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동 준비로 지하실에 놓을 라디에이터를 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연통이 있는 난로를 들여놓고 싶었으나 군고구마 한번 구워 먹겠다고 큰일을 또 저지르고 말 것 같아서 처음부터 전기 라디에이터를 찾았어요. 그런데 이놈의 물건 사는 일은 왜 갈수록 이리 어려운지, 이것저것 비교해 보다 노안이 올 지경이었습니다. 아무튼 할인의 노예가 되어, 코스트코 특별 할인 상품으로 냉큼 구입했습니다. 게다가 무연, 무취, 무소음이라는 말이 어딘가 그럴듯해 보이더군요.
2.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노년의 박완서 선생의 글에 또 한 번 웃고 또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글 쓰기 행위가 사실은 고독한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위한 위로와 농담이라는 고백이 저에게도 위로가 되었어요. 그래서 정말 이게 뭔지, 소설인지 일기인지 에세인지 뭔지 모르는 것들을 스스로 끄적거리게 한다는 걸 말이죠.
3. 피디저널에 연재하던 걸 소설로 각색해본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이 오디오 윌라 오디오북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를 아는 분들에게는 제 이야기일 테고 모르는 분들에게는 소설 같은 그런 이야기일 겁니다. 방송국을 그만두며 멈춰버린 저의 소리 채집 작업을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어서 쓴 글이거든요.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진 소리들이 우주 어딘가에라도 아직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봤어요. 글을 쓰며 저에게 위로가 되었 듯, 들으시는 분들에게도 잠시 일상을 견디는 이야기였으면 합니다.
4.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듣는 건 또 어떤 걸까 싶어 저도 어제 오디오북을 들어봤어요. 낭독해주신 성우분이 애니메이션과 그쪽 분야의 탁월한 분이라고 하시던데, 정말 마치 명랑 만화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아쉬운 건 역시 소리인데, 그동안 제가 채집한 소리들은 저작권 문제로 오디오북에 함께 실을 수 없었어요. 이 글이 오디오북으로 나오면 좋겠다 싶었던 이유도 사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는데, 그러지 못해 몹시 아쉽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저만의 것은 아니겠죠. 고생한 윌라 오디오북 제작팀에게도 기회를 빌어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5. 하루하루 겨울이 다가오는 게 느껴집니다. 뭐라도 끄적거려야 할 텐데 요즘엔 도통 뭔가 써지지 않더군요. 멈춘 소리 채집도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잘 되진 않네요. 대신 요즘 자전거 타는 일에 재미를 붙였는데, 춘천까지 타고 가서 막국수를 먹고 오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모든 일이 목표까지 다가설 수 없겠지만 아니면 뭐, 뭐라도 되겠죠. 모두 지치지 않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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