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 Jul 31. 2023

아내의 방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지하실이 나의 공간이라면 아내만의 공간은 서재이다. 우리에게 집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이유는 집이 삶의 공간인 동시에 아내에게는 곧 일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 작가인 아내는 서재에서 일을 한다. 서재라고 해야 사실 책상과 컴퓨터가 있을 뿐이지만 아내에게는 분리된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학생들처럼 책상을 벽에 붙여 쓰는 게 아니라 방 중앙으로 배치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는 왠지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서재 한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보니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공간 속에 어떤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를 위한 공간으로 방의 질서가 재편된다고 해야 할까. 아내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았을까.      


생각해보니 이전에는 아내에게 이런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집에서 원고를 쓰면서도 늘 거실 식탁에서 일을 한다거나 컴퓨터가 있는 곳에서 일을 했는데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자신은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늘 강조했다. 집안일에 본인의 일이 간섭받거나 그 둘이 혼재되는 것을 싫어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일을 한다든지 일을 하다말고 빨래를 넌다든지. 어떻게 보면 집에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로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아내말대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사무실이라면 일하다말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사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내의 서재 의자에 앉아보니 이런 분리된 공간이 필요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 해도 살림에서 벗어난 아내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집이 생긴 덕분에 아내만의 방이 생겨서 좋고, 나도 지하실이라는 나만의 공간이 생겨 또 좋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자기 방이 처음 생긴 날의 기쁨을 생각해보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독립적인 인간에게는 그에 맞는 공간이 필요하다. 가난하다는 것은 집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방을 갖게 된 것은 막 중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용현동에 있는 단독주택이었는데 방이 세 개였다. 4학년이 될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던 동네를 떠나 어렵게 장만한 집이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누나. 식구도 셋, 방도 세 개였지만 내 방은 없었다. 방 하나를 세를 줬기 때문이었다. 그 방에는 아마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이로 짐작되는 어떤 누나가 살았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인데 마치 하숙방처럼 방 한 칸을 월세로 내어 준 것이다. 그 누나는 식구처럼 우리와 함께 살았다. 그렇다고 하숙을 한 것은 아니어서 누나는 방 안에서 밥을 따로 해먹었다. 어떤 날은 우리와 함께 밥도 먹고 가끔 저녁에 엄마와 안방에서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엄마도 처녀시절 그런 처지였다며 그 누나에게 더 마음을 썼다.           


하지만 나는 그 누나가 싫었다. 당연히 내 방이 되어야 할 곳을 차지한 낯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이 우리 집에 함께 사는 것도 불편한데다 내 방까지 차지하고 있으니 심통이 났다. 나는 그 누나가 안방에 있는 날이면 싫은 티를 더 냈다. 안방은 나와 엄마와 같이 쓰는 곳인데 내 방까지 차지한 이가 이곳에까지 들어오는 것이 못마땅했다. 어지간히 눈치가 없지 않고서는 주인집 아들의 심통을 누구라도 알아차릴 만한 그런 뚱한 짓을 했다. 어린 나는 옹졸했고 타인을 밀어내는 것에 익숙했다. 우리 집엔 우리 가족만 있어야 했다. 아니 그 방엔 내가 있어야 했다.      


어느 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나는 그 누나의 방에 몰래 들어가 보았다. 보통 열쇠로 잠겨있던 방문이 잠겨 있지 않은 날이었다. 방은 정말 작았다. 방에는 가구도 없이 초라한 살림살이만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책이 몇 권 뒹굴고 있었다. 몸을 누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방. 혼자라도 또 혼자여서 숨 막힐 것 같은 방이었다. 누나는 방에 혼자 있을 때 무얼 하고 지낼까. TV도 없는데 심심하지 않을까. 그런데 원래 살던 집은 어디였을까. 가족이 없는 걸까. 그런 걸 물어볼 새도 없이 그 누나는 그렇게 한 일 년 정도 살다 방을 비웠다. 그리고 방은 곧 내 차지가 되었다.           


내 방이 생긴 날을 기억한다. 나는 창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밖을 쳐다보았다. 내 방이 있다는 것은 불 끄라는 소리가 없다는 뜻이고 잠을 안자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 자유가 좋았다. 당시 나는 천문학자가 꿈이었는데 내 방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자리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누나에게 심통을 냈던 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한 걸까. 내가 몰래 방에 들어간 걸 알았을까. 아니면 다른 일이 생긴 걸까. 고작 이렇게 작은 방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지냈을 그 누나가 생각났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하지만 별자리까지 찾기는 어려웠다. 마당에 나가 장독대 위에 올라가 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카시오페아 같은 별자리를 찾게 되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저 광대한 우주에서 별들은 항상 똑같은 위치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달리 말하면 저 넓은 곳에서도 다른 형태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나저나 그 누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후 자기만의 방을 찾았을까. 저 광대한 우주에, 지구라는 별에 그리고 이 작은 나라에 맘 편히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찾았을까. 그걸 찾아가는 것이 한 인생의 역정이라면 그 누나에게는 너무나 고된 삶이 아니었을까. 삶의 투쟁은 여성에게 더 가혹했을 게 뻔했을 테니 말이다. 어린 주인집 아들은 자신이 얼마나 옹졸했는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나를 웃게 하려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