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배다리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얼마 뒤, 동네에 허름한 통닭집이 생겼다. 며칠 뒤 아내와 치맥을 하러 갔는데 그새 다른 통닭집으로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지금까지 갈비인지 통닭인지 그 맛을 모르는 ‘수원왕갈비통닭’. <극한직업> 영화 촬영 세트였다.
이병헌 감독은 지난해 또다시 우리 동네를 찾아 영화를 찍었다. 이번엔 닭강정. 백정닭강정 세트가 세워지고 ‘백정이 어딜 양반한테 덤비냐는’ 양반댁닭강정도 골목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번엔 속지 않았다. 그래, 또 뭔가 찍는 거겠지.
<극한직업>, <도깨비>, <인랑>, <모범형사>, <무법변호사>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배다리에서 촬영되었다. 이 정도면 영화의 메카, 자연산 야외 스튜디오다. 이제는 어지간히 유명한 배우가 아니라면 구경 나가기도 귀찮다.
배다리가 영화 메카가 된 것은 인천영상위원회의 유치와 홍보 덕이 크다.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문 장점이라면 장점도 있어 오래된 원도심 이미지를 찍기에 알맞은 곳일 것이다. 촬영 때문에 주민은 귀찮지만 이를 통해 동네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참을 수 있다.
최근 배다리 헌책방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을 만났다. 헌책방 골목이 계속 존속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지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눴다. 헌책방 골목의 문화적 가치에 이견이 있을 리 없고, 고민 끝에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의견을 내놓았다.
어딜 가도 걷기 쾌적한 곳이 마음에 남는다. 산책하듯 걸으며 다양한 가게를 들러보고 결국 그 길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배다리에 그런 이야기는 차고도 넘친다. 어떤 영화촬영장소 말고도 말이다.
차가 인도를 가로막고 불법 주정차된 차를 피해 요리조리 다녀야 한다면 누가 오겠나. 그 길에 무엇이 있다 한들 얼굴부터 찡그러지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길이 통해야 사람이 통한다. 걷는 길이 살아야 가게도 산다. 지금 배다리는 한 걸음도 걷기 힘들다.