전이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알함브라 궁전은 사실 요새, 그리고 궁전의 역할을 넘어 하나의 "마을"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궁전의 헤네랄리페(General Life) 부분이 바로 이러한 마을의 역할을 하는 주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알함브라 궁전은 마을과 궁전, 요새 기능을 포함한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알함브라 궁전의 위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천혜의 요새다. 알함브라 궁전 뒤로는 만년설이 덮고 있는 산이 위치하고 있고, 알함브라 궁전 또한 그라나다 도심의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을 수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적당한 위치였다. 게다가 그라나다 도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알함브라 궁전까지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준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가 수월하다.
하나의 '도시' 격이라 할 수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전부 둘러보려면, 아마 3~4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다. 나는 헤네랄리페 부분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알카사르와 궁전 부분만을 둘러봤는데도 3시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점심 먹고 바로 들어갔는데, 나오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라나다에 간다면, 하루는 온종일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슬람이 남긴 유산은 알카사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 곳곳에, 이슬람이 통치했던 유산들이 남아 있다.
코르도바의 메즈키타 성당은 저번 글에서 다뤘기 때문에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본질적으로 물이 부족한 지역이다. 강수량도 적고, 고온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대 자체가 높고, 산지가 많아 "관개" 혹은 "치수"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인들이 들어왔을 때도 관개와 치수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런데 이슬람의 기술력이 상당했기에, 이슬람 통치 이후 안달루시아의 물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됐다. 레콩키스타 이후에도 스페인인들은 이슬람의 '치수 유산'들을 파괴할 수가 없었다.
대표적으로 내가 본 유적이 코르도바의 '물레방아 유적'이다.
이 유적은 아브드 알 라흐만 2세, 약 850년 경에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수'를 중요시했던 이슬람인들의 지혜가 반영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코르도바의 Puente Romano 입구에 있는 탑에 들어가면, 박물관이 있는데 안달루시아의 치수 문제, 그리고 이를 해결한 역사를 소개한 박물관이 있으니 한번 들러도 좋을 듯 하다.
이렇듯,
레콩키스타로 스페인은 이슬람으로부터 벗어났지만, 동시에 이슬람을 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글부터는 레콩키스타 이후, 스페인은 어떻게 신항로 개척으로 나아갔는지, 그리고 신항로 개척의 유산들이 스페인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다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