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을 먹으러 백령도에 간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평양냉면집을 하나씩 찾아다니던 시절. SNS에 냉면 먹으러 어디까지 가봤네 하는 자랑을 하던 때였다. 의정부와 을지로, 마포 같은 정통파부터 강남, 여의도, 분당의 신흥강자까지. 사실 거기서 거기인 대열에서 백령도 냉면은 신선한 도전이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4시간 뱃길.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 배는 서해 최북단 백령에 도착한다. 북한 장산곶이 눈앞이고 심청이가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지척에 있다. 먹을 것도 먹을 거지만 두무진의 절경을 감상하고 해변에서 가마우지나 점박이물범 같은 녀석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백령도에는 대여섯 개의 냉면집들이 있다.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셈이다. 백령도 냉면은 평양냉면에 대한 황해도 실향민들의 변주곡이다. 전쟁통에 피난 나온 이들이 고향을 지척에 두고 그리워하며 해먹은 음식. 돼지나 한우 육수에 메밀향 그득한 면발. 여기에 백령 특산물 까나리액젓으로 감칠맛을 장식했다. 심심한 평양냉면에 비하면 감칠맛이 강한 편이다. 도대체 평양냉면을 왜 먹는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도 문턱이 낮다.
백령에 가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백령도 사람은 하루에 한 끼 '랭면'을 먹는다는 것이다. 진짜? 냉면 가게가 등장하기 전에는 집집마다 국수 뽑는 기계를 두고 해 먹었다 한다. 정말? 의심의 눈초리로 백령도 지인을 바라보는데 냉면을 다 먹고 특이한 짓을 한다. 육수를 버리고 남겨놓은 삶은 계란 노른자를 젓가락으로 풀더니 면수(메밀면 삶은 물) 붓는다. 여기에 식초와 까나리 액적을 몇 방울 첨가한 후 원샷. 백령도 사람들은 냉면을 이렇게 먹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랭면'에 진심인 사람들. 백령 사람 인증이다.
백령도가 너무 멀다면 인천 원도심에 백령도 냉면집들이 많다. 부평, 제물포, 주안, 도화동, 만수동, 신흥동, 구월동, 학익동, 신기촌 등등. 백령도나 소청도 출신들이 문을 연 집들이다. 오늘 점심으로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어떠신가?
(인천일보에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